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위천은 군위의 위세 상징 남에서 북으로 거슬러 흘러

  • 입력 2022.08.23 09:00
  • 수정 2022.08.30 11:50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열 군위 군수
김진열 군위 군수

“고려의 태조 왕건이 이끄는 군대가 위세 당당하게 행군하는 모습에서 군위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졌다. 사실과 다르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이미 군위로 불렸다. 그보다는 김유신 장군이 백제를 치기 위해 군위 효령 장군동에 군대를 주둔시킨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한층 유력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저런 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군위라는 지명이 ‘위세 당당한 군대의 모습에서 유래되었다’는 믿음 자체다. 믿음 또한 사실 못지않게 중요한 역사의 한 부분이다. 사람들의 생각과 신념은 때로 사실에 버금가는 에너지를 품고 역사의 물결을 바꾸기도 했던 까닭이다. 

왜 그런 굳건한 믿음이 생겼을까. 군위와 위세라는 단어를 연결시킬 만한 배경이 몇 가지 있다. 군위 군민의 노래에 등장하는 ‘팔공산’과 ‘위천’, ‘삼국유사’ 모두 관련이 있다. 우선 군위에는 군위 밖에서 흘러드는 물이 단 한 방울도 없다. 홀로 우뚝한 팔공산을 닮았다. 여기에 더해 더욱 기이한 것은 군위읍을 가로지르는 위천(渭川)이다. 이 강은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 통상적인 흐름을 거슬러 반대 방향으로 치고 올라가며 흐르는 강은 군대의 드높은 위세를 상징하고도 남음이 있다.

팔공산에서 여덟 공신의 공으로 목숨을 건진 왕건도 군위의 강이 거꾸로 흐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알 수 없다. 그러나 군위의 지리와 후백제 군대를 격파하려고 행군에 나선 왕건의 역사를 익히 알고 있는 이라면 최후의 승자가 된 군대의 기세와 위천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켰을 것이다. 

지명 유례 다음으로 군위와 관련해 가장 자주 소환되는 역사는 일연 스님과 ‘삼국유사’다. 일연은 고려가 몽골의 침략으로 쇠락한 시대를 살았다. 민족의 기상을 고스란히 담은 ‘삼국유사’를 쓰면서 후백제를 무찌르던 태조의 기세가 되살아나 고려의 국운이 팔공산처럼 우뚝 일어나길 바라고 또 바라지 않았을까. 노승의 바람은 헛되지 않아 일제강점기의 우국지사를 비롯해 민족의 뿌리와 희망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의 책은 늘 중요한 텍스트가 되어주었다. 

신왕조 세력의 손에 죽임을 당한 정몽주 역시 태조의 군대가 가졌던 위세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는 명나라에 갔다가 왕건의 친필을 구해왔다. 당대의 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태조 왕건의 친필 시를 감상한 뒤 스러져가는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정을 담은 글을 덧붙여 이를 책으로 펴냈다. ‘백원첩’이었다. 특이한 점은 그 장소가 수도(개경)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 군위를 품고 있는 팔공산 자락이었다는 점이다. 팔공산은 여덟 공신이 목숨을 바쳐 고려의 미래를 지켜낸, 왕건의 군대가 멸절을 피하고 정신적 단결을 이끌어낸 고려의 성지였다. 정몽주와 충신들은 팔공산 자락에서 왕건의 친필을 펼쳐놓고 고려가 다시 한번 위세 좋게 일어서기를 기원했던 것이었다. 군위는 곧 공항을 품는다. 군위가 ‘위세’를 드높일 시기가 눈앞이다. 무엇보다 위천이 제대로 된 짝을 만난 느낌이다. 활주로를 두고 하는 이야기다. 비행기가 다니는 길을 하늘길이라고 한다. 그 하늘길의 시작이 활주로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세상에서 가장 가파른 길이 그곳에 있다. 중력의 법칙을 초월해 쇳덩이를 허공으로 밀어올리는 기적의 길이다. 강이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것만큼이나 도발적인 발명품이 활주로인 것이다. 군사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던 사기와 중력을 거스르는 거대한 에너지는 그 위세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군대가 위세 당당하게 군위를 지났다”는 여러 사람들의 ‘기억’은 일종의 예언이 아닐까. 군위는 대전환의 시기를 맞았다. 대표적인 인구소멸지역에서 세계적인 공항도시로, 가장 낙차가 큰 롤러코스터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코리아(고려)’의 부흥을 소망했던 일연과 정몽주의 소망이 군위 공항이 가져올 경제적 부흥과 지역균형발전을 통해 실현되기 직전이다. 궁지에 몰렸던 왕의 부대가 결국 힘을 회복해 혼란스러운 정국을 끝내고 역사의 진전을 이루어냈듯 군위에 들어설 공항이 무너지는 지역을 되살리고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당당히 제 역할을 할 것이라 확신한다. 사족을 달자면, 북을 향해 기세 좋게 흐르는 위천을 통합신공항과 이를 통한 대구경북 경제 도약의 상징으로 삼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작권자 © 대구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