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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 참사 부른 사법 불신 원죄는 정치권…온 사회가 돌아봐야”

“건물 2층 방화 당시 4층 방에 30분 갇혀”
“참사 후에도 법정 밖 의뢰인 욕설 여전”
“경비, 법 강화로 못 막아…사법신뢰 회복이 관건”
숨진 변호사 사건 재배당 및 환불이 과제
법원도 방화건물 사건 최대한 연기키로

  • 입력 2022.07.14 09:00
  • 수정 2022.07.14 09:28
  • 기자명 전준호 한국일보 대구취재본부장, 류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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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화 대구지방변호사회장
이석화 대구지방변호사회장

6월9일 대구에서 발생한 법조빌딩 방화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숙제 하나를 던졌다. 잇단 소송에서 패소한 방화 용의자가 변호사와 직원 6명의 목숨을 빼앗고 자신도 숨진 사건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사법불신과 대책에 대한 해답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 변호사협회는 변호사를 향한 부당한 감정적 적대행위와 물리적 공격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밝혔으나 결국 사회 전체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고 있다. 합동추모식 다음날인 6월14일 대구지방변호사회 사무실에서 이석화(60) 회장을 만났다.

-방화 당시 같은 건물에 갇혔다고 들었다.

“2층에서 방화한 건물의 4층에 사무실이 있다. 사건 당시 고함이 들려 '또 누가 항의하는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여직원이 '불 났다.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벌써 자욱한 연기를 한 모금 마시곤 가슴이 답답했다. 3층에서 위로 피신하던 사람을 포함해 모두 12명이 내 방에 피신해 수건과 물티슈로 문틈을 틀어막은 후 KF94 마스크도 두 장씩 끼고는 휴대폰으로 구조를 요청했다. 같은 층 비상계단 옆 사무실에 있던 변호사 두 분께도 탈출하라고 연락했다. 30분쯤 지나 연기가 천장부터 사무실 위쪽 절반을 가득 채웠고, 창문으로 탈출 시기를 가늠하던 중 소방관 두 명이 구조해줬다. 건물 바깥으로 나와서야 방화인줄 알았지만, 그때도 형사사건을 다루는 2층의 국선전담변호사실에서 불이 난 줄 알았다. 이 건물 입주 변호사 등의 생사를 모두 전화로 확인하던 중 한 소방관이 7명의 사망 사실을 알려줬다.”

-이번 사건으로 변호사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평소에도 욕설이나 협박, 폭행에 노출돼 있나.

“욕설은 다반사다. 방화 사건 이후에도 재판에 진 의뢰인이 법정을 나서면서 변호사에게 욕설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칼부림이나 신체 훼손 사건도 한 해에 한 번은 있다.”

-방화 용의자의 변호사나 상대측 변호사도 트라우마가 심할 것 같다.

“많이 괴로워하며 일손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들도 피해자인데, 용의자와 소송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로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다. 변호사가 의뢰인을 위해 법정다툼을 벌이는 것은 사법시스템의 뿌리인데, 법정에서 패소했다고 변호사에게 테러를 가하면 누가 소신있게 변호를 하겠나.”

-이번 사건의 원인은.

“이번 참사는 사법테러다. 법원 판결을 신뢰하지 않는 사법불신이 결국 범죄의 원인이다. 법정에서 패소하면 재판부와 상대 변호사가 짜고 사건을 조작했다는 음모론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사법불신 풍토는 정치권에 원죄가 있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도 '정치보복을 당했다'며 사법부를 무시하거나 부정하고 있다. 정치인의 행태가 전 국민에게 영향을 주고, 잘못된 사회풍토를 만들어내고 있다. 전문직인 변호사를 특권 계층으로 보고 폄하하는 것도 문제다. 누구라도 변호를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

-변호사 내부의 변화도 필요하지 않나.

“그렇다. 법률시장의 수도권 편중과 네트워크 법무법인 문제 등 개선할 것이 많다. 6조 원 규모의 국내 법률시장 절반을 5대 로펌이 가져가는 등 수도권 시장이 5조 5,000억 원 규모다. 나머지 5,000억 시장을 지역이 맡으면서 영세화하고 있다. 네트워크 법무법인의 과다 광고도 변호사계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재발 방치 대책은 있나.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화상인터폰과 방화벽을 설치하고 건물 경비를 강화하는 것일텐데, 작정하고 덤비는 사람을 막지는 못한다. 또 가중처벌법 등을 만들어 법정형을 높이는 것이 거론되고 있는데, 예방효과도 없고 현행법만으로도 충분하다. 근본적으로는 사회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사법불신을 해소할 수 있도록 온 사회가 나서야 한다.”

-방화 건물 출입통제로 입주 변호사 업무가 힘들 것 같다.

“방화 빌딩에 변호사만 32명이 일하고 있다. 송달 업무가 많은 개인 회생 및 파산 사건을 처리하기 힘들어졌다. 모 회사 계약업무를 대행하는 우리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해당 건물 변호사들이 대구변호사회 회의실과 법원의 변호사 대기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법원도 재판기일 연기를 요청하면 최대한 받아주기로 했다. 문제는 숨진 변호사가 진행 중인 사건을 파악하는 일이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모르니 법원행 정처를 통한 사건 파악도 되지 않는다. 현재 대구와 인근 법원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파악하고 있고, 의뢰인과 사건재배당이나 환불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대구변호사회가 합동분향소를 마련했다.

“이런 참사는 초기에 유족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게 중요하다. 지하철참사나 세월호, 코로나 사태 등 선례도 많다. 대구변호사회는 참사 직후 긴급이사회를 소집해 합동분향소 설치와 대구변호사회장장(葬)을 결정했다. 유족들의 응어리가 조금이나마 풀렸을 것으로 본다.”

-유족 지원은 어떻게 진행 중인가.

“대구시와 수성구, 검찰, 대구시교육청, 대구은행 등 각계에서 위로금과 장례물품 등을 지원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모금을 했고, 대구시의사회는 심리치료를 돕고 있다.”

-대한변협이 방화테러 사건 대책 특별위원회를 꾸렸다.

“범죄 피해자 지원과 사고 수습, 대안 마련을 위한 실무 협의를 진행할 것으로 본다. 진상규명을 따로 한다고 해서 '변호사 2차피해가 우려되니 경찰 수사에서 드러난 내용으로 대신하라'고 조언했다. 발인 전에 방화 용의자의 변호사가 장례식장에 보이길래 '무조건 집에서 쉬라'고 했다. 유족과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사법신뢰 회복을 위한 시민운동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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