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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잡은 지 50년 영상에 기사까지 올해 노인복지대상 수상

시부모와 남편 간병 14년, 우울증 극복하려 봉사 활동
대구지하철참사 때는 갈비뼈 부러진 줄도 모르고 배식
2019년 11월 사진전, 전시된 인도 사진 45점 ‘완판’

  • 입력 2022.12.05 09:00
  • 수정 2022.12.05 10:35
  • 기자명 류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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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중구노인복지관 노인일자리홍보사업단장
대구중구노인복지관 노인일자리홍보사업단장

할아버지는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장을 지냈다. 외할아버지는 안동 도산서원장 출신. 한 집안에서 한 명이라도 서원의 수장이 되는 것도 쉽지 않다. 서원장의 위엄은 어마무시했다. 그런 집안에서 자라 시집을 왔는데 보수적 색채와 분위기는 더 짙어졌으면 짙어졌지 결코 현실과 사회에 희석되진 않았다. 시아버지는 유림단체인 담수회의 발기인이었던 것. 올림머리를 하고 한복을 갖춰 입은 채 온종일 집에만 있어야 했다. 맏며느리의 운명이었을까. 외출은 남의 얘기, 꿈도 꿀 수 없었다.

 

눈 감아도 옛 도심 모습 머릿속에 훤하게

영주 출생이나 대구 중구의 토박이다. 눈을 감아도 대구 지역 곳곳의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지금은 없어진 대구 종로의 명물 대구지물, 아리수다방 등 고풍스런 건물과 흔적이 고스란히 머릿속에 남아 있다. 즐겨 찾는 미도다방의 역사도 훤하게 그려진다. 어릴 적 만경관 앞에서 열린 야시장에서 사먹곤 했던 제삿밥이 그립다. 진골목, 김광석거리 등 대구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유서 깊은 거리는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다.

지금도 중구 곳곳을 누빈다. 자고 나면 하나씩 없어지는 건물에 가슴이 아프다. 콘크리트 재질, 잘해봐야 빨간 벽돌로 조잡하게 지어졌을지 몰라도 헐어지는 것은 벽돌이지만 무너지는 것은 오래된 추억과 역사다. 그래서 집을 나섰다. 하나라도 더 없어지기 전에 담아내야 한다. 후손들에게 남길 것은 재산이 전부가 아니다. 기억은 증발한다. 증발한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기록해야겠다는 결심의 배경이었다.

 

시부모 남편 떠나자 밀려든 우울증

남은 것은 우울증이었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남편까지 간병만 14년이었다. 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무작정 중구청으로 찾아갔다.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다. 대한적십자사봉사회에 몸을 담아 남산기독병원의 정신병동 환자들을 돌보는 게 일이었다. 매주 수요일은 환자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가는 날, 환자 2~3명과 봉사자와 간병인 등 10여 명이 차 한 대에 올라 거리를 누볐다. 어려웠다. 어떨 때는 기본적인 의사소통까지 불가능했다. 수차례 반복되고 나서 깨달은 바가 컸다. ‘돕자고 온 사람이 환자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었구나.’ 그길로 대학에 진학했다. 

우울증의 여파였을까. 밤에 잠도 자지 못했다. ‘환자들의 관점에서 바라보자.’ 야간 대학에 진학해 사회복지를 공부하게 된 배경이었다. 환자들을 돌봤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은 딱 하나였다. 공부는 잘됐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한의학을 공부하면 좋겠소.” 남편 생전에 그럴 여건은 되지 않았던 게 아쉬웠을 뿐이다.

 

참사의 현장에서 뼈 부러지도록 봉사활동

대구지하철참사가 벌어졌다. 192명이 한순간에 운명을 달리했다. 대구 한 복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땅속에서 난 불은 통풍구와 계단으로 시커먼 연기를 끊임없이 뿜어 댔다.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들것에 실려나오는 환자가 속출했고 제 걸음으로 나온 사람의 얼굴에서 보통 사태가 아닌 것을 직감했다. 현장에는 관계기관이 총출동해 구조본부 등을 차렸다. 끊임없이 산사람과 죽은 사람이 나오고 화재 조사 인력이 투입되던 2달 동안 아침 6시부터 밥을 펐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게 한 에너지원이었다. 어느 날은 배가 너무 아팠다. ‘일을 많이 해서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갔으나 병원에서는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진단했다. 차에서 밥통을 내리다가 부딪친 것이었다. 하지만 여유롭게 환자행세를 할 수는 없었다. 봉사자의 신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인생을 바꾼 카메라 한 대

