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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선배님들 세종 임금이 성공한 비결, 당태종이 실패한 이유

넓은 포용력으로 주변을 두루 품었던 권정달 의원
주변 만류 뿌리치고 선거 출마 강행했던 K씨
리더는 자기 고집보다 주변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 입력 2023.01.27 09:00
  • 수정 2023.02.03 11:43
  • 기자명 김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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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의성축협조합장

 

“자네가 금성면 지도장(책임자)을 맡아주게.”

1981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선거에 나가 당선된 이후의 일이다. 권정달 당시 민주정의당 초대 사무총장 측으로부터 금성면 선거 책임자 자리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어서 어리둥절했다. 

당시 두 사람이 금성면 책임자 자리를 놓고 격돌했다. 면 책임자 자리는 누구나 탐낼 만했다. 그 당시는 당정협의뢰 공직자로 특채되거나 별정직 면장까지 할 수 있는 자리였다. 선후배 사이였던 두 사람은 결국 극한 대립으로까지 갔다. “내가 너한테 지는 건 도저히 못 참겠다”는 식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의견이 묘하게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너한테는 양보 못하겠다. 그러나 이상문이가 책임자가 된다면 수긍하겠다.”

결국 “이상문을 책임자로 앉히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나로서는 당황스럽기까지 한 일이었다.

 

유일하게 금성면만 패배했지만...

어쨌든 책임이 주어졌으니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1985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렸다. 권정달 당시 총장은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북도 안동시-안동군-의성군 선거구에 출마했다. 당시 권 총장은 전국 최고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런데 내가 책임자를 맡았던 금성면에서 아쉬운 결과가 나왔다. 49개 읍면동에서 유일하게 금성면 한 투표구에서 상대 후보에게 패배한 것이었다. 변명하자면 상대 후보의 일가들이 그 투표구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어찌되었던 책임자가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권 의원은 그릇이 달랐다. 내가 “죄송하다”고 했더니 허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 잘못인가 그게. 지역 정서가 그런 걸 어떡하겠는가.”

보통 이런 경우 뒤끝이 있기 마련이다. 민주정의당 창당을 주도한 인물이었던 만큼 넓은 포용력으로 주변을 두루 품었던 권정달 의원주변 만류 뿌리치고 선거 출마 강행했던 K씨리더는 자기 고집보다 주변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자존심 문제가 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범하게 넘어갔다. 권 의원의 추천으로 금성면 최연소 면장에 임명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형님 아우 할만큼 가깝지도 않았고,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부탁을 한 일도 없었다. 사적인 생각을 모두 내려놓고 객관적인 평가로 내게 큰일을 맡긴 것이었다. 고맙다는 말을 넘어서 존경심이 우러나는 대범함이었다. 역시 그릇이 커야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권 의원이 보여준 그 대범한 태도, 사심에 흔들리지 않는 판단을 늘 되새겼다. 

인간적인 면모도 흠모할 만하다. 명절에 선물을 보내면 늘 “상문아, 잘 있었나?”하면서 친근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다.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가까워지고 싶고 만나고 싶은 대선배다.

권력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욕심을 부리게 된다. 한번 했던 사람은 두 번 하고 싶고, 두 번 하면 세 번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다 좌절을 겪으면 마음에 한으로 남는다. 오죽하면 “선거 원수는 대를 잇는다”는 말까지 있을까. 세상이 불러줄 때는 최선을 다하고, 세상이 다른 이에게 권력을 주면 말끔하게 물러나 마음을 비우고 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모범을 권 의원에게서 본다. 

 

“네가 안 도와줘도 나는 나가겠다”고 했던 그, 결국...

사람은 살아가면서 고비마다 판단의 기로에 선다.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삶이 순탄하게 흘러가기도 하고 질곡의 세월로 접어들기도 한다. 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조언이다. ‘좋은 사람들’이 내놓는 ‘훌륭한 조언’에 귀를 열어야 한다. 

