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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주변 시장·길·공원 청소 말 아닌 빗자루로 전하는 복음

  • 입력 2022.06.24 09:00
  • 수정 2022.06.27 17:23
  • 기자명 백윤숙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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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서구 충성교회 ‘클린 소사이어티’
달서구 충성교회 ‘클린 소사이어티’

 

매주 토요일 새벽 6시 30분 대구 달서구 진천동 한 교회 앞. 예배를 마치는 찬송 소리가 들리고는 곧이어 빗자루 소리가 들린다. 이 구역 담당 환경미화원 혼자서 쓰는 빗자루 소리가 아니다. 20여 개 빗자루가 합창이라도 하듯 함께 쓰는 소리다. 빗자루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 좋다. 듣기만 해도 거리가 훤해지는 것 같다. 교회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새벽잠 속에서도 이 소리가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 소린지 다 안다. 12년째 토요일 새벽마다 들리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충성교회는 개척 교회다. 최영태 담임 목사가 28년 전 상인동에서 첫 교회를 세웠고 대곡동, 도원동을 거쳐 12년 전 이곳 진천동에 새로 지어 옮겼다. 교회 주변을 청소하는 ‘클린 소사이어티’ 활동은 20년 전 도원동 시절 시작했다. 당시 교회는 시장 부근에 있었다. 사람들의 출입이 많아 시장 입출구나 상가 주변은 지저분해지기 일쑤. 저녁 취객들의 토사물에 담배꽁초며 음료수 용기나 술병, 과자 봉지 등 각종 포장 비닐 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교회 주변 시장 청소부터 시작

도원동 교회가 문을 열자 최영태 담임 목사는 교인들에게 제안했다. 세상의 빛이 되어 복음을 전하는 교회 주변에 쓰레기가 많다면 부끄러운 일이라며 교회 주변을 청소하자는 ‘클린 소사이어티(Clean Society) 운동이었다. 사회와 세상을 정화하는 종교적 의미가 담긴 제안이었다. 토요일마다 거리와 골목을 청소하는 수고로움을 사서 한다고 반대하는 교인은 한 명도 없었다.

 

한두 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었다. 주말 예배 때마다 시장 주변 쓰레기를 지속적으로 청소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주일 치 쓰레기를 모아 청소하는 셈이었는데 토사물은 물로 씻어냈고 구석구석 쑤셔 박아놓은 담배꽁초는 일일이 끄집어냈다. 음료수 용기나 술병, 비닐 포장지 등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고 일반 쓰레기는 쓸어 담았다. 1995년 쓰레기 종량제가 전국적으로 시행된 지 7년쯤 지난 때였지만 거리에서 쓰레기통이 사라지듯이 시장 주변 쓰레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쓰레기에는 유인효과가 있다. 쓰레기가 쓰레기를 부른다. 쓰레기가 있는 곳에 쓰레기가 더 모이는 악순환이다. 청소를 해도 다음 주가 되면 다시 쓰레기가 모였다. 지속적으로 청소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쓰레기의 악순환을 끊을 때까지 긴 씨름을 통해 꼭 이겨야 하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자주 다니는 시장 주변 거리와 골목이 깨끗해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지속적인 청소로 쓰레기가 쓰레기를 부르는 악순환을 차단하면서 쓰레기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도들이 청소했던 상가 가게 앞을 가게 주인들이 나서 청소했다. 의미 있는 변화였다. 시장과 상가 주변은 눈에 띄게 깨끗해졌다. 클린 소사이어티 운동의 작은 성과였다.

 

진천동 교회에서도 이어진 골목 청소

진천동 새 교회로 이사했다. 어떤 신도들은 새 교회로 이사하면 클린 소사이어티 활동을 그만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새 교회는 시장 주변이 아니어서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교회는 새 건물이었지만 주변 환경은 그렇지 않았다. 시장 주변은 아니었지만 원래 이곳은 폐 컨테이너가 버려져 있었고 주변에 산업 폐기물, 공사 폐기물들이 쌓여 있던 공터였다. 특히 바로 앞 소공원은 오랫동안 방치된 곳으로 으슥하고 지저 분해 우범지대와 다를 바 없었다. 일부 청소년들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장소이기도 했다.

