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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우리에겐 좌표가 필요하다

이진숙 '클럽리의 문화마당'

  • 입력 2023.02.27 09:00
  • 수정 2023.03.06 09:50
  • 기자명 이진숙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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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문화칼럼니스트.
이진숙 문화칼럼니스트.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알려야 할 것 같았다. 매달 기부금을 내고 매일 걷기로 한 사람들이기에, 3개월이 되도록 매일 한 시간씩 꼬박꼬박 걸어온 사람들이기에, 무엇보다도 나를 믿고 따라온 사람들이기에. 그들이 처음으로 모이는 날, 나는 에둘러 말하고 싶지 않았다. 고백하듯 솔직하게 내 안을 보여줬다. 

걷고 나면 그들은 사진과 함께 소감을 단톡에 올렸고, 나도 소감과 함께 그들에게 일일이 댓글로 답을 했다. 우리는 자신에게 또 서로에게 그런 식으로 살뜰한 노력 같은 걸 했다. 그럼에도 내 카톡 몇 개만으로 결성된 모임에서 누군지도 모른 채 주고받는 소통에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모임의 의미도 사람의 존재도 희미한 것 같았다. 마주앉아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이 필요했다. 

주부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과 다른 도시에 사는 사람까지 함께하는 모임에서 만남은 쉽지 않았다. 일하는 사람은 점심시간에 틈을 내어, 다른 도시에 사는 사람은 장거리 운전을 해서, 어렵사리 그중 8명이 모였다. 첫인사로 감사를 전한 후, 나는 여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나를 설명했다. 

암을 이기고 살아난 후 ‘감사’가 뭔지 알게 되었다고.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데도, 나는 도움을 줄 생각만 했지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그것이 ‘교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5킬로미터 마라톤에 나갔을 때, 스스로에게 “정말로 할 수 없는가?”를 수없이 물어가며 결승점에 도달했던 기억이 있다고. 

주부들의 변화를 바라며 ‘문화 공간’을 운영한 적 있는데 막상 변화한 사람은 나였다고. 그때 벌였던 기부행사가 제일 잘한 일로 남는다고. 30년 넘게 영국을 드나들면서 영국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도우며 사는지, 어떻게 멋지게 나이 드는지를 눈여겨보았다고. 

내 마음을 움직였던 여러 가지 경험들이다. 내 안에는 이런 가슴 벅찬 체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 하나하나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는 그렇게 스며들었다. 나에게 손짓하는 것들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고, 수수께끼와도 같이 그건 직관이 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직관을 따라 도달한 곳에 와서 되돌아보니, 그런 시절들이 보였다. 

‘멋진 노후를 위한 좋은 습관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도 밝혔다. 이만하면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노년’에서 보부아르가 “소일거리가 아닌 프로젝트를 가져라. 프로젝트는 의미를 제공해준다”라고 한 말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먼 나중에 마음 한 구석에 남은 무엇 하나가 어쩌면 이것일 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혼자가 혼자에게’의 작가 이병률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 정상에 거울 하나쯤 있어서 우리가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산에 너무 힘겹게 올라가서는 너무나도 쉽게 산에서 내려오고 마는 것 같아서, 우리에게 좌표가 필요하기 때문이라서 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내 안에는 모든 것이 흐릿하게 한데 섞여 있고, 현실에서는 점점 자신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내 소개를 했는데 나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고 하면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나를 소개하면서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확인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내 삶을 납득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상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를 알기만 해도 편안한 기분이 든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매일 걸으며 나는 마치 ‘새로운 삶’을 사는 듯하다. 그저 걷는 게 아니라,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망설임 없이 함께했다” “하던 모임은 줄였는데 이 모임은 시작했다”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다” “흐릿하던 것들이 만나보니 뚜렷해졌다”라고 털어놓는 그들에게 나는 관심이 간다. 그들과 함께하는 일 역시 내 삶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설명되고 싶은가?” 내가 나에게 가만히 묻는다. 그것이 내가 어디로 갈지 안내하는 듯하다. 아직도 나는 나를 조금밖에 알지 못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지이이인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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