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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자유’에 열광하는가

  • 입력 2022.06.27 09:00
  • 수정 2022.06.27 17:31
  • 기자명 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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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Caricature_ 강은주)
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Caricature_ 강은주)

 

지난달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다. 취임식 연설문을 두고 여러 가지 분석과 예측이 나왔다. 그중에서 단어 분석이 있었다. ‘자유’라는 단어가 서른다섯 번, ‘국민’이라는 단어가 열다섯 번 나왔다.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많이 쓰는 말 속에는 심리나 사상이 담기기 마련이다. 연설문은 즉흥적인 담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화자의 의중이 강렬하게 담겨 있을 것이다.

 

보수와 자유주의

보수와 가장 근접한 사상이 자유주의다. 간단하게 말하면 개인은 ‘동등한 법적, 정치적 권리 부여받아야 하고, 각자의 재능과 일하고자 하는 의지에 따라 보상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가 힘들다. 말 그대로 자유스러워서 너무 다양한 생각들을 끌어안는 바람에 내적인 모순이 많다. 직감적으로는 확 와닿는데, 막상 안을 들여다보면 헷갈린다.

 

보수도 자유주의와 비슷하다. 보수라고 하면 엄청 쉬운 말처럼 들리지만 정의하기는 힘들다. 한 마디로 뚜렷한 철학이 없다. 

“뚜렷한 철학이 없다”는 것은 연구자들의 결론이다. 보수주의자들 스스로도 “보수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고 한다. 이를테면, 영국은 1970년대에 IMF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이때 사회적으로 엄청난 구조조정을 했다. 보수적인 색체를 강화했다. 국가로부터의 자유, 자유주의, 자유로운 시장 등의 구호가 등장했다. 자유와 보수가 많이 겹친다. 이 시기에 보수를 깊이 들여다본 학자들이 “뚜렷한 철학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자유주의와 비슷하다. 어느 작가가 “보수주의자는 보수를 뭐라고 정의하는가?”하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먼저 산 사람들의 수고를 잊지 않는 것.” 

 

조금 말을 덧붙이자면, 기성 세대가 만들어 놓은 제도나 시스템에 나름의 이유와 의도, 장점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지금 이 시대를 발전시키거나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보수일 것이다. 

 

민주주의 이론의 석학으로 알려진 래리 다이아몬드 스탠퍼드대 교수는 지난해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거에 이겼다고 민의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추구할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 사법부와 검찰의 독립, 정보사회 독립을 존중하는 것이다.” 

기존의 시스템을 한꺼번에 전복시키면 부작용이 나기 마련이다. 청산이나 개혁이니 하는 말이 빈번한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느끼는 피로감도 만만찮은 폐해다. 

 

‘국민의 뜻’... 정말 그러한가?

대통령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가 ‘국민’이라는 단어보다 더 많이 쓰였다. 국민이라는 단어는 듣기는 좋은데, 잘못 사용될 수도 있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토크빌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다수의 폭정’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국민의 이름으로 전횡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절대왕정이나 ‘공포 정치’ 였던 자코뱅 통치, 루이 나폴레옹의 정치가 바로 그렇다. 이들이 절대 권력을 휘두른 근거는 ‘다수의 국민의 뜻’이라는 잠재적 혹은 수동적 기반이었다. 독재가 분명한데도 모두 ‘국민의 뜻’에 따라 정책을 시행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름 열렬한 지지층도 있기 때문에 ‘국민의 뜻’이라고 확신하기도 한다.

 

“난 지금 내 마음대로 하고 있어요”하고 말하는 독재자는 없다.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다양한 의견을 내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보다 나은 답을 찾아가야 한다. 몇몇 두뇌 집단이 정답을 제시하고 언론과 생각의 자유를 억압하려 드는 것은 옳지 않다. 

 

보수의 진짜 특징은 신중함이다. 전통이나 기존의 시스템을 존중하고 국민들에게도 묻고 또 묻는다. 그러나 가장 우선되는 특징은 ‘인간의 본성과 이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다. 사람을 안 믿는 것 이다. 매정하게 느껴지겠지만, 그래서 독재의 가능성이 낮아진다.

 

답은 질문을 넘어설 수 없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크리스토스 밀레비치스는 “ 답은 절대로 질문을 넘어설 수 없다”고 했다. 즉, 철학을 파괴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철학이란 논리다. 정치적 이상이나 이데올로기도 일종의 철학이다. 크리스토스 밀레비치스의 격언을 참고하자면, 지난 생각에 집착하는 것은 타락한 철학이다.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테스’라는 강도의 이야기가 있다. 이 강도는 사람들을 침대를 눕히고는 침대보다 키가 크면 발을 자르고, 키가 작으면 침대 길이만큼 잡아당겼다. 철학으로 현실 혹은 대중의 사고를 편향적으로 재단하려는 시도와 닮았다. 침대의 다른 이름은 철학, 이데올리기, 혹은 지난 시대의 신념 혹은 이상일 것이다. 

 

사람의 키가 다 다르듯이 생각도 다양하고, 또 우리 눈앞에 닥치는 현실도 그야말로 변화무쌍합니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기존의 모범답안을 잘 참고해서 새로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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