50여 년 전, 카메라를 쥐었다. 시아버지가 일본으로 출장을 갔다가 오는 길에 사온 것이었다. 미놀타의 필름카메라였다. 처음으로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뱃속에 있는 아이가 태어나면 자라는 모습을 찍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은 나비효과였다. 외출을 허가 받은 것이다. 일주일에 단 하루였다. 카메라를 메고 대구 곳곳을 누볐다. 버스를 타고 떠나는 게 그렇게나 좋았다. 거리를 다니면서 셔터를 쉼 없이 눌렀다. 일주일에 쓴 필름만 10통, 카메라와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1년 동안 빈소를 차렸다. 탈상까지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노인성 질환이 원인이었다. 그동안 밥을 차려주고 간병했던 시절도 끝이 났다. 하지만 평화는 길지 않았다. 남편도 일찍 세상을 등졌다. 새로운 카메라를 하나 남겨두고 말이다. 꼬깃꼬깃 모은 쌈짓돈 300만 원이 손에 들렸다. 남편이 건내준 것.

“공모전에 나가려면 더 좋은 카메라가 있어야지.”

죽음의 기로에서도 남편은 배우자를 더 생각했다. 그길로 카메라를 사러 거리를 누볐다. 찰칵하는 셔터소리에 매혹되고 돌아오니 이미 남편은 저 세상 사람이었다. 평생의 한이다.

디지털 일안 반사식 카메라(DSLR), 사진을 계속 찍었다. 공모전에도 계속 출품했다. 자녀가 생기고 자녀의 자녀가 태어나고도 셔터는 쉴 틈이 없었다. 그렇게 한 장 두 장 작품을 건졌고 상도 여럿 받았다. 셀 수가 없다. 집을 정리할 때는 상장만 쏙 빼서 보관해도 그 수는 가늠할 수 없다. 수자원공사 공모전에서 식수대의 물을 마시고 있는 손녀의 사진이 당선됐다. 지로고지서 등 수자원공사의 대표적인 사진으로 오랫동안 활용됐다. 

외국도 누볐다. 사진작가협회 회원들과 한 달 넘도록 인도에 다녀온 것. 인도에서 배운 것은 많았다. 순수한 사람들의 심성부터 빈부격차까지. 그때는 영상을 담을 생각을 못 했다. 스마트폰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많이 보급됐더라면 그 당시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더라면 영상을 꼭 담았을 것이라는 게 후회이자 소회다. 인도에 다녀온 지 5년째인 지난 2019년 11월, 대구중구노인복지관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인도 사진 45점이 전시됐고 ‘완판’을 기록했다. 실력 자랑, 돈벌이가 아니었다. 복지관의 어르신들에게 인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배경이었다.

 

시를 발표했더니 방송국이 들이닥쳐

시도 써서 발표했다. 제목은 ‘비우니 채워지더라’. 분량이 상당했지만 이 시를 발표하고 난 뒤에는 방송국 촬영팀이 집에 들이닥쳤다. 이야기 거리가 많았기에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촬영팀은 “다음에 올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뒤 아직도 소식이 없다. 워낙 담을 이야기가 방대했던 탓이었을까. 어느 하나 쉬어갈 타선이 없었던 탓이었을까.

 

DSLR대신 휴대전화로

DSLR를 내려놓은 지 수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광경만 봐도 구도가 잡힌다. 무거운 카메라 대신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렸고 프리미어 프로 대신 키네마스터로 동영상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복지차원에서 시행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의 근로자들을 담아 홍보하는 역할이 주 업무다. 오전에는 취재를 하고 오후에는 기사를 쓰고 동영상을 편집한다. 

그렇게 지역의 노인 일자리는 컴퓨터와 휴대전화의 화면을 타고 중구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전국으로 뻗어 나간다. 급여보다 재능기부다. 환자를 부축하고 배식을 하는 등 힘이 필요한 봉사활동은 진작에 섭렵했다. 더 아프기 전에, 되도록 더 많은 풍경과 사람과 이야기를 담고 싶다.

휴대전화로 바꾼 뒤 몸은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어디에나 반대급부는 있는 법. DSLR의 무게가 목의 디스크를 압박한 반면 휴대전화 화면은 각막을 자극했다. 그래도 화면을 놓을 수는 없다. 스스로 기억을 저장한다는 신념이 먼저다. 돈이 될까, 누가 인정해줄까. 이런 걱정은 뒷전이다. 하나라도 없어지기 전에, 하나라도 무너지기 전에 그 모습을 담아야 한다. 철거 가림막이 자리할 때마다 추억의 파편이 한 점씩 날아가는 것 같다.

 

대구시노인복지대상의 마지막 조각

대구시노인복지대상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올해로 11회를 맞은 대구시노인복지대상은 개인 1명, 기관 1명, 단체 1팀까지 각 3개 부문만 수여한다. 중구는 올해 개인이 받으면서 대구에서 유일하게 노인복지대상 전 영역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달 5일 대구시가 노인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최고 훈격인 모범노인 부문 대구시노인복지대상을 받은 박영자(76) 대구중구노인복지관 노인일자리홍보사업단장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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