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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때, 지금은 지금이지만 전쟁은 언제고 일어날 수 있어”

1965년 9월 해병대 청룡부대 일진으로 베트남에 파병 부대가 마을을 떠나던 날, ‘아리랑’ 불러주던 아이들

40년만에 다시 찾은 베트남 “그때는 그때”란 말에 위로

  • 입력 2022.06.03 09:00
  • 수정 2022.06.27 16:55
  • 기자명 김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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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균 칠곡군고엽제전우회 회장. 1965년 9월28일 청룡부대 ‘일진’으로 베트남으로 떠나 1년 만에 돌아왔다.
신상균 칠곡군고엽제전우회 회장. 1965년 9월28일 청룡부대 ‘일진’으로 베트남으로 떠나 1년 만에 돌아왔다.

 

“휴가를 나와서 곧장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탈영이었죠.”

 

신상균(79) 칠곡군고엽제전우회 회장은 청룡부대 ‘일진’으로 베트남에 다녀왔다. 1965년 9월28일 베트남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베트남으로 향한 첫 부대였고, 지원이 아닌 차출을 통해 파병 부대를 구성한 만큼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전투부대가 아닌 지원부대 소속이긴 했어도 전쟁터에서 목숨을 100% 보장받는 안전지역은 없었다. 전장에서 총을 쏴 본 적은 없었지만, 43년생인 신 회장에게 전쟁의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부산 서면이 고향이었던 그는 피난민들이 국제시장에 북적이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거제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을 석방시켰을 때 포로 중 두 사람이 그의 집에 잠시 머물렀다. 아버지가 마을 반장이었던 까닭이었다. 전투를 직접 경험하진 않았어도 전쟁의 느낌은 체감한 셈이었다. 

 

신 회장의 마음을 돌려세운 건 누나였다. 누나는 그를 붙잡고 “탈영하면 인생 끝이다. 그렇지만 월남에 가면 반드시 죽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설득했다. 결국 누나의 말에 수긍하고 부대로 돌아갔다. 

 

이인호 소령,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신 회장은 전투 부대와 1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지원부대에 배치되었지만, 전쟁이 게릴라전 위주였기 때문에 전후방이 따로 없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이인호 소령이었다. 이 소령은 수색 작전을 나섰다가 부하들을 살리려고 적이 던진 수류탄을 품고 산화한 전쟁 영웅이었다. 신 회장은 헬기를 타고 수색을 떠나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얼마 후 시신으로 돌아오셨어요. 정말 사람이 좋았죠. 순직하기 한 달 전에 생일 파티도 하고 그랬어요. 게다가 소령 진급 후 여단본부 작전과로 가기로 되어 있던 상황에서 그런 사고가 터졌죠. 끔찍하죠. 전쟁이란 거.”  

 

신 회장이 소속된 부대는 뚜이호아의 작은 마을에 주둔했다. 민간인도 있었다. 빈집에 들어가서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때 주민들과의 교류가 있었다. 농민들이 벼를 수확해서 볏단을 바위에 내리쳐 탈곡하는 것을 보고 한국에서 탈곡기를 가져와 선물했다. 아이들에게는 시레이션(비상식량)을 주면서 ‘아리랑’을 가르쳐줬다. 한국의 정서가 담겨있기도 하고, 멜로디가 쉬워 아이들이 잘 따라부를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노인들은 한자를 알아서 필담도 가능했다.

 

1966년 9월 백마부대가 도착한 후 마을을 떠날 때 보았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 아이들이 나무에 올라가 아리랑을 부르며 부대원들을 배웅했다. 눈시울이 붉힌 장병들이 많았다. 신 회장은 “아이들이 부르는 아리랑을 들으면서 이놈의 전쟁,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생각할수록 가슴 아픈 장면”이라고 말했다.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

2007년, 경상북도월남참전전우회에서 베트남으로 전적지 순례를 가자는 제의를 해왔을 때 선뜻 내키지 않았다. 퀴논에서 저녁 회식을 하며 마음을 내려놓는 계기를 만났다. 그 지역의 공산당 고위 간부가 동석을 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

 

그 뒤로 다소나마 마음 편히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하롱베이를 구경한 후 전적지 순례길 중 다낭에서 산 막걸리를 들고 복무했던 지역으로 갔다. 마을 강가에 차를 세우고 이인호 소령의 이름을 부르며 막걸리를 뿌렸다.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이는 이름이었다. 그는 “나에게 베트남 전쟁은 젊고 아름다운 목숨들이 안타깝게 떠나간 비극이라는 느낌이 제일 강하다”면서 “전쟁은 일어나면 안 된다. 그건 인류의 죄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도 두 마리를 붙여놓으면 싸웁니다. 사람도 약하다 싶으면 덤빌 마음