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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연이은 독도 도발, 일본이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는 이유

  • 입력 2023.01.31 09:00
  • 수정 2023.02.03 13:59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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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
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

 

일본이 또다시 독도를 도발했다. 일본 정부가 개정한 국가안보전략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지긋지긋하다고 할 정도로 끈질긴 일본이다. 일본의 독도 도발의 의도는 독도를 분쟁지화하려고 하는 것으로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일본의 독도 도발과 관련해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호사카 유지의 ‘사무라이론’이 아닐까. 한국은 선비정신이 있어서 진위에 관심이 많은데, 일본은 그보다는 승패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전투는 승리가 곧 진실이고 진리다. 그런 태도로 역사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억지와 도발이 남발하는 것이다.

물론, 역사학자들은 대놓고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 시책을 따라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분위기다. 결론적으로 일본은 역사 혹은 역사적 진실에 대한 그릇된 태도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역사라는 말의 의미부터 살펴봐야 한다. 역사(history)라는 말이 그리스어에서 나왔다. 어원이 되는 그리스어의 의미가 ‘탐구하다’, ‘탐구하여 알아내다’는 것이다.

이 탐구는 물론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이를테면, 인문학자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가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라고 밝혀내고, 심지어 성경도 문헌학적으로 분석했다.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종교 재판에 넘겨진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진실의 탐구에 있어서 상당히 도전적이었다. 

그러나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 역사의 역사도 투쟁을 통해 발전한 것이었다. 서구에서도 역사 혹은 역사적 기록물과 관련해 어두운 시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역사학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문서의 위조는 중세에 널리 행해지던 기술. 봉건 영주와 거만한 왕들은 고대의 관례를 입증하기를 열망하며 명백한 문서의 권위를 얻으려고 서로 싸웠다.’ 일종의 역사관이 정립되기 전의 과도기였던 셈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사건이었다. 15세기에 활동했던 교황 에우제니오 4세가 왕을 상대로 이탈리아 전체에 대한 세속적 권위를 주장했다. 교황이 근거로 내세운 것은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이라는 고문서였다. 그 안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280?-337)가 교황 실베스테르 1세(314-335)와그 후계자들에게 로마 도시와 서로마 제국의 일시적 지배권을 약속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왕이 보기엔 아무래도 이게 가짜 문서 같았다는 점이었다. 이때 로렌초 발라(1407-1457)라는 학자가 등장했다. 그는 왕의 요구에 부응했다. 그는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을 매의 눈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쓰지 않았던 용어나 그 당시에 없었던 물건이 문서 속에 있다는 걸 밝혀냈다. 결국 누군가가 후대에 위조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1618년에서 1648년 사이에 일어난 ‘삼십년 전쟁’ 시기에 고문서학이 발달했다. 고문서 때문에 논쟁이 벌어지는 일이 워낙 많아서였다. 이 격렬한 논재의 시기를 거치면서 위조 문서를 가려내는 법이 발전했다. 마비용(1632-1707)이라는 인물이 ‘고문서론’이라는 책을 썼다. 말하자면 필사를 검증하는 ‘고문서학’, 도장을 살피는 ‘인장학’, 날짜를 따져보는 ‘연대학’, 용어를 점검하는 ‘문헌학’ 등의 학문들이었다. 

이야기의 시작으로 돌아가서 근본적으로 ‘왜 이런 가짜 문서를 만들었을까?’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인문학자들이 역사학을 학문으로 발전시키기 전의 분위기는 ‘문서를 위조하는 일은 깊은 신앙심이나 애국심의 증거로 받아들여졌다’고 전한다. 진실보다 현실적인 군위와 위엄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했던 것이다.

일본을 상징하는 단어는 사무라이, 충성심, 집단주의 같은 것들이다. 일본의 제국주의 군국주의는 우리 조산들이 혹독하게 경험했다. 천황을 위해 ‘반자이’를 외치면서 적진에 뛰어들었던 카미카제 특공대들에게는 진실 혹은 역사적 사실 따위는 관심 밖이었을 것이다. 현재 권력의 의지에 순종을 강요당하는 것, 윗분들의 뜻에 굴복하는 것 외에 젊은 병사가 할 수 있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일본은 독도와 관련해 자신들의 뜻과 의지, 그리고 전략을 영원히 버리지 않을 것이다. 일본 혹은 일본인들의 사고구조가 근본적으로 전복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대처법은 명료해진다. 우선 독도에 대한 진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독도에 관한 한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한다. 더불어 세계에 나가서 적극적으로 진실을 홍보해야 한다. 일본은 한국은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서구 세력이나 강대국에겐 콤플렉스가 있다.

요컨대, 독도와 관련된 일본의 도발을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끈기와 태도다. 그것만이 독도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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