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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면 한다’ 분위기 ‘하면 된다’로 바꾸니 하는 사업마다 대성공”

2004년 의성축협 조합장에 도전, 100표차 승리
“무리수” 우려에도 농협 중앙회 이사에 도전
농협사료 자회사 설립, 고령공판장 현대화 주도
‘덕향’ 1일 최고 8060만 매출, 2022년 85억
2018년 자랑스런조합장상 2020년 산업포장

  • 입력 2022.12.27 09:00
  • 수정 2022.12.27 09:18
  • 기자명 김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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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의성축협조합장
이상문 의성축협조합장

“간도 크다!”

2008년 농협중앙회 이사 선거에 출마했을 때 들은 말이었다. 전국 120개 축협조합장 중에서 3명을 뽑는 선거였다. 의성에서 왔다고 하니까 “의성이 군이냐 시냐”고 묻는 조합장도 있었고 대부분 재선이 중앙 이사에 도전했다고 하자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 통상 3선 이상 조합장들이 도전하는 자리였다. 그 반응들에 괜히 주눅이 들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워낙 절박했다. 조합이 일어서려니 중앙의 지원이 절실한데 지역조합장 명함으로는 도무지 말이 먹히질 않았다. 농협중앙회장도 찾아가고 농림부장관도 찾아갔지만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좋은 안을 들고 가도 문전박대였다. 욕심이 아니라 일 때문에 ‘자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참신한 후보’ 갈망 등에 업고 조합장 당선

솔직히 무모한 도전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가 조합장 선거에 나섰던 배경만알아도 쉽게 납득이 갈 것이다. 2004년 4월, 축협 조합장 도전을 권고받았다. 4월에 전임 조합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사퇴를 했다. 조합에서는 이전 조합장 선거에 연루된 인물이 아닌 참신하면서도 사회에 봉사를 많이 한 영향력 있는 후보를 내세우자는 여론이 일었다. 나는 20여년 전 축협 이사로 있다가 면장으로 영전되었던 까닭에 조합원들과는 교류가 거의 없었다.

출사표를 던지고 파격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무엇보다 연봉을 7500에서 2500으로 삭감했다. 더불어 축산업 발전에 대한 다양한 포부를 공약에 담았다. 선거는 3파전이었다. 전임 조합장의 친형도 후보로 출마했다. 참신한 후보에 대한 갈망은 컸다. 선거운동도 거의 못 한 상황에서 100표 차로 승리했다. 유권자는 1400명이었다. 내홍으로 초토화된 시골 축협의 조합장이 무슨 힘이 있었겠는가. 초임 시절에는 내부를 추스르기도 힘들었다. 바깥에서 보는 이미지도 좋지 않았다. 취임 3년 전 축협안계지점에서 10억대 규모의 금융사고가 일어났다. 중앙 9시 뉴스에 소식이 전해졌다. 의성의 우사였다.

초임 당선은 어떤 면에선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누릴 건 손톱만큼도 없고 할 일만 태산”이었다. 자신은 있었다. 면장으로서 공직 경험을 두루 쌓았고 지역에서는 여러 분야에 인맥이 든든했다. 내부를 정리하고 의성 내에서 축협의 입지를 다지는 부분은 자신이 있었다. 당시 군수(정해걸)와도 관계가 돈독했다.

앞뒤 가릴 것 없이 지역을 살려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뛰었다. 무엇보다 조합원들에게 소득이 창출되도록 해야 했다. 돈이 되어야 조합을 따를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한마디로 ‘실리주의’였다.

4년 동안 지역은 그나마 안정되어 갔다. 문제는 중앙과의 협업 혹은 지원이 필요한 사업들이었다. 안건이 좋든 나쁘든, 아이디어가 훌륭하든 아니든, 도무지 들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간 크게’ 출사표를 던진 배경이었다. 

유세를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각 지역 조합장을 만날 때마다 절망만 가득 안고 돌아올 때가 많았지만, 어쨌거나 열정이 통했던 모양이었다. 광주, 진주, 수원 같은 거대 축협이 출마한 선거에서 당당히 2등을 차지했다. 3명까지 뽑는 선거였다. 꼴찌도 아니고 2등, 깜짝 놀랄 만한 결과였다.

4년 임기를 마치고 재선에도 성공했다. 118명 중 2명을 뽑는 선거에서 1등에 당선됐다. 당시 광주, 원주, 진주 등 인구가 50만이 넘는 시 단위 조합장을 모두 꺾고 1위 당선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이사를 하면서 감사위원, 평가 보상위원을 겸직했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조합’으로 이미지 탈바꿈

중앙회 이사 타이틀을 거머쥐고 나자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 우리의 이야기가 중앙에 수용되기 시작했다. 유통 활성화를 위한 브랜드 구축 자금, 암소 번식 및 사료비 지원, 조합원들에 대한 운송비 보전 등의 혜택을 얻어냈다. 사료도 농협 사료를 쓰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개인 사료를 썼던 까닭에 사료의 질이 좋지 못했고 중앙의 지원을 얻기도 힘들었다. 당장 구매비가 올라간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질적인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조합원들 한명 한명 만나 설득을 했다. 신용 사업과 경제 사업을 연계해서 추진한 것도 성과였다.

중앙회 이사를 2회 하고 나니까 의성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졌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조합’이라는 평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합이 인정을 받자 마늘소도 전국 브랜드로 발돋움을 했다.

‘자리’의 힘은 컸다. 새로운 역할이 주어지면 기꺼이 맡았다. 2019년부터 경북축협 운영협의회장을 맡았고, 2020년부터 2022년 4월까지 전국축협운영협의회 회장을 역임하고 다시 연임을 하고 있으며, 농협학원 감사도 연임하고 있다.

