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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만에 ‘인간 게놈’ 암호 해독 ‘끝’ ‘유전자 정보 중심 의료’ 열어갈 직종

  • 입력 2022.06.27 09:00
  • 수정 2022.06.27 17:21
  • 기자명 이호숙 시민기자, 김윤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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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유전자’. 지금은 절판된 책의 제목이 시대 흐름을 축약한다. 2003년 4월 전세계 20여 개 유전자 분석 기관의 협력체인 ‘국제 인간유전체 염기서열분석 컨소시 엄(IHGSC, International Human Genome Sequencing Consortium)’이 ‘인간 게 놈 프로젝트’의 인간 유전자 지도를 완성해 발표했을 때 국내외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이 지도는 당시의 기술로는 완성품이었지만 실제로는 게놈(유전체)을 구성하는 30 억 쌍의 DNA 염기 서열 중 15% 가량을 확인하지 못했다. 30억 염기쌍을 한꺼번에 읽 을 수 있는 기술이 없어 150쌍 길이로 잘라 해독한 뒤 다시 원래의 DNA로 짜맞추는 쇼트 리드(short read) 배열 기법의 한계였다. 

DTC 검사 대중화 시대와 DNA 컨설턴트
DTC 검사 대중화 시대와 DNA 컨설턴트

 

인간 유전자 지도 완성 과정 

30억 쌍이 이어진 염기 서열을 150쌍 길이의 조각으로 잘랐는데 그 조각들 중 15% 가 염기쌍 배열 순서가 똑같아 조각의 위치를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각 퍼즐 에서 모양과 색깔이 똑같은 조각들의 위치를 구별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후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 참조 유전체 해독 정보가 추가됐지만 2019 년까지 전체 염기 서열의 8%는 여전히 미해독 상태. 이 공백을 채워 인간 유전체 정보 해독을 완료한 것은 최근이다.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4개국 33개 연구기관 과학 자 114명으로 구성된 ‘텔로미어 투 텔로미어(T2T)’ 컨소시엄은 지난 3월 31일 국제학 술지 ‘사이언스’에 DNA 염기쌍 30억 쌍을 모두 해독한 인간 유전체 정보를 공개했다. 인간 게놈 지도가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이다.

150쌍이 아니라 1만 쌍 이상의 염기 서열을 읽어내면서 반복되지 않는 부분을 반드 시 포함시켜 해당 조각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도록 하는 롱 리드(long read) 배열 기 법을 개발한 덕분이었다. 최대 150쌍의 염기 서열을 읽을 수 있는 수준에서 1만 쌍 이 상의 염기 서열을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한 기술의 개가였다. 1990년 IHGSC를 결성한 지 32년 만이었다.

 

 곳곳에서 영향 미치는 유전적 요인 

중년에 들면 발병하는 성인병으로 흔히 고혈압과 당뇨병을 든다. 식생활의 서구화 로 20대 고혈압, 당뇨 환자수가 급증하면서 이러한 통념은 깨졌다. 20대 고혈압 환자 는 2015년 2만 3,731명에서 2020년 3만 8,413명으로 61.9%나 급증했다. 20대 당뇨 환자 증가율은 2015~2018년 34.5%로 30대(2.5%)와 40~50대(10%대) 비해 두 배 이상 높다. 고혈압에 걸릴 확률은 부모가 모두 고혈압인 경우 51%, 부모 중 한 명이 고 혈압인 경우 30%로 유전적 요인이 크다. 당뇨병도 인슐린 의존형 당뇨병(제1형 당뇨 병)의 경우 유전적 요인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만 역시 유전적 요인이 크다. 비만이 될 확률은 부모가 모두 비만인 경우 70~73%, 부모 중 한 쪽이 비만인 경우 41%, 부모가 정상 체중일 때 9~10%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식생활과 생활관을 공유하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지만 유전적 요인은 무시할 수 없다. 탈모도 마찬가지. 환경적 요인과 함께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모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탈모가 시작되기 전부터 치료나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2013년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자신의 유전자 분석 검사에서 유방암 발병 확 률이 87%라는 결과가 나오자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아 큰 화제가 됐다. 유방암이나 난소암도 변이 유전자가 유발한다. 원래 암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던 ‘BRCA1’(난소암)과 ‘BRCA2’(유방암)라는 유전자가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난소 암, 췌장암, 위장관암 등 유전성 암의 50~60%는 BRCA 변이 유전자에 의한 것이다. 최근 15~34세 여성에게 갑상선암 다음 순위로 유방암이 발병하고 있다.

