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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공간에서 만나는 어머니의 전령들

  • 입력 2022.08.01 09:00
  • 수정 2022.08.02 11:28
  • 기자명 김광원 기자, 조명지 대구한국일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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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주인공 혜원의 집으로 향하는 중에 있는 철길. 철길은 항상 우리에게 괜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집으로 향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익숙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철길’이라는 장소가 주는 묘한 기시감이 나는 좋다.
극 중 주인공 혜원의 집으로 향하는 중에 있는 철길. 철길은 항상 우리에게 괜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집으로 향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익숙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철길’이라는 장소가 주는 묘한 기시감이 나는 좋다.

 

어머니의 공간

“이젠 자랑할 데가 없어요.”

오 년 전쯤이든가 머리가 허연 방송인 한 명이 방송에 나왔던 울먹이며 했던 말이다. 어머니는 질투하지 않는다. 자랑하면 자랑하는 사람보다 더 많이 기뻐하고, 아픈 마음을 내비치면 그 말을 한 사람보다 더 깊이 슬퍼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어머니라 부른다. 그 추억이 묻은 곳을 어머니의 땅이라고 한다. 고향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고향에 대한 이야기이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어머니는 그곳에 없지만, 어머니를 느끼는 공간이다. 그 곳에서 먹고 자고 만나고 이야기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된다. 어머니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바람은 질투하지 않는다. 햇볕은 시기하지 않는다. 나무는 함께 기뻐하고 꽃은 더불어 웃는다. 어머니처럼, 무해한 사물과 식물, 친구들 속에서 쉰다. 다시 아이로 돌아간다. 인간의 모습을 회복한다. 맨처음 어머니의 품에서 인간으로 살았던 시절로.

혜원의 집 앞. 돌담으로 둘러싸인 혜원의 집은, 앞에는 강이 뒤에는 산이 자리 잡고 있다. 혜원의 시선의 끝이 닿았을 곳을 상상해본다.
혜원의 집 앞. 돌담으로 둘러싸인 혜원의 집은, 앞에는 강이 뒤에는 산이 자리 잡고 있다. 혜원의 시선의 끝이 닿았을 곳을 상상해본다.

 

아버지의 공간

“아부지예, 내 이만하마 잘 살았지예.”

영화 ‘국제시장’의 마지막 장면이다. 전쟁과 긴 기다림, 해외 노동, 죽음의 고비를 모두 겪은 주인공의 마음이 마지막으로 가 닿은 곳은 아버지의 품이었다. 어떤 가식과 위선도 존재하지 않는 곳. 잘했으면 잘한 대로, 못하면 못 한 대로 칭찬해주고 안아주는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지난 생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다. 가장 순수한 위로와 칭찬이 거기 있음을 알기에, 아버지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혼자 와도 외롭지 않다. 어머니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어머니는 모두 다르지만 그 어머니가 가지는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어머니의 품에서 어머니의 유산 같은 풍경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얻는다. 왠지 모를 용기가 샘솟는다. 바람과 물냄새, 푸른 잎들이 전하는 위로다. 어머니의 전령들이다. 

혜원의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장에라도 이 문으로 친구들이 막걸리를 들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바쁜 도시 생활을 뒤로 하고 쉼을 가지기 너무나도 좋은 곳이었다.
혜원의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장에라도 이 문으로 친구들이 막걸리를 들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바쁜 도시 생활을 뒤로 하고 쉼을 가지기 너무나도 좋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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