주어진 역할이 크다 보니 규모가 큰 사업에 좋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를 테면, 2011년 무렵 경북광역브랜드 ‘참품한우’가 런칭할 때 경북의 17개 조합이 모두 참여하도록 하는데 힘을 보탰다. (원래는 11개 조합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모든 조합이 손을 잡은 덕에 ‘참품한우’가 명실공히 경북 대표 한우 브랜드로 자리를 잡을 수있었다.

경북 고령공판장 시설 현대화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였다. 당시 지어진 지 20년이 넘은 시설이었다. 냉동ㆍ냉장 시설이나 계류시설이 미비했다. 당시 충북 음성에 공판장을 만들고 있었고, 중앙에서는 음성 공판장이 완공되면 해결될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중앙회 이사 직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당시 농협중앙회 총무부장을 설득해 사업의 물꼬를 텄다. 사업비 20억을 우선 책정한 후 향후 450억을 출자했다. 그 결과 2010년 고령공판장 현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농협 자가배양사료(TMR)를 만드는 농협사료 자회사 설립도 추진했다. 당시 경북 북부의 9개 조합이 연대했으나 중앙에서 난색을 표했다. 자회사(농협사료)에서 자회사를 만든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선례가 없으면 이번 사업을 선례로 만들면 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중앙회 이사’로서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은 불러 조지고, 법원은 미뤄 조지고, 행정은 보고하다 조진다는데, 농협은 규정 찾다 조집니까!”

2년 만에 150억을 출자해 경북 상주에 농협사료 자회사를 건립했다. 2014년의 일이었다. 규정 운운할 때 뒤로 물러났으면 결코 성사되지 못했을 일이었다. 끈덕지게 물고 늘어진 덕에 성공할 수 있었던 사업이었다.

 

“무리다” “조합 망한다” 했지만 번듯하게 성공한 사업

바깥일이 잘 풀리니 집안 살림도 탄력을 받았다. 안계 의성읍에 있던 사료창고를 봉양으로 옮겨 통합했고, 2013년에는 송아지 경매시장을 설립해 농가 소득 증대에 기여했다. (상인이 190만원에 사가던 것을 경매장에서는 390만원에 팔 수 있었다.) 육가공 시설, 동물약품, 가축병원 등 농가 소득과 연계되는 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2012년에는 65년에 지어올린 축협 건물을 리모델링하기도 했다.

의성축협과 관련해 가장 큰 사업은 마늘소 전문 식당 ‘덕향’이었다. 그전에는 읍내 13개 식당과 연계해 축협에서 마늘소를 구매해 식당으로 가면 차림비 4,000원에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이었다. 호응이 좋았으나 한계가 있었다. 마늘소 전문식당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2015년 구상을 시작해 땅을 구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부지 매입 때부터 지역에서 식당을 경영하던 작목반 회원들이 조합에 찾아와 공사에 반대한다는 집단 시위를 했다. 행정 기관에 민원을 제기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제동을 걸었다. 30여명이 조합 을 탈퇴한다는'마지막 카드'까지 제출하는 상황이 이어졌지만 계속 설득하면서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했다. 요컨대, “무리하다” “조합 망한다”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극복하고 총 65억을 투입해 건립에 성공한 것이었다.

2층에 회의실과 120명 수용이 가능한 강당을 기획할 때 이견이 만만찮았다. “식당에 무슨 강당이냐”는 반론이었다. 조합이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한 방법이라는 신념으로 밀어부쳤다. 주민 누구나 와서 공연, 피로연, 각종 회의 등의 모임을 가지고 또 식사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의성에도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대형 멀티비전과 함께 음향 내부 장치를 모두 최신형ㆍ최고의 품질로 갖추어 놓고, 지역민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은 시낭송 모임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행사와 모임이 그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읍내에 이런 공간이 있어서 너무 좋고 편리하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식당의 경영 원칙은 단 하나다. ‘최고의 시설, 최대한의 서비스’. 가장 좋은 음식을 돈 안 남기고 판다는 생각으로 경영에 임하도록 했다. 홍보 역시 게을리하지 않았다. 미스코리아 대구에 ‘미스 마늘소’를 뽑아 자연스럽게 미스코리아를 통한 홍보가 되도록 했고(미스코리아들이 간간이 식당을 찾고 이를 언론에 홍보하고 SNS 등으로 퍼나르는 것도 홍보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 라디오 등을 통해 꾸준히 ‘덕향’을 시도민에게 알렸다.

‘덕향’은 2020년 11월, 코로나19 파동 한중간에 문을 열었으나 입소문을 타고 금세 지역 최고의 핫플레이스에 등극했다. 지금까지 기록한 최고의 1일 매출은 8,060만원이었다. 추석 전날에 올린 매출로 소 7마리를 하루 안에 소비한 셈이었다. 평균으로 따지면 1일 2,500만원 정도가 된다. 2022년에는 80억 매출을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목표는 85억으로 잡았다.

돌이켜보면 ‘덕향’을 비롯해 “무리다” “안 된다”고 하는 사업들 중에 안 된 사업은 하나도 없다. 리더가 의지를 가지고 구성원들이 합심하면 안 될 일은 없다. 조합장과 중앙회 이사직을 수행하면서 가지게 된 확신이다. 주변에서도 격려를 많이 해주셨다. 2018년 농업협동조합중앙회에서 수여한 ‘자랑스런조합장상’, 2020년에 받은 산업포장이 그것이다.

그런 격려에 힘입어 더욱 의지를 높이 세우고 “될 만한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 “반드시 필요한 일”에 열정과 에너지를 쏟았다. 위에서 끌어주고 아래에서 밀어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수고하고 애쓴 모든 분들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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