 

 간편한 DTC 유전자 검사 

암이나 난치·희귀성 질환 등에 가족력이 있다면 ‘유전적으로 내게도 이런 병이 오 지 않을까’ 걱정하기 마련이다. 꼭 이런 난치·희귀성 질환이 아니더라도 유전자 분석 을 통해 내 몸의 정확한 유전자 정보를 안다면 내 몸에 최적화한 맞춤형 질병 예측·예 방과 처방 등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다. 개인의 유전적 특징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관련 정보를 활용해 건강을 관리하는 유전자 검사다.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췌장암( 정확한 병명은 췌장 내 아일렛세포 내분비암) 치료의 단서를 찾기 위해 유전자 검사 비용으로 1억 2,000만 원을 들였다지만 요즘은 기존의 복잡한 검사 과정을 간소화해 10~20만 원대의 비용으로 손쉽고 간편하게 유전자 분석을 할 수 있다. 

유전자 검사가 간편해지면서 누구라도 의료 기관을 가지 않고 집에서 유전자 검사 를 의뢰할 수 있다. 소비자 직접 의뢰(DTC, Direct To Consumer) 유전자 검사 방법 이다. 집에서 간단한 키트로 타액을 채취해 검사기관에 보내면 2~3주 안에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질병 예측 유전자 검사는 병원에 가서 혈액 검사와 동일한 방법으로 채혈만 하면 된다. 채혈 후 1~6주면 유전자 검사 결과를 통보 받아 자신의 건강 상태 를 확인할 수 있다.

인간 유전체 염기 서열의 해독이 완료되는 동안 유전자 검사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 전했다. 이에 따라 검사 비용도 크게 낮아졌다. 보다 정확하고 저렴하게 유전자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유전자 정보 이용의 대중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에 따라 유전 자 정보를 활용한 개인 정밀 맞춤 의료가 새로운 보건 의료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 을 전망이다.

 

 떠오르는 새 직종 ‘DNA 컨설턴트’ 

DNA 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DNA 컨설턴트)는 DTC 유전자 검사 결과를 기반으 로 라이프 스타일 전반에 대해 상담해주는 맞춤 케어 전문가다. 업체마다 다르지만 보통 유전자 검사 결과지의 분량이 대략 100~200쪽. 검사 의뢰자가 결과지를 얻었 다고 해서 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해 바로 생활에 적용하기가 쉽잖다. 용어도 어려울 수 있고 생활 습관을 교정하는 일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런 역할이 DNA 컨 설턴트의 몫이다.

즉 DNA 컨설턴트는 DTC 유전자 검사 결과에 따라 맞춤으로 생활 습관 교정 방법, 식단 개선 방법, 운동 방법 등을 제안하고 추천·관리한다. 검사 결과 내용을 좀 더 이 해하기 쉽고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다. 

향후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은 병의원의 웰니스 분야나 유전자관리센터, 유전자 맞춤 형 제품을 취급하는 건강식품·화장품 업체, 창업을 통한 DNA 건강관리샵, 맞춤형 헬 스·뷰티샵, 헬스, 요가, 필라테스 등 생활 체육 분야 트레이너  등이다. 협회 소속 교 육 강사로도 진출할 수 있다. 유전자 기초 이론과 검사 방법, 후성 유전학, 결과 보고 서에 따른 해석 방법과 관리 방법 등 유전자 관련 전반적인 교육 과정이 마련돼 있다. 

2019년 정부는 그동안 혈당, 혈압, 탈모, 비타민C 등 12개 항목에 한정했던 ‘DTC 유전자 검사제도’ 대상을 56개 항목으로 확대했고 2020년 2차로 13개 항목을 추가 해 70개 항목으로 늘렸다. DTC 유전자 검사 서비스 확대에 따라, 질병이 아닌 개인의 특성에 관련된 다양한 항목을 검사할 수 있게 됐다. 비타민A·비타민B6·비타민B12· 비타민K·코엔자임Q10·타이로신·베타인·셀레늄·루테인&지아잔틴 농도, 유산소 운 동·지구력 운동 적합성, 여드름 발생, 알코올성 홍조, 태양 노출 후 태닝 반응, 니코틴, 카페인 대사, 수면습관·시간, 퇴행성 관절염증 감수성, 골절량, 복부 비만, 운동에 의 한 체중 감량 효과, 체중 감량 후 체중 회복 가능성(요요 가능성) 등이다. 

