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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대회 종합 우승 비결요? ‘성주 참외 인심’이죠”

  • 입력 2022.07.22 09:00
  • 수정 2022.07.22 10:07
  • 기자명 김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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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희 성주군청 여자태권도 선수단 감독
박은희 성주군청 여자태권도 선수단 감독

 

2007년 8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에 위치한 대통령궁에 한국 대통령 친인척 한 명이 도착했다. 두 인사가 방으로 들어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양 측의 경호원들은 복도에서 대기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측의 경호원은 건장한 남성 스무 명이었고, 한국 대통령 경호실에서는 여성 경호원 한 명을 파견했다.  

“꼬맹이네.” “얘가 왜 여기 있어?”
키가 이 미터에 가까운 흑인들이 거리낌 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한국 측 경호원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나 프랑스어 알아들어. 너희들 말 다 들린다.”
남자들이 움찔 당황하더니 이내 장난을 들킨 아이들처럼 킬킬, 웃어댔다.
“너 총 있어?”

그들의 질문에 한국 측 경호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 태권도 유단자야.”

그러면서 발차기 시범을 보였다. 탄성이 쏟아졌다. 대통령궁 복도는 순식간에 태권도 시범 무대가 되었다. 현재 성주군청 여자태권도 선수단 감독으로 재임하고 있는 박은희(42) 감독이 대통령 경호실 소속으로 2년 동안 아프리카에 파견돼 경호원으로 활동할 때의 일화다. 그때 친해진 경호원들과는 지금도 친구로 지내고 있다.

“외국에서 태권도 선수 출신이라고 밝히면 그렇게 좋아하더라고요. 해외에서는 태권도가 남녀노소 장소를 불문하고 즐길 수 있는 대중 스포츠로 인식되어 있어요. 올림픽에서 난민 국가 선수에게서도 메달이 나오는 종목은 태권도가 거의 유일하잖아요. 그만큼 누구나 배울 수 있고, 또 인기도 좋다는 이야기죠.”

박 감독은 초등학교 3학년 때 태권도에 입문했다. 어머니가 에너지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넘치는 딸의 성격을 차분하게 바꾸겠다는 생각으로 태권도장에 보냈는데, 그 길로 태권도에 푹 빠져버렸다. 중학교 2학년에 학교 태권도팀에 들어갔고, 특기생으로 경희대 태권도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인천광역시청 태권도 선수단에 입단하고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으나 부상으로 2년 만에 현역에서 물러났다. 

대통령 경호실은 인천광역시청을 나와 일반 태권도장에서 3년 정도 사범 활동을 하다가 학교 추천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근무지는 서아프리카 가봉이었다. 프랑스와 미국을 비롯해 20여개국을 방문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주요 인사는 ‘잭슨 파이브’의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고(故) 마이클 잭슨의 친형이었다.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 부르길 좋아했어요. 노래할 때마다 속으로 감탄했죠. 정말 잘했거든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성주군청 태권도 선수단은 2013년 창단할 때부터 감독을 맡았다. 성문숙 전 경북 태권도협회 회장이 선거 공약으로 실업팀 창단을 내걸었고, 공약 실현과 함께 창단이 진행됐다. 첫해 4명으로 팀을 꾸려서 2020년까지 5명을 유지하다가 올해 2월에 6명으로 증원됐다. 작은 인원이지만 거의 매년 전국대회 우승기 하나씩 들고 왔다. 2022년에도 여성가족부가 4월에 주최한 태권도 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6월에는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열린 2022년 실업최강전에서 개인전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해 종합 3위를 기록했고, 3인조 지명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박 감독은 최우수 지도상을, 신정은 선수는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박 감독은 “우승의 비결 중의 하나가 성주 참외”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감독, 선수 모두 경북 출신이 아니어서 아파트를 얻어서 생활해요. 군수님부터 관계자들 모두 늘 신경을 써주시는데, 주민분들의 인심과 정도 차고 넘쳐요. 객지에서 고생한다고 참외 시즌이 되면 거의 매일 문고리에 참외를 걸어놓고 가세요. 사기 진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 인심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선수들과 함께 8년째 틈날 때 마다 지역 장애인 어르신들에게 태권도 수업을 열어드리고 있어요.”

박 감독은 올해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됐다. 진천 선수촌과 성주를 오가면서 활동하고 있다. 6월에 춘천에서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렸고, 11월에는 세계 선수권대회에 코치로 출전한다. 박 감독은 “국가대표팀 코치로서도 잘해야겠지만, 성주 선수단 감독으로서 성과를 내는 것에 더 욕심이 가는 게 사실”이라면서 “전국 대회 우승기 하나를 더 가져오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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