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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집 청소봉사 갔다가 새집 지어드린 시골 청년들

수도 정화조 없이 열악한 주거환경, 40명 재능기부로 새집 건축
어르신 “이가 세 개지만 고기 먹을 수 있어” 고깃집서 집들이
문규형 군위군바른삶청년연합회 회장 “젊은 에너지로 꾸준히 봉사할 것”

  • 입력 2023.02.17 09:00
  • 수정 2023.03.06 09:45
  • 기자명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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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에 젊은 사람들이 이래(이렇게) 많은데 우예(어떻게) 힘든 어르신을 모른채 할 수 있습니꺼.”

지난해 8월, 경북 군위군 소보면에서 건장한 청년들이 한여름 땡볕에 이곳저곳을 수색하듯 다니고 있었다. 청소봉사가 필요한 어르신의 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집을 찾아나선 길이었다. 주민들의 설명을 듣고 찾아갔지만, 집이라고 할 만한 건물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청년, 지역 사업가, 주민 혼연일체 돼 재능기부 및 후원

 “찾았다!” 

이윽고 한 청년이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처럼 외쳤다.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집’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했다. 넝쿨과 쓰레기로 덮인 폐컨테이너였다. 선두에 있던 청년이 녹슨 철문을 밀고 들어서자 여든이 훌쩍 넘은 노인이 러닝셔츠만 입은 채 누워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청년들을 쳐다보는 어르신은 더위에 지쳐 퀭한 눈을 하고 있었다. 

어르신의 집을 방문한 이들은 20~50대까지로 구성된 군위군바른삶청년연합회 회원들이었다. 이들은 소보면 주민으로부터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쓰레기더미가 가득한 집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르신 댁을 찾아갔다. 주민의 말대로 20제곱미터(6평)짜리 컨테이너에는 입구부터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고, 어르신은 거동이 불편해 보였다. 군청에서 지원해주는 생필품을 받아 생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집에 냉난방 시설은커녕 정화조도 없어 악취가 심했다. 군청 복지사들이 어르신의 건강을 점검하는 등 여러 부분에서 지원을 했지만 집 문제는 돕고 싶어도 법적 규정이나 근거가 없어 손을 놓고 있었다.

소상한 사연을 접한 40여명의 청년들이 머리를 맞댔다. 회의 끝에 두 가지 결론을 냈다. 

‘첫째, 수리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둘째, 성금을 모아서 컨테이너하우스라도 지어드리자.’ 

어르신을 보호시설에 모시고 공사를 시작했다. 포클레인과 건설장비는 건설업에 종사하는 회원들의 재능기부로 해결했다. 건축자재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부족한 공사비는 인근 주민들과 지역의 사업가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군청과 면사무소에서도 생활용품과 집을 짓는데 필요한 정화조, 수도 등의 허가절차를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군위군바른삶청년연합회가 소보면에 주거가 불편한 곳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에 찾아간 간이주택. 외부에서는 집으로 보이지 않아 찾는데 애를 먹었다. 연합회 회원들의 성금과 재능기부로 새로 집을 짓기 위해 기존 주거지를 철거하고 있다. 군위군바른삶청년연합회 제공
군위군바른삶청년연합회가 소보면에 주거가 불편한 곳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에 찾아간 간이주택. 외부에서는 집으로 보이지 않아 찾는데 애를 먹었다. 연합회 회원들의 성금과 재능기부로 새로 집을 짓기 위해 기존 주거지를 철거하고 있다. 군위군바른삶청년연합회 제공

 

여든 넘어 처음 받아본 생일상 “고기가 제일 먹고 싶어”

공사는 12월 말에 마무리했다. 40여명의 인력과 중장비가 동원됐다. 모두 기부나 후원이었다. 정화조와 수도 전기 시설 설치까지 완료해 더이상 악취 걱정도 없었다. 

공사가 마무리된 날 노인의 생일상을 준비했다. 그간 임시 보호시설에서 기력을 회복한 노인은 케이크를 사 들고 찾아온 청년들에게 “치아는 3개밖에 없지만 고기는 씹을 수 있다”는 농담까지 건네는 여유를 보였다. 

이날 노인과 청년들은 인근 고깃집에서 집들이 겸 생일잔치를 벌였다. 잔치에 참석한 이들은 군위군바른삶청년연합회 회원과 그 가족들이었다. 어르신은 “태어나 한번도 생일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면서 “도움을 준 군청과 젊은이들 때문이라도 100살넘게 살면서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규형(45) 군위군바른삶청년연합회 회장은 “군위 청년들이 힘을 모아 살기 좋은 군위, 정이 넘치는 군위를 만드는 ‘새마을 운동’을 펼친다는 생각으로 군과 이웃을 위한 봉사 활동을 꾸준히 펼쳐나갈 것”이라면서 “올해 7월에는 군위가 대구시에 편입되는 등 젊고 역동적인 에너지가 필요한 일들이 많은 만큼 군위군바른삶청년연합회가 군위 청년 대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소식을 접한 김진열 군위군수는 “지역의 젊은이들이 행정 사각지대를 찾아 봉사하는 것은 군위의 미래가 밝다는 증거”라면서 “군에서도 이 같은 사례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여든 넘어 처음 받아본 생일상이라는 노인이 촛불이 한개 꼽힌 케익을 자르고 있다. "치아가 3개 밖에 없지만 고기가 먹고싶다"던 그는 생일상을 받고 연신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군위군바른삶청년연합회 제공
여든 넘어 처음 받아본 생일상이라는 노인이 촛불이 한개 꼽힌 케익을 자르고 있다. "치아가 3개 밖에 없지만 고기가 먹고싶다"던 그는 생일상을 받고 연신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군위군바른삶청년연합회 제공

 

군위군바른삶청년연합회는

“청년이 일어서야 지역이 살아납니다”

군위군바른삶청년연합회는 군위군에 거주하는 20대에서 50대까지 남성들로 이뤄진 청년단체다. 지난해 8월 정식 발대식을 가진 이 단체는 군 단위 정식 청년모임으로는 군위군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지난해 부터 각 마을별 정화작업과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찾아내 군청과 연계, 군위의 마을 도우미를 자처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청년회원들이 각 읍별 지킴이를 자처 군 내 민원을 적극적으로 취합해 소통하고 활력있는 군위를 만드는데 일조할 예정이다.

문규형(46·농업) 회장은 “청년이 활동해야 지역에 활기가 돈다고 믿는다”면서 “군위에 큰 변화가 있을것인 만큼 청년들이 더 자주모이고 더 활발하게 의논하면서 지역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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