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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성 흉내내다 뒤늦게 재능 발견

“오페라 널리 알릴 거예요”

  • 입력 2022.06.15 09:00
  • 수정 2022.06.27 16:41
  • 기자명 류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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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8일 오후 7시 대구 달서구 장기동 달서아트센터 와룡홀. 209석 규모의 공연장 의 무대 위에 훤칠한 키에 빨간 드레스를 입은 성악가가 올랐다. 무대의 주인공은 바 로 ‘늦깎이’ 메조 소프라노 정미현(27)씨였다. 그는 피아니스트는 이지영씨의 반주에 맞춰 이날오페라 탄 그레디의 아리아인 작곡가 롯시니의 ‘오 나의 조국이여... 이처럼 설레는 가슴(Oh Patria... Di tanti palpiti)’ 등 오페라 곡을 장장 90분 동안 공연했다. 독일어와 영어 등 다양한 외국어로 부른 여러 오페라 곡이 이어진 뒤 정 씨는 관객 들에게 무릎을 접고 고개를 숙이는 등 특유의 포즈로 인사했다. 피아니스트와 손을 잡 고 관객들에게 허리를 숙이기도 했다. 무대가 끝날 때쯤 공연장은 관객들도 가득 찼 다. 객석에서 한 남성 관객이 “브라바”라를 외친 데 이어 “앵콜” 등 환호가 한동안 이 어졌다. 정 씨는 ‘그리운 금강산’을 한 차례 더 불러 호응했고 그 이후에는 특기인 수 어를 곁들여 다른 노래를 또 불렀다. “음악으로 소통하는 데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고 싶다”는 정 씨가 준비한 비장의 무기였다. 

정 씨는 “10년 전 무대의 정미현을 지켜봐주신 분들께서 오늘 이 자리에 계신다”며 “10년 뒤, 20년 뒤에도 지켜봐주길 부탁드린다”라고 인사했다. 공연이 끝난 뒤 공연 장 입구의 화환 옆에 놓인 꽃다발과 꽃바구니는 모두 30개가 넘었다. 정씨는 꽃다발 을 안고 관객들과 사진을 찍으며 귀국 콘서트를 성료했다.

 

성악가 따라했을 뿐인데... 이런 재능이

고등학교 2학년이 돼서야 성악가의 길로 들어섰다. 늦깎이로 시작해 2년 넘게 미국 에서 실력을 갈고닦았다. 예술계 학교를 거쳐 외국 유학길에 오르는 통상적인 루트가 아닌 일반계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목소리가 트였다. 음악 공부도 어학연수를 하겠다 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뒤 음악 석사학위를 받아왔다. 

정 씨가 성악을 시작한 것은 2011년 4월, 우연한 기회에 성악의 발성을 흉내 내던 중 가능성을 본 게 계기다. 이미 춤과 노래에 소질이 있었던 정 씨는 바이올리니스트 인 어머니의 영향에 오페라를 선택했다. 소질은 분명했다. 음악을 시작한 지 불과 4 개월 만에 전국대회 두 곳에서 잇따라 입상한 쾌거를 올린 것이다. 2011년 8월 대구 가톨릭대에서 열린 제36회 전국 초·중·고등학교 음악경연대회 장려상, 2주 뒤 계명 대에서 열린 제50회 전국 고등학생 음악경연대회에서 3등이 수상 실적이다. 이때부 터 정 씨는 자신의 몸을 악기로 삼아 “노래를 부른다”는 말 대신 “연주를 한다”고 표 현하기 시작했다.

메조 소프라노 정미현
메조 소프라노 정미현

 

영어공부 열심히 한다고 해놓고선 진학준비

대학에 진학한 뒤 정 씨에게 시창청음(음악 듣고 악보 그리기)은 음감을 유지하게 해준 보배였다. 상위 4%만 가능한 교직이수까지 마친 그에게 부모님은 교편을 권했 다. 하지만 정 씨는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한 뒤 돌아오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속셈은 전 세계인이 있는 곳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로부터 8개월간 매 달 1,000달러에 불과한 생활비로 그는 토플시험과 레슨 등 입시까지 준비했다. 시간 당 300달러에 이르는 개인 레슨이 그의 발목을 잡았지만 입학 전까지는 부모님께 알 릴 수도 없었다.

유학 8개월 차이던 2017년 12월 미국 맨해튼 음대를 시작으로 이듬해 4월까지 10 곳이 넘는 곳에 원서를 넣었지만 줄줄이 낙방했다. 작심한 정 씨는 마지막으로 지원 한 곳인 미국 브루클린음악대학에서 이탈리아 아리아와 영어 가곡으로 실기평가를 치르고 입학허가증을 받은 뒤에야 이실직고할 수 있었다. 정 씨는 “다행히 부모님께 서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며 “더 열심히 공부해서 보답해드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 다”라고 말했다.

미국 대학에서 정씨는 주말과 휴일도 없이 수업과 공부, 연습에 매진했다. 7시에 일 어나 9시부터 6시까지 수업을 듣고 밤 12시까지 연습을 하거나 영어 등 공부를 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한인커뮤니티에 연습공간을 수소문하기도 했다. 그러던 정 씨 는 지난 2019년 대학이 뉴욕의 한 극장에서 주최한 90분 분량 오페라 ‘잔니 스키키’에 서 ‘치에스카’역으로 신고식을 치렀다. 정 씨는 “이후에도 연습은 꾸준히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에 줄줄이 취소된 공연이 아쉬웠다”고 토로했다.

 

지난날 참 힘들었지만 이젠 목표가 여럿

지난 2020년 6월 음악석사학위를 받은 정 씨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급히 귀국했 다. 당시 그는 “부모님 몰래 입시를 준비한다며 감당했던 개인 레슨비 등을 생각하면 정말 절실했던 것 같다”며 “더구나 오페라 주류 언어가 아닌 곳에서 얻은 것은 전 세 계인의 심금을 울려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라고 정리했다.

귀국한 그해 정 씨는 미스대구에도 도전해 본선에 진출하고 올해부터는 방송 공부 도 하는 등 음악과 자기개발을 병행했다. 정 씨의 다음 목표는 오페라의 대중화다. 그 는 “대구에서도 이태리어나 프랑스어뿐만 아니라 영어로 된 오페라를 맞이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다”며 “다양한 사람들의 공감할 수 있게 많은 모습을 보여주는 성악 가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연주자의 역할로 생각한다”라며 “전통의 틀을 지키면서도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무 대를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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