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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좀 특별한 모임

  • 입력 2023.01.30 09:00
  • 수정 2023.02.03 11:54
  • 기자명 이진숙 전 클럽 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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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매일 걸어보면 알겠지만, 걷기는 나쁜 게 하나도 없다. 꾸준히 계속하는 게 어렵다는 것만 빼고. 100일 동안 매일 한 시간씩 걸었던 지난여름의 ‘100일 프로젝트’는 나에게 강렬한 감정을 남겨주었다. 오랫동안 망설였던 일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건 겨우 한줌의 용기였다. 언젠가 한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에 도전해 봐도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 

 나는 서서히 차 한 잔과 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매일매일 꾸준히 노력하는 것을 최상으로 인정하는 인간이 되었고, ‘십시일반 모아서 좋은 일에 쓰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이 되었다. 막연한 바람만으로는 잘 나이들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인간이 되었다. 급기야 목표를 세우는 걸 좋아하는 인간까지 되었다. 

 작가 정여울이 ‘끝까지 쓰는 용기’에서 “글만 쓰지 말고, 글을 쓰면서 더 좋은 삶을 살라고, 글을 쓰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제 안에서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는 시간을 갖기도 하지요”라고 했을 때, 나는 글을 쓰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아쉬웠던 이유를 찾은 듯했다. 열심히 글만 쓰는 것이 삶의 전부는 아닌 듯했다. 

 사는 것처럼 살아보기로 했다.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을 목표로 ‘멋진 노후를 위한 좋은 습관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궁둥이를 든다’라는 모임을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생각만 할 게 아니라 궁둥이를 들고 일어나 실천하자는 뜻이다. ‘걷기’와 ‘기부’라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한데 묶었다. 매달 일정한 기부금을 내고, 매일 각자 한 시간씩 걷고, 함께 의논해 기부하는 거다. 사실 좀 특별한 모임이다.

 걸으면서 나는 누군가와 같이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누군가 나와 같은 마음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멋진 노후를 상상하며 그 가까이에 가려는 노력을 하는 거다. 그동안 봐왔던 것들, 배웠던 것들, 경험한 것들을 죄다 끌어다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거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늙게 되었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멋지게 늙었으면 하는 거다. 나답게 나이 들고 싶고, 나이 들수록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다. 잘 늙는 것만은 잘하고 싶어서다.

 낯선 여행지에 처음 도착하면 머뭇거리게 되듯이, 늙은 후에 마주할 낯선 풍경에 나는 주춤거릴 것만 같다. 당황하면서 투덜댈 것만 같다. 어쩔 줄 몰라 훌쩍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건강에 목매는 사람이 결코 아니지만, 일단 걷기를 내 하루 속에 편입시켰다. 멋진 노후를 위해 갖추어야할 바람직한 습관에 대해 궁리하고, ‘각자 하고 싶은 일’과 ‘더 나은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일상 속에 보태면서, 매일매일 훈련하려는 거다. 뭐든 반복하면 두렵지 않아지는 법이다. 내일 뭘 할지 알고 있으면, 내일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뭘 하기엔 늦었고 안 하기에도 아쉬운 나이, 딱 그런 나이다. “꼭 새집에서 새 물건을 들인 새 출발이 아니어도 괜찮다. 계획이 새것이면 된다.”라고 했듯이, 그런 시작이면 된다.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나처럼 그랬나보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우리는 곧바로 출발했다.

 단체카톡방을 만들어 꼬박꼬박 걷는 일상을 공유한다. 가을 하늘이 얼마나 푸른지, 단풍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전한다. 눈부신 아침 햇살에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붉은 노을에 황홀해진다고 감탄한다. 우리 산이 얼마나 예쁘고 걷기 좋은지, 우리 동네 골목이 얼마나 정감 가는지 보여준다. 매일 걸으니까 뿌듯하다고, 함께 걸으니까 힘이 난다고 알려준다. 

 ‘멋진 인간’이 되는 데는 7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데, 완벽히 ‘멋진 인간’이 될 수는 없더라도 되려고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매일 걸어보니 생각의 힘이 얼마나 센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의 꾸준한 노력이 결코 하찮지 않을 거라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작가 오민석은 <나는 터지기를 기다리는 꽃이다>에서 말했다. “조심스럽게 말하지만, 이 정도 시간이면 나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 무엇이 안 돼도 상관없다.”라고. 긴 세월을 앞에 두고, 나는 걷기로 첫발을 떼어본다. 나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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