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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국립 박물관 앞마당에서 마주친 크메르 제국의 미소

캄보디아 국립 박물관, 크메르 제국 유물 전시
번성했던 제국의 역사를 쓸쓸한 목소리로 전한 청년
박물관 마당서 기념촬영 하던 소녀가 보인 뜻밖의 반응

  • 입력 2022.12.26 09:00
  • 수정 2022.12.26 09:12
  • 기자명 김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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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국립 박물관.
캄보디아 국립 박물관.

“오오!”

정적을 깬 것은 새였다. 캄보디아 국립 박물관 앞마당에서였다. 지붕밑에서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새가 한껏 날개를 펼치자 나무와 박물관 지붕 사이의 폭이 절반 이상 메워지는 느낌이었다. 큰코뿔새였다. 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날개를 펼쳤을 때의 최대 길이가 180cm에 이른다. 부리 위에 뿔 같은 코를 얹은 독특한 외모와 통념을 벗어나는 크기에 공룡들이 살던 시대의 어귀에서 날아온 생명체를 보는 느낌이었다.

새는 순식간에 박물관 마당을 주름잡는 스타가 됐다. 큰코뿔새가 앉은 나무 옆으로 포토라인이 생겼다. 허공에 치켜든 카메라의 눈알은 모두 새를 노려보고 있었다. 새가 움찔 움찔 날개를 펼칠 듯한 기색이 비치면 휴대폰이 파도에 얹힌 부표처럼 일제히 둥실거렸다. 정숙한 박물관의 분위기에 익숙해진 이에겐 낯선 풍경이었다.

 

자식들에게 공부를 시키지 않는 부모들

박물관에 들어온 지 한 시간 남짓, 그 사이 침묵에 중독됐다. 박물관 정문에서 현지인보다 100배 비싼 요금(10달러)를 지불할 때 탄식을 쏟아낸 것 외에는 한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누구 할 것 없이 침묵이라는 독재자의 충직한 신하로 변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거대하고 아름답지만 팔이 잘리거나 코가 떨어져나간 석상 앞에서 예쁜 꽃을 보거나 맛난 음식을 먹었을 때처럼 감탄사를 쏟아낼 수는 없었다. 그저 조용히 유물들 사이를 걸어 다녔다. 박물관 직원들도 과묵했다. 특히 박물관 한켠에 마련된 연구실에서 돋보기로 유물을 들여다보고 있는 학자는 유물만큼이나 말이 없어 보였다. 사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관심을 두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했다. 

관람객은 대부분 유럽인들이었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길로 유물을 꼼꼼하게 살폈다. 한때 난폭한 육식 짐승처럼 아시아를 덮쳤던 과거의 유럽인들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세월과 역사의 풍파에 팔이며 다리, 심지어 머리가 달아나버린 유물들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 훼손된 신체가 식민지의 미래였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프랑스인들은 90년의 지배기 동안 캄보디아인들에게 조용히 침묵하고 순응하는 법만을 가르쳤고, 그들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80%를 점령했던 영민함을 모두 잃어버린 후에야 독립할 수 있었다. 역사를 이끌어갈 힘을 상실한 크메르의 후손들은 얼마안 가 참혹한 전쟁을 겪었다. 많은 이들의 신체가 유린당한 유물 같은 신세가 되었다. 게다가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캄보디아인들은 식민지 시기에 이어 다시 한번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캄보디아인들의 내면엔 두터운 침묵으로 둘러싸인 경계선 같은 게 존재합니다. 같이 만나서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고 함께 일을 해도 두터운 침묵의 막은 잘 열리지 않아요. 킬링필드가 남긴 흔적이죠. 그때 사회적인 영향력이 있거나 지식이 있는 사람은 모두 죽였잖아요. 아직도 시골에 가면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지 않거나, 남자 아이에게 여자 옷을 입혀서 키우는 사람들이 있어요.”