DNA 컨설턴트는 이와 같은 다양한 항목의 유전자 검사 결과 내용에 대해 의뢰자( 피검사자)와 상담한다. 예를 들어 혈압 유전자에 대해서라면 ‘나트륨을 배출하지 못 하는 유전자인지’, ‘혈관이 딱딱해지는 유전자인지’, ‘요산을 생성하는 유전자인지’ 물 어보고 대답에 따라 맞춤한 상담을 할 수 있다. 혈당 유전자에 대해서라면 ‘인슐린 생 성 세포의 기능이 낮은 유전자인지’, ‘포도당이 에너지로 전환되는 속도가 떨어지는 유전자인지’, ‘잠자는 동안 혈당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않는 유전자인지’ 등을 물어보며 상담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달서구, 유전자 컨설턴트 양성 과정 운영 

이런 추세에 맞춰 대구 달서구청은 전국 지자체 최초로 유전자 맞춤형 컨설턴트(DNA 컨설턴트) 양성 과정 을 운영하고 있다.

이 사업은 39세 이하 지역 소재 대학졸업(예정)자 등 청년(30명)을 중심으로 유전자 맞춤형 전문인력 양성 과정 수료 후 취·창업을 연계한다. 달서구는 지난 2~3월 교육생 30명 모집을 마쳤고 4월 4일 개강해 7월까지 기본·심화·실습과정으로 나눠 체계적인 맞춤형 교육을 실시한다.

유전자 검사결과를 토대로 개인의 생활습관부터 식습관, 운동방법까지 개인의 유전자에 맞는 라이프스타 일 조언에 필요한 개인정보 보호교육, 유전자 데이터 활용과정, 라이프 컨설턴트 과정, 상담 및 관리 실습과 정 순으로 진행된다.

달서구청 일자리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운영되는 유전자 컨설턴트 양성과정은  70만원 상당의 교육비가 전 액 무료다.  

DTC 검사 대중화 시대와 DNA 컨설턴트
DTC 검사 대중화 시대와 DNA 컨설턴트

 

 가능성과 한계 사이에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은 유전자 검사가 과학적으로 완전하게 증명되었다는 표시·광고( 제50조 제1항 제1호)와 유전자 검사가 과학적으로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으로 오인·혼동할 우려가 있는 내용의 표시·광고’(제50조 제1항 제2호)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유전자 검사가 과학적으로 완전하게 증 명되지 않았으며, 과학적으로 확실한 사실도 아니라는 점을 법령으로 명문화하고 있다.

박지완 한림의대 교수(의학유전학교실)는 “유전뿐 아니라 생활 습관, 환경 요인의 상 작용으로 발생하는 복 합 질환은 단일 유전자 질환과 다르게 유전자 검사의 유효성을 검증하기 어렵고, 잘못된 정보로 인한 소비자 불안감, 보건 의료 관련 의사 결정 오류, 불필요한 비용 지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며 질병에 관 한 생활 습관이나 환경 요인, 개인적 임상 등을 무시한 채 유전자 검사를 맹신하거나 상업화로 몰아가는 추세 를 경계했다.(한림의대 뉴스레터 13호, 2022. 4. 27.)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0조는 △VDR 유전자에 의한 골다공증 관련 유전자 검사 등 특정 유전자에 의한 당뇨병, 비만, 우울증, 장수, 지능, 체력, 폐암, 폭력성, 호기심, 강직성 척추염, 유방암, 치매 관련 유전자 검사에 대해 일부 예외 조항을 두면서 금지하고 있다. 위와 같은 유전자 검사가 오류일 경우 당사자에 게 미칠 영향은 매우 심각하고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2026년이면 전세계적으로 10억 명의 유전자 데이터가 축적된다. 유전자 정보 대중화 시대, ‘벌거벗은 유전 자’의 시대가 닥쳐오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유전자들의 생존 기계’일 뿐이라 면서도 “이 지구에서는 유일하게 우리 인간만이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고 했다. 만일 반대로 인간이 유전자에게 폭정을 행사할 때 과연 인간은 유전자의 반역과 복수를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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