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역대 최대 규모 공연, 2만여 관객 함성 천년 고도 ‘쩌렁쩌렁’

흩뿌리는 비에도 응원봉 흔들며 공연 기다린 관객들
“경주시 역대 행사 중 최대 규모, 최고 흥행작품”

  • 입력 2022.10.04 09:00
  • 수정 2022.10.18 14:27
  • 기자명 류수현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K-트로트 페스티벌 경주 2022
K-트로트 페스티벌 경주 2022

지난 달 17일 오후 6시 경북 경주시 황성동 경주시민운동장. 빗방울이 떨어지는 가운데 형형색색 옷을 갖춰 입은 팬들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손에는 별모양 야광봉 등 응원 도구를 든 시민이 즐비한 가운데 스텐드석에는 가수의 이름을 한글자 씩 딴 피켓을 들고 카드섹션까지 연습하는 관객들도 포착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K-트로트 페스티벌 경주 2022에 참석한 관객들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고 T자로 길게 놓인 무대 양옆으로는 이른바 좋은 자리를 선점하던 그 순간의 감동을 되새기는 관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소 뒷자리에 있던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일찌감치 무대 앞쪽으로 모여들었다. 경호 인력들은 “뒤로 가세요” “여기 넘어오시면 안 됩니다” “통로 막지 마세요” 등을 연거푸 외치면서 교통정리에 한창이었다.

면적 2만1,516㎡ 부지에 연면적 4,439㎡로 일반관람석 1만547석 등 총 1만1,910석인 2층 규모 스탠드를 비롯해 운동장에 설치된 의자 1만 개는 관객들에게 점령당한 지 오래였다. 지난 1979년 8월 20일 준공된 경주시민운동장이 이날만은 ‘만석’을 이룬 것이다. 한 경주시 은퇴 공무원은 “축구대회와 체육대회 등 여태까지 많고 많은 행사와 대회가 이곳을 지나갔지만 운동장에 발을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인파가 몰린 적은 개장 이래 전무했다”면서 “경주시 역대 행사 중 최대 규모, 최고 흥행작품”이라고 밝혔다. 

역대급 인파가 몰린 가운데 TV에서나 볼 수 있는 특급 가수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관객의 고막을 때릴 수 있었던 것은 경주시가 부단히 움직인 결과이기도 했다. 지난 7월 K-트로트 페스티벌 대구 2022에서 3만여 명이 몰려 교통이 마비되는 등 인산인해가 확인됐다. 경주에 모일 관객 수를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했다. 경주시는 수많은 장소를 물색하던 중 경주시민운동장을 선택했다.

하지만 준공 40년이 훌쩍 넘은 운동장은 곳곳은 세월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나타났고 지난 6월 보수공사에 착수한 경주시의 공사 기간은 10월 완공으로 계획돼있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특단의 조치를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공기를 한 달 넘게 줄인 것. 현장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시도였으나 경주시는 안전관리계획을 재수립한 뒤 장비와 인력을 재배치해 구조보강공사를 우선 시공하면서 튼튼한 경기장을 조성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2만 명이 왕래 했음에도 운동장은 건실했다.

지상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가운데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보상 강수확률은 사실상 100%, 강수량이 문제였다. 관객들도 언제 있을지 모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옷까지 준비해 완전 무장했지만 응원의 열기, 가수를 보겠다는 열의만큼은 떨어지는 빗방울도 날려버릴 만큼 뜨거웠다. 결국 맥을 못 추던 빗방울은 7시쯤 회광반조를 보인 뒤 퇴각했다. 2만여 명의 함성에 빗방울도 달아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가 올라올 때마다 야광봉과 피켓 등은 관객들의 손 위에서 춤을 췄고 그와 동시에 음악 소리만큼이나 큰 함성이 운동장 밖까지 울려 퍼졌다. 무대 위에서는 100m 넘게 떨어져 있는 관객석의 카드 섹션도 선명했다.

같은 시각 운동장 밖에서는 혹시나 입장할 수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포착됐다. 특히 표를 한 장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이날 하루만큼은 현장 밖의 시민들은 모두 경주사람이었다. “경주시민인데 좀 들 어갑시다” “신분증 보여드릴게요” 등 무의미한 시도가 이어지는 동안 한 쪽에서는 행사장을 빠져나온 관객들이 공연을 마치고 귀가하는 가수의 차량에 밀착해 가수와 악수를 하고 손을 흔드는 등 자석으로 변신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가수의 차량이 행사장을 빠져나갈 때마다 가수를 기다리는 관객들도 바뀌면서 가수가 탄 차량은 입구를 빠져나가기도 전에 수차례씩 정차를 반복했다.

공연 시작 4시간여 만인 10시쯤 모든 공연이 끝났고 시민들은 돌아갔다. 돌아가는 인파들의 눈빛에서는 입장 당시 설렜던 그 흔적이 역력했다. 

“이런 행사를 언제 또 보나. 오늘 좋은 구경했다.” “두고 두고 자랑해야겠다.” “무대며 객석이며 이런 장관이 없다. 경주에서 이런 행사를 치렀단 사실 자체가 가슴 벅차다.”

말끔하게 갠 밤하늘에 흩뿌려진 관람 소감들이었다. 평생 간직할 추억을 얻은 천년 고도의 밤이었다.

 

저작권자 © 대구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