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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문화 확산, 기적의 씨앗을 뿌리는 일입니다”

  • 입력 2022.10.11 09:00
  • 수정 2022.10.18 15:51
  • 기자명 박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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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대구한국일보시민기자대학총동창회장
김기춘 대구한국일보시민기자대학총동창회장

 

“준비기간이 이틀도 안 됐어요. 말 그대로 007 작전 뺨쳤죠.”

지난달 17일 열린 K-트로트 페스티벌 경주 2022에서 행사 이외에 특별한 ‘작전’이 펼쳐졌다. 태풍 힌남노로 수해를 입은 경주 시민들을 돕기 위한 수재의연금 모금 활동이었다. 김기춘 대구한국일보시민기자대학총동창회장의 지휘 하에 20여명의 대구한국일보시민기자대학 봉사자들이 모금 박스를 들고 객석을 헤집고 다니며 모금을 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모금액은 1,000원에서 최대 1만원으로 한정했다. 5만원짜리를 넣은 관객도 있었지만 가장 많은 기부를 한 사람은 봉사자들 자신들이었다. 3시간 동안 한 사람당 2만 보 이상을 걸었다. 김 회장은 “대학생들을 불러서 시켰으면 1인당 10만 원 씩은 줘야했을 것”이라면서 “특수 작전만큼이나 힘들고 애가 쓰인 활동이었다”고 평가했다.

48시간 앞두고 시작된 작전명은 ‘서스펜디드 커피’

2만여 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큰 프로젝트였지만 준비기간은 넉넉치 않았다. 공연이 시작하기 약 48시간 전, 15일 저녁에서야 밑그림이 그려졌다. 그들이 택한 모금 방식은 ‘서스펜디드 커피’였다. ‘서스펜디드 커피’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시작된 숨은 사랑운동으로 커피를 주문하면서 거스름돈이나 잔돈을 커피점에 맡겨 어려운 이웃들이 무료로 커피를 마시게끔 할 수 있는 릴레이 사랑운동이다. 

계획은 정립됐지만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 김 회장의 리더십이 빛났다. “이미 하기로 결정난 일을 시간 핑계를 대며 부족하게 준비할 수는 없었다”며 “모금함 제작부터 관객 안내, 모금 방법 등 준비해야 할 일들이 태산 같았지만 봉사자 한 분, 한 분이 일당백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에겐 또 다른 걱정도 있었다. 오랜 코로나19사태에 지친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진행되는 공연에서 모금활동을 한다는 것이 아무리 좋은 취지일지라도 주변의 반대 여론이 만만찮을 것이란 우려였다. 하지만 기우였다. 막상 모금활동을 시작하자 그곳에 있던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모금함 안에는 10원짜리 동전뿐 아니라 온누리상품권도 있었다. 김 회장은 “말 그대로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봉투에 다 집어넣는 분들이 많았다고 들었다”면서 “액수를 떠나 2만여명의 관객들이 한마음이 되는 것이 바로 기적”이라고 말했다. 

전국에서 관객이 몰렸지만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사람들은 경주시민들이었다. 이웃의 불행에 얼마라도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비장한 마음이 얼굴에 드러날 정도였다. 다만 타지에서 온 관객들은 그 반응의 정도가 덜했다. 특히 입구에서 모금 봉투를 나누어줄 때 아예 받아들지도 않는 경우도 있었다. 김 회장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저도 포스코 수해만 알았지 경주도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거든요. 잘 몰랐으니까 당연히 ‘이게 뭐야’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김 회장은 ‘기적’의 방점을 당장의 모금활동이나 모금액보다 모금을 통해 경주의 사정을 알린 것에 두었다. “이번 모금으로 전국에서 몰려온 트로트 팬들이 경주의 사정을 알게 되었잖아요. 2만 개의 기적의 씨앗이 경주와 전국에 흩뿌려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대에서 경주의 피해 상황을 알린 트로트 가수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포항 출신 전유진과 대구 출신 이찬원이 적극적으로 관객들에게 수해 사실을 알렸다. 김 회장은 “앞으로 전유진과 이찬원은 나의 영원한 스타”라면서 “해당 가수의 팬들이 늘 좋은 일을 열심히 한다는 소식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데, 가수의 마음 씀씀이가 팬들의 공감 수준을 높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부문화 활성화 위해 대구한국일보시민기자대학 앞장설 것

행사 당일 오후 10시쯤 무대가 끝나고 2만여 명의 관객들이 공연장을 빠져나갔지만 김 회장과 봉사자들은 그제야 무대 위로 올라와서 모금된 의연금을 정산하기 시작했다. 봉투에서 돈을 모두 빼낸 뒤 다시 금액별로 분류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김 회장은 “정산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2시가 넘었더라”며 “몸은 지치고 피곤했지만 세상의 온도를 한층 더 올렸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3시간 동안 2만 보를 걸으며 기적의 씨앗을 함께 뿌린 대구한국일보시민기자대학 학우들 모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면서 “기적은 누군가의 아낌없는 희생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지금껏 연탄나눔, 무료급식 등의 활동을 꾸준히 이어온 대구한국일보시민기자대학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기부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기부 분야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즈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이 부담없이 흔쾌히 동창하는 서스펜디드 형식의 기부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부가 문화가 되고 습관이 되어야 진정한 선진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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