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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서 온 경영학 유학생 “‘이모들’에게 인생 배웠죠”

“너 왜 나한테 반말해? 나는 언니야.”

  • 입력 2022.06.22 09:00
  • 수정 2022.06.27 16:56
  • 기자명 김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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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에르뎅(26, 계명대 경영대학원 회계학과 대학원)씨는 한국에 온지 5년째로 접 어들고 있지만 존댓말에 서툴다. 먼저 한국에 온 몽골인 선배에게 “존댓말 써라”고 늘 타박을 듣는다. 변명의 여지는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이모들 때문이다. 이모들이 “손녀 같다”면서 반말을 해도 “귀엽다”면서 너무 오냐오냐했다. 오강에르 뎅은 “이모님들 덕분에 한국생활이 힘든 줄은 몰랐다”면서 “눈물 나도록 고마운 분 들이다”고 말했다. 

처음 왔을 때는 막막함 그 자체였다. 첫 한달 동안 삼시 세끼 B사 햄버거만 먹었다. 한국말에 서툰 까닭이었다. 나중에는 햄버거 사진만 봐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게 다가 버스를 타면 항상 길을 잃었다. 번호는 하나인데 노선이 두 개인 버스도 있어서 탈 때마다 엉뚱한 곳으로 가기 일쑤였다. 

가장 힘든 것은 공부였다. 먼저 한국에 와 울산에서 일하고 있던 삼촌에게 “한국에 오면 아르바이트 너무 많이 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 문제없다”고 대답했는데, 막상 부딪쳐보니 공부량이 만만찮았다. 그는 “드라마 탓” 이라고 했다.

오강에르뎅
오강에르뎅

 

“한국 드라마로 한국을 배웠어요. 드라마 주인공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더라고 요. 그래서 공부가 별로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함께 한국으로 왔던 친구는 결국 몽골로 돌아갔다. 몇 번이나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싶은 유혹이 찾아왔지만 오기로 버텼다. 그에게 오기를 만든 건 몽골에서 1년 남짓 경 험한 직장생활이었다. 운 없게도 모진 선배들을 만나서 혹독한 신입사원 시절을 겪었 다. 업무량은 밑도 끝도 없고, 모르는 게 있어서 물으면 “넌 왜 이것도 몰라”하면서 윽 박지르기 일쑤였다. 그때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 욕심이 생긴 김에 평 소 가보고 싶었던 한국행을 결심했다. 한국에서 공부한 후 몽골로 돌아와 선후배 사이 에 서로 잘 가르쳐주고 배려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도 품었다. 

생각보다 힘들어 당황스러웠지만 호텔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이모들이 있 어 버틸 수 있었다. 이모들은 그를 정말 딸처럼 손녀처럼 대했다. 제일 먼저 식습관을 바꿔주었다. “고기만 너무 먹는다”면서 식사 때마다 채소 반찬을 밥그릇 앞으로 내밀 었다. 그러면서도 식탁에 계란이나 고기 반찬을 빼놓지 않았다. 집에서 먹으라고 반찬 을 챙겨주기도 했다. 제일 맛있었던 건 덜 맵게 만든 제육볶음과 족발이었다. 이모들 이 족발을 일주일에 서너번씩 시켜줬다. 

“말에서 체온을 느끼는 법”도 배웠다. 이를테면 “내 새끼”하는 말이었다. 손자와 통 화를 하면서 “아이고 내 새끼”하는 걸 듣고 ‘왜 손자에게 욕을 하지?’하는 생각을 했 다. 목소리에 담긴 온기에 따라 단어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배웠다. 고급 한국어도 덤이었다. 

“‘먹는다’는 말을 밥 먹을 때만 쓰는 줄 알았는데 이모가 ‘칼이 왜 이렇게 안 먹노?’ 하더라고요. ‘먹는다’는 말을 참 여러 방법으로 쓰는구나, 싶었죠.”

일하는 요령도 익혔다. 특히 한국인의 ‘속도 철학’에 매료됐다. 빨리빨리 업무 스타 일에 적응이 안 돼서 “이모 일 좀 천천히 해요”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럴 때마다 이 모들이 “빨리 하고 쉬는 게 나아”하고 대꾸했는데, 일이 어느 정도 속도가 나자 이모 의 말에 수긍이 됐다. 

이모들이 너무 고마워서 한번씩 “내가 쏠게”라고 할 때마다 이모들은 “괜찮아. 너 등록금에 보태”하면서 돈을 못 쓰게 했다. 이모님들 말마따나 얍삽한 사람들에게 대 처하는 법도 배웠다. 

“한국이든 몽골이든 남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잖아요. 이모들이 ‘아닌 건 아니라 고 딱 부러지게 이야기해’하고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저는 성격이 소심해요. 그래서 말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모들 덕분에 많이 용감해졌어요.”

오강에르뎅은 석사 논문이 마무리되면 미국으로 가 박사 학위를 딴 후 몽골로 돌아 갈 생각이다. 그는 “아직 미국에서 더 공부해야겠지만, 회사 경영에 필요한 진짜 지식 은 한국에서 다 배웠다”고 말했다.

“이모들이 보여준 배려나 친절만 실천할 수 있다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일 잘 하는 회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학원에서도 공부했지만 진정으로 배워야할 것 들은 이모들에게 다 배웠어요. 한국 이모님들, 평생 못 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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