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속엔 눈폭풍이 뻐꾹 소리 속엔 먼 산이’
최정례(1955-2021) 시인이 쓴 시의 한 대목이다. 시인은 겨자씨를 보면 눈폭풍을 상상했지만 아둔한 보통 사람도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지는 않는다. 오래된 사물과 풍경, 처음 보게 된 것이라 해도 애정이 듬뿍 담긴 것들과 무수한 대화를 주고 받는다. 우리가 아직 말을 배우기 전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언어를 통한 대화다. 말을 배우면서 이미 버렸다고 생각한 그 원시의 언어는 우리가 자각하지 못할 뿐 어쩌면 계속 우리 속에 남아 생각과 정서를 향해 말보다 더 강력한 주파수를 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말로는 못할 말이 있고,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지만 명백히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말 이전의 언어 혹은 말과 또 다른 내면의 언어가 작동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아닐까. 김호중의 팬들에게 연화지는 그 자체로 언어다. 김호중이 산책하던 곳이고, 연화지를 둘러싼 건물 중에는 그가 자취하던 원룸도 있다. 김호중이 자취를 했던 원룸 창가에서 내려다 보면 벚나무의 정수리가 내려다보이고 멀리 김천 예고도 눈에 들어온다. 그의 눈길이 닿았던 풍경들, 기분 좋은 여름밤의 소음, 연화지를 휘돌아 내닫다가 열린 창으로 와락 달려들어 그의 얼굴을 훔쳤을 바람 한 점 모두 말로는 다 못 할 언어가 되어 머물다 팬들에게 말을 걸어온다. 여름 오후의 햇살만큼이나 느직하게 걸으며 연화지의 풍경을 필름 카메라로 담았다. 그의 시선이 머물렀을 법한 풍경을 고르고 골랐다. 연못물을 한입 머금고 바람에 슬렁슬렁 어깨를 흔드는 연잎에 그의 ‘고맙소’가 황금빛 햇살이 비낀 봉황대 계단에서 그의 ‘천상재회’가 들려오기를 소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