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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륵은 지금도 살아있겠지

  • 입력 2022.08.03 09:00
  • 수정 2022.08.03 15:35
  • 기자명 김광원 기자, 조명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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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륵의 정서가 드러나는 공간, 고령 우륵지. 아득하게 자란 연잎들과 사이사이 보이는 연꽃이 그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우륵의 정서가 드러나는 공간, 고령 우륵지. 아득하게 자란 연잎들과 사이사이 보이는 연꽃이 그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제자들이 스승이 만든 곡을 반으로 줄였다. 스승은 분노했다. 그러나 막상 제자들 이 ‘칼질’한 음악을 들어보고선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제자들이 다듬은 곡을 이렇게 평가했다.

“즐거우면서 음란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으니 가히 아정하다(아담하고 곧바르다) 하겠다.”

진흥왕 12년(551)에 신라로 망명한 가야 출신 음악인 우륵의 이야기다. 우륵은 최근 북미 최고 권위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열여덟 임윤찬 군의 인터뷰에 언급 됐다. 언론사는 ‘즐거우면서도 음란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은’ 음악을 염두에 두었으리라고 추측했다.

일반적으로 우리 음악의 특징은 솔직함과 해탈이다. 과거에는 절절한 감정 표현에 주목하고 우리네 정서의 특징이 ‘한’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지금은 조금 세련되게 말해서 솔직함이다. 가장 절절한 표현이 그 안에 있다. 그러나 솔직하고 절절하기만 하면 음란하고 비통해진다. 어디까지 즐겁고, 어디까지 슬퍼야 할까, 어느 만큼 솔직해야 할까. 그건 ‘공감’의 잔이 가득 찰 때까지라고 할 수 있다. 그 잔이 넘치면 신파가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좌절, 혹은 패배주의로 귀결되고 만다.

한때 고려 가요 ‘가시리’를 그렇게 해석한 적이 있었다. ‘이별의 정한’, ‘여성의 절절한 감정’, ‘한’.

국문학자 양주동(1903~1977) 교수가 ‘가시리’를 설명하면서 가져온 단어들이었다. 이 해석에 따르면 ‘가시리’는 깊은 슬픔이 맴도는 노래다. 양 박사가 조명한 ‘한의 정서’는 이후 김소월과 서정주의 시를 해석하는데도 요긴하게 활용됐다.

1986년, 김대행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다른 부분을 주목했다. ‘좌절’, ‘돌이킬 수 없음’ 등 한, 정한, 회한을 모두 포괄하는 한의 범주로 접근할 수 있으나 어떻게든 그런 감정을 해소하려는 모습을 보인다고 밝혔다. 소극적인 패배주의와 거리가 먼 정서라는 설명이었다.

고려속요는 민요에서 출발해 궁중 의례악으로 정착했다. ‘남녀상렬지사’의 괄호 안에 들어가는 속된 노래로만 보기는 힘들다. 

양 박사의 해석을 따르면 원망과 슬픔에 허우적대는 노래이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남녀상렬지사’에 불과하다면 축 늘어지는 데다, 낯 뜨겁기 짝이 없는 음악을 국가 행사에서 거리낌 없이 즐겼다는 말이 된다. 나라를 이끄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백성이 진취적이고 건강하기를 바랄 것이다. 고려속요를 그저 처연하고 음란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고려속요에 드러난 정한은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적극적인 자기표현이다. ‘가시리’뿐 아니라 대개의 속요가 감정을 격하게 쏟아낸 뒤 이를 순화해가는 과정을 따른 다. ‘이별의 정한’이나 ‘한’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결과 형성되는 ‘공감’이라고 봐야 한다.   

드라마 ‘파친코’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주인공들이 춤을 추는 장면을 삽입했다. 한국인이 그저 슬프고 처연하기만 했다면, 겹겹이 덮친 질곡의 역사를 이겨낼 수 있었을까. 솔직한 표현과 공감,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우리네 정서 시스템이었다. 슬픔을 다 쏟아낸 뒤 이를 거대한 에너지(흥)로 털어내고 어떻게든 극복해내고 마는 구조다.

우륵의 제자들이 다듬은 우륵의 음악도 그러했을까. 우륵의 음악과 ‘가시리’의 기본 정서와 패턴은 오늘날 어떤 식으로 우리 음악을 지배하고 있을까. 우륵은 혹은 우륵의 음악 DNA는 어떤 옷을 입고 우리 곁에 전승되었을까. 
 

연꽃이 아닌 다른 꽃들도 많이 피어있다. 분홍색의 꽃이 우륵지에 생기를 더해주고 있다.
연꽃이 아닌 다른 꽃들도 많이 피어있다. 분홍색의 꽃이 우륵지에 생기를 더해주고 있다.
7월에서 8월 사이 절정이라는 연꽃. 활짝 핀 연꽃이 우리를 맞아준다.
7월에서 8월 사이 절정이라는 연꽃. 활짝 핀 연꽃이 우리를 맞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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