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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라곤 모르던 호중이가 한 달에 10권씩 읽는다니 흐뭇”

  • 입력 2022.07.20 09:00
  • 수정 2022.07.21 10:34
  • 기자명 김광원 기자, 조명지 대구한국일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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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화 김천예술고 설립자
이신화 김천예술고 설립자

“호중이 말이야, 사람이 변해도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가 있나!”

김천예술고 명예교장인 이신화 박사가 지인들에게 농담처럼 건네는 말이다. 이 박사는 ‘트바로티’로 유명한 가수 김호중씨가 김천예술고에 편입할 당시 교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 교사로 있던 서수용 김천예술고 교장과 함께 인생 역전의 발판을 마련해준 결정적인 인물 중의 한 명이었다. 이 박사는 “당시는 그저 노래를 빼어나게 잘하는 학생에 불과했는데 지금의 김호중은 한 인간으로서도 너무도 훌륭하게 성장했다”면서 “앞날이 더 기대되는 예술가”라고 말했다. 학교를 다닐 당시 김호중은 이 박사에게 “반반”이었다. 노래로 치면 전국에서 내로라는 음악 영재들이 몰리는 콩쿨에 가서도 1등을 꿰차기 일쑤였기 때문에 인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나머지 부분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제가 독서실에 자기 자리를 하나 만들어줬어요. 호중이에게 ‘이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책도 읽고 공부도 해라’라고 했죠. 그런데 자리에 먼지만 뽀얗게 앉았어요. 실망스러웠죠.”

희망의 끈은 있었다. 무엇보다 착했다. 심부름을 시키면 군말 없이 “예!”하고는 즉시 실행을 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이유였다. 말하자면, 앉아서 책을 안 읽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마음에 쏙 드는 학생이었다. 50대 50의 균형이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맞춰졌다.

“끝났구나. 애석타, 애석해!”

졸업 후 김호중에게 실망한 사건이 있었다. 한양대 음대를 중퇴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였다. 그때 이 박사의 입에서 탄식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렇게 다시는 김호중씨의 소식을 접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끼고 아낀 제자가 샛길로 새버렸단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한 달에 책을 열 권씩 읽는다네요”

“요즘 호중이 어떻게 지내나?”

다행히 ‘끝’은 아니었다. 서수용 교사에게 습관처럼 김호중의 소식을 물었다. 그때마다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독일 유학을 다녀오고, 꾸준히 공연을 했다. 그러다 미스터 트롯으로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럼에도 마음 한켠은 늘 불안했다. 

“연예계는 지뢰밭을 걷는 것이나 다름없잖아요. 제자가 더 유명해지길 바라면서도 ‘이제 그만’이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주목받는 만큼 비판의 잣대도 엄정하니까요.” 최근 이런 노파심을 버린 계기가 있었다. 김호중의 팬클럽인 아리스 회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였다. ‘주책없이’ 김호중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불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좌중에서 “모두 옛날이야기”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자리에서 호중이의 평소 모습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한 달에 책을 10권 이상씩 읽는다는 전언이 있더군요. 너무 반갑더라고요.”

김호중은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면서 시간을 알차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무대 활동을 대비해 주3회 영어 공부를 하고, 기타 연습에 매주 편지형식의 글을 팬카페에 두 편씩 올렸다. 팬클럽에서 가장 많이 보내는 선물 중의 하나가 책이었다. 방송가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에 따르면 한 달에 책을 열 권 이상 읽었다.   

이 대목에서 김호중씨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대희 DJ와의 일화도 등장했다.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를 하면 늘 묵묵히 앉아 있기 마련이었는데, 그러다 “넌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니?” 하고 물으면 다방면의 깊이 있는 지식을 펼쳐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이씨는 “책을 읽지 않고는 그렇게 웅숭깊은 생각이 나올 수 없다”면서 감탄했다. 

 

‘인물’ 좋은 김호중, 오랫동안 스타로 남을 것

이 박사는 “방송가나 지역 문화판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이야기라 온전히 팩트일 것”이라면서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마음이 놓이더라”고 말했다. 그는 판소리 이론가이자 중흥자로 통하는 신재효의 글을 인용했다. 

“옛 어른 말씀에 좋은 소리꾼의 조건이 첫째가 인물, 둘째 사설, 그 다음을 소리라고 했어요. 인물이 처음에 옵니다. 됨됨이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호중이는 전국민에게 알려졌듯이 한때는 전혀 남 앞에 설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도 훌륭하게 인물을 갖추어 가고 있습니다. 교육자로서 눈물이 나도록 고맙습니다.” 김씨가 제대한 뒤로 김천예술고에는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김호중이라는 걸출한 스타 덕분에 출신학교와 학교가 자리 잡고있는 도시까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박사에 따르면 “김호중이라는 든든한 기둥이 받치고 있는 유명세”다.

“실력과 인물을 두루 갖춘 스타가 버티고 있는 만큼 김천시도 더 유명세를 탈 것 같습니다. 호중이가 무대 위에서도 또 무대 밑에서도 너무 훌륭하게 살고 있다고 하니까 모든 게 안심이 되고 또 자신감이 붙습니다.”

제자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선생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꾸준히 실천해주어서 너무 고맙구나.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후배들에게, 또 음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귀감과 롤모델로 남아주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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