 

새 교회와 이면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이 소공원은 1999년 지정되긴 했지만 조성 당시 기준의 공원이다 보니 세월이 흐를수록 낙후했고 활용도가 낮아 방치 상태였다. 개수나 보수를 하지 않은 공원이 활용도가 낮아 장기간 방치되면 우범지대로 변하는 것은 시간 문제. 이 공원과 마주한 새 교회는 지금까지 해온 ‘클린 소사이어티’ 활동을 더욱 열심히 하기로 했다. 교회 주차장과 앞길에서 상가까지 거리를 쓸었고 공원 구석 구석 쌓이고 박힌 쓰레기들을 수거하고 찾아냈다.

 

더욱이 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보니 큰 나무들이 많았다. 가을에 낙엽을 청소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낙엽을 쓸면 보통은 100ℓ 봉투 5~6개, 많을 때는 10여 개 나왔다. 토요일마다 골목은 깨끗해졌다. 주변으로 아파트와 주택들이 속속 들어섰고 5~6 년 전에는 구청에서 공원을 새로 단장했다. 교회가 새로 들어서고 공원이 정비되면서 이곳의 분위기는 일신했다. 교회 부근 길과 길 건너 공원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깨끗하다.

 

오늘도 20명 정도의 인원이 2~3명씩 한 조를 이뤄 익숙하게 비질을 한다. 교회를 중심으로 큰길 쪽과 상가 쪽 양방향으로, 길 양편으로 나뉘어 각각 구역을 맡는다.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온 초등 3학년 동민이도 함께한다. 먼저 쓰레기 수거용 집게를 들고 상가 쪽 길모퉁이에 사는 고양이들한테 먼저 가서 그곳 청소부터 한 다음 거리 청소를 시작한다. 힘들지 않다면서 비질을 하는 손놀림이 제법 재바르다.

 

낙엽철도 아니어서 청소 시간은 전체 20여 분. 일찍 끝났다. 교회가 교회 앞길을 청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교인들이 매주 나서 교회 앞길을 청소하고 길 건너 공원까지 청소하면서 부근 지역이 깨끗하고 거리가 환해진 것은 교회 가 사회에 미친 선한 영향력임에 틀림없다. 

 

환해진 골목 ‘교회가 미친 선한 영향력’

교인들이 청소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최 담임 목사는 클린 소사이어티 활동에 대해 “청소를 조금 했을 뿐”이라고 말을 아낀다. 20년 동안 교회 주변을 청소해온 것은 ‘조금’이 아닐 것이다. 말을 아끼고 조용히 실천하는 카리스마가 엿보인다. 이 교회가 성인 신도 3,000명, 유소년청년부 700명에 이를 만큼 대구서 손꼽히는 교회로 성장한 것은 그의 인자한 성품의 목회가 신도들을 감화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 교계 안팎의 평가이기도 하다. 이 교회에서는 목사와 장로, 목사와 신도, 장로와 신도들 간에 어떤 갈등이나 다툼, 불미스런 일이 없다. 요즘 교회에서는 드문 일이다. 

 

“주말마다 길 청소를 해주는 교인 분들이 고맙죠. 덕분에 골목이 훤하답니다. 예전에는 이런 곳이 아니었거든요. 더러 인근 주민의 눈총을 받는 교회도 있다지만 이 교회는 이웃 주민들의 마음을 얻고 있고 지지를 받는 것 같습니다.” 부근 빌라에 사는 주민 A씨의 말이다.

 

김태훈 담당 목사는 “교회의 존재 이유를 자주 질문 받는 세상이 됐지만 일주일에 한 번 빗자루를 들 때마다 우리 교회가 이웃 주민들에게 과연 어떤 존재일지를 잠깐이라도 생각하게 됩니다. 큰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할지언정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비질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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