이런 경우가 있었다. K씨는 고위공직자로 훌륭한 공직생활을 한 후 선거에 나섰다. 여당의 공천을 못 받고 야당으로 출마했다. 당시 내가 그의 선거를 돕기도 했다.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 뻔했으나 그의 인간미에 끌려 선거에 뛰어들었다. 고위 공직자 출신답지 않게 소탈한 인물이었다.

선거는 승리했으나 기쁨이 오래 가지 못했다. 선거법 위반으로 직을 유지하지 못하고 중간에 하차를 하고 말았다. 당선증을 받은 후 2년이 채 못 된 즈음이었다. 

몇 해 후 그가 다시 선거에 도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를 찾아와 출마의 의지를 드러냈다. 나는 말렸다. 세월이 지났고, 사람도 바뀌고, 분위기도 달려졌습다. 게다가 선거구도 군위 청송으로 확대된 상황이었다.

“당선되면 좋겠지만, 떨어지고 나면 그 허탈한 마음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세월이 다시 찾으면 그때 나오십시오. 언제라도 나를 지지해주는 지역민이 있다는 기대 하나 안고 사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쪽이 든든하잖습니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네가 안 도와줘도 나는 간다. 출마하겠다.”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를 강행했다. 예상대로 낙선을 하고 말았다. 미련이 더 큰 절망을 부른 셈이었다. 

그 아쉬움도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쉬움보다 더 큰 심적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면 말리는 것이 옳다. 주변에 나와 같이 조언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동의하는 목소리들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가 좀 더 폭넓게 조언을 구하고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아쉽다. 선거에 이기고도 임기를 못 채운 것이 아니라 미련을 못 버리고 스스로를 더 큰 나락으로 밀어놓은 그 선택이 너무도 아쉽다. 

 

세종 임금이 성공한 비결, 당태종이 실패한 이유

인생을 잘 사는 비결은 똑똑한 데 있지 않다.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른다. 주변 사람들과 두루 잘 어울려야 한다. 특히 좋은 사람들을 가까이에 두어야 한다. 좋은 사람들의 정직한 조언이 그릇된 판단을 막아주는 가장 훌륭한 보루다. 

세종 임금은 누구보다 현명하고 훌륭한 분이었으나 늘 주변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고약해(1377-1443)라는 신하가 회의 중에 임금이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린 일이 있었다. 신하들이 고약해를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임금은 벌주지 않았다. 그 이유가 이러했다. 

“내가 고약해의 무례함을 벌주려고 한다면 사람들이 내 뜻을 오해하여 과인이 신하가 간언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할까 염려가 된다.” 

세종이 얼마나 주변의 정직한 조언을 아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태종은 중국 역사상 가장 현명한 군주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직언하는 충직한 신하들이 사라지고 난 후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질렀다. 바로 고구려 침공이었다. 생애 첫 패배 이후 그는 얼마 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초기의 치적에 비해 말년이 불운했던 것이다. 조언자가 사라진 것이 재앙의 뿌리였다. 

요컨대, 지도자는 자기 판단보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한다. 자기 주장만 하고, 좋은 건 내가 하고 나쁜 건 남에게 내미는 사람은 주변에 사람이 없다. 남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그것이 주변에 사람의 발길과 조언이 끊어지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추진력은 다양한 조언을 수렴한 다음에 발휘해야 한다. 마늘소 전문점인 덕향을 건립할 때가 그랬다. 최종 의견이 나오기 전까지 숱한 고민을 하고 다양한 조언에 귀를 기울였지만 건립이 결정되었을 때는 강력하게 추진했다. 반대도 많았고 “불가능하다” “절대 안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지만 결국 목적한 바를 모두 이루었다. 결정을 내리기 전 다양한 조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정 이전의 과정이 부실했다면, 오로지 혼자만의 판단에 의지했거나 몇 사람의 말에 혹해서 내린 결정이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수양하듯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잘 다스려야 주변에 사람들이 모인다. 내 고집만 피우면 결국 좋은 사람들이 모두 떠나기 마련이다. 그 이전에 내가 어떤 업적을 이루었든 그보다 더 쓸쓸한 인생이 어딨겠는가.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고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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