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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부터 인연
‘조용한 나눔 21년’

[봉사에 산다]
김도형 대구한국일보시민기자대학 8기 동기회장

  • 입력 2022.07.21 16:10
  • 기자명 김윤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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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그냥 스칠 수도 있었언 인연 하나가 인생을 결정하기도 한다. 대학 초년이던 30여 년 전 ‘손 한 번 잡은’ 인연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경산에 있는 한 복지단체에 자폐 아동을 위한 봉사를 갔을 때였다. 처음 보는 아이 하나가 슬그머니 그의 손을 잡았다. 기껏 큰형 뻘쯤이었을 낯선 대학생의 손을 잡은 아이의 마음이 동시에 울리는 공명 막대처럼 그에게로 전해졌다. 짠했다. 배고픈 아이가 밥 달라고 투정하듯이 유대감과 사랑에 고픈 아이가 그의 마음을 두드렸다는 것을 그는 순식간에 알아차렸다. 

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그에게는 아이의 마음이 내내 남았다. 생각이 쌓여 바람이 됐다. 그는 ‘외로울 고’ 고아원이 아닌 ‘푸를 청’ 청아원을 짓고 싶었다. 여기에 더해 ‘기를 양’ 대신 ‘푸를 청’ 청로원을 함께 짓고 싶었다. 이 둘을 연계하면 모자라거나 꼭 있어야 할 부분을 서로 채워가면서 더 큰 유대와 사랑을 나누는 한 가족처럼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당시에도 매우 신선하고 선진적인 복지사업 구상이었다. 여러 여건과 전공 등의 사정에 따라 다른 길로 진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과 관심은 삶 그 자체의 일이다. 여전히 그는 사랑과 관심이 모자란 채 자랐거나 더 큰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작으나마 사랑의 손길이 되고 싶었다. 바람은 어느새 실천이 됐다. 라이온스클럽 활동 등을 통해 애망원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서 나눔과 봉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1년째다.

   낯선 나의 손 슬그머니 잡던 아이 마음   

겨울 추위가 닥치기 전 그의 월동 준비는 연탄 들이기다. 그의 집이 아니다. 동사무소나 주변 분들이 귀띔해 준 이웃에 연탄을 배달한다. 연탄 배달은 혼자서 하기에 버거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품이 많이 들어서 여럿이 가야 한다. 뜻이 맞는 지인들과 함께 간다. 연탄을 나르다 보면 마음 아랫목이 뜨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겨우내 가장 뿌듯한 일이다. 

 

부모님이 바빠 챙겨줄 시간이 모자라는 저소득 맞벌이 가정 아이들은 초등 방과 후 수업 때 쫄쫄 굶기 일쑤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배고픔을 참아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혼자서 손쉽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라면의 선호도가 높다. 좋아할 아이들을 생각하며 수십 박스쯤 든든히 싣고 간다. 월동 준비 연탄과 아이들 라면은 그가 언제나 두 팔을 걷어붙이는 일이다.

봉사와 나눔에도 나름의 기준이 있다. 사랑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시기인 아이들을 챙기고 보살피는 일에 관심이 더 간다. 아이들이 밝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봉사와 나눔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무엇보다 예전에 구상해 둔 봉사 사업이 하루 빪리 현실이 되도록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틈틈이 실천’이 이제는 ‘늘 실천’ 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참이다.

   생각이 바람으로, 바람이 실천으로   

그에게 나눔과 봉사는 보고 배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는 대구 토박이로 일찍이 사업을 시작해 가정 형편이 유복한 편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의 승용차를 같이 타고 대구로 가는 길이었는데 부근에서 길을 가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졌다. 아버지는 차를 돌려 현장으로 갔다. 쓰러진 사람을 차에 태운 아버지는 당신이 다니던 OO정형외과 병원으로 달렸다. 

진찰 결과 쓰러진 환자는 영양 실조 상태. 아버지는 가까운 슈퍼로 가서 빵과 우유를 사오라고 그에게 시켰다. 환자에게 빵과 우유로 우선 요기를 하게 한 다음 아버지는 수액 주사를 포함한 진료를 받게 했다. 당시는 수액 주사 비용이 싸지 않았다. 그의 기억으로 아버지는 상당한 치료비를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 지불했다. 평소 1남 1녀 자녀에게 엄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엄격하던 아버지가 길에서 쓰러진 낯선 사람을 따뜻이 보살피는 모습을 보면서 초등학생이었던 그는 많은 것을 느꼈다. 철들어 나중에 알게 됐지만 낯선 사람일지라도 응급 상황에 처했을 때는 먼저 구하고 돌봐야 한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가르침이었다.

그는 류시화 시인이 엮은 '한 줄도 너무 길다'라는 책을 좋아한다. 한 줄짜리 시인 일본의 하이쿠 260여 편을 모은 책이다. 그 중의 하이쿠 한 편 “바퀴벌레도 내 형편을 아는지 식구수를 줄이네”를 종종 되뇐다. 바퀴벌레조차도 집 주인의 형편을 헤아려 번식을 줄인다는 내용이 주는 인간-벌레 간의 동기감응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하물며 사람 사이라면 이보다 훨씬 웅숭깊은 동기감응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와 함께 그가 대화 때 즐겨 얘기하는 우화가 있다. '대지와 양'이라는 이솝우화다. 돼지와 양을 치는 목동에게 돼지가 불평을 했다. “나는 사람을 위해 내 살과 껍질과 피와  머리까지 다 주는데 왜 양보다 귀하게 대해주지 않느냐”고 하자 목동이 대답했다. “양은 살아있는 동안 내내 사람들을 위해 털을 주지 않느냐. 그런데 너는 죽은 후에 한번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느냐.”

   작지만 나눔 일상화할 때 더 큰 의미   

그는 이 우화를 ‘죽은 다음에야 그것도 단 한 번 자신을 내어주는 공덕보다 살아있는 내내 자신을 내어주는 공덕이 훨씬 더 크다’는 가르침으로 새긴다. 그는 이 이야기를 들려 준 뒤 봉사와 나눔도 이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죽은 후에 한 번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도 의미가 크겠지만 평소 나눔과 봉사를 일상화하는 삶이 더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

 

누군가 천민자본주의라고 일컫는 물신시대, 욕망에 관한 거의 모든 금기가 무너진 욕망 만발의 시대에 조용히 이타주의를 실천하는 그의 삶이 조용한 울림을 준다. “저에게 봉사와 나눔은 감사입니다. 제 삶에 제가 감사하는 방식입니다.”

백윤숙 시민기자 | 김윤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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