캄보디아에서 10년 넘게 생활한 어느 한국인의 이야기였다. 그가 관찰한 캄보디아의 내밀한 풍경이 정확한 것이라면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유물은 침묵인지도 모른다. 훼손된 육체들 사이에서 단 한번 침묵에 균열이 날 뻔한 순간을 만났다. 동행한 20대 청년에게 아주 짧은 역사 강의를 들었다. 의대에 다니고 있는 이 캄보디아 청년의 강의는 “700년”이라는 한 마디가 전부였다. 그때 그는 손가락으로 벽에 걸린 오래된 지도를 가리키며 작은 원을 그렸다. 지도에는 크메르 제국의 영토가 노랗게 칠해져 있었다. 전성기인 7세기에 그들은 인도차이나 반도 대부분과 중국 남부 일부까지 지배력을 행사했다. 캄보디아 청년의 “700년”이라는 말속에 담긴 전율은 온전히 토해지지 못했다. 말끝을 뭉그러뜨리면서 슬쩍 웃음을 베어 물었다. 수줍음이 많은 소녀 같은 표정이었다. 그는 말을 명료하게 맺는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증조ㆍ고조할아버지 세대가 유럽인들과 생활하면서 배웠을 몸짓.

 

박물관 마당에서 마주친 소녀

“퉁!”

관광객들의 관심으로 잠시 우쭐해졌던 새를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든 건 박물관 직원이었다. 나뭇가지에 앉은 녀석과 다른 큰코뿔새였다. 녀석은 십 미터에 달하는 대형현수막을 붙잡고 있는 걸개에 앉아 있었다. 보통 남자의 팔뚝만 한 부리로 현수막을 쿡쿡 찍어댔다. 현수막에는 벌써 몇 개의 구멍이 나 있었다. 여자 직원이 물병을 두르려 만든 파열음에 큰 새는 겁에 질려 사위를 두리번거다가 훌쩍 허공으로 몸을 떨어뜨렸다. 그 짧은 순간 큰코뿔새의 위엄이 무너졌다. 고작 페트병 부딪치는 소리에 겁을 먹다니! 초라한 도망자 신세가 된 새는 자신의 처지가 억울한지 굼뜬 몸짓으로 박물관 뜰에 늘어선 나뭇가지 사이를 이리저리 배회했다.

잠깐의 소란 후에 박물관은 다시 고요에 잠겼다. 침묵은 이전보다 더 깊은 위엄을 가지고 공간에 군림했다. 박물관 한 켠에서 현미경으로 유물을 들여다보고 있는 학자의 모습이 가장 정확한 모범이었다. 그는 시종 미동도 없이 과거의 유물에 골똘하게 빠져 있었다. 돋보기 아래에 있는 유물이 그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있기라도 한 듯이. 

고요가 재집권한 지 채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았을 즈음, 다시 작은 균열이 일었다. 역시 박물관 마당에서였다.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캄보디아 여성이 마당에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일행인 듯한 중년의 남자와 또래 여성이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관광지 사진을 남기려는 듯했다. 그처럼 엄숙한 공간에서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시골에서 올라온 이들이 아닐까 싶었다. 정숙한 박물관에서 만난 뜻밖의 풍경에 두 남녀 사이에 슬쩍 붙어서 여성을 사진에 담았다. 일단 찍은 후 양해를 구할 생각이었다. 셔터를 누르면서 몹시 수줍어하며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여성의 모습을 상상했다. 

“생슈(Thank you)!”

카메라를 내리고 그를 쳐다봤을 때, 전혀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푸근하게 웃으면서 손을 들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분명 평범한 학생으로 보였지만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 듯 당당했다. 당황한 건 오히려 ‘대범한’ 촬영자였다.

소녀가 떠난 후 유물을 관찰하던 학자처럼 벤치에 앉아 그의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여고생의 사진을 보고 있는데 엉뚱하게도 몇몇 오래된 석상의 얼굴에 담긴 넉넉하고 여유로운 미소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박물관의 학자를 긴 침묵에 빠져들게 만든 것이 바로 그 미소인지도 몰랐다. 유물들 속에 침묵의 커튼에 가려진, 말보다 더 큰 목소리를 가진 가장 원시적인 상형 문자들이 얼마나 많을까. 오랜 연구와 학문적 고찰이 학자에게 유물의 언어를 깨닫게 했을 거였다. 크메르 유물 연구는커녕 생전 처음 박물관을 방문한 이의 입장에서는 학자의 경지가 너무 높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평범한 캄보디아 학생에게 배운 속성 수업으로 만족해야 할 듯했다. 일종의 체념이었지만 아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만큼 소녀의 태도가 압도적이었다.

박물관을 나오는 길, 소녀의 자신감이 전이된 것일까, 오만한 질문 하나가 마음에 불쑥 솟았다.

‘찬란했던  시절의  유물이 아니라 평범한 소녀에게서도 위대한 제국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걸 저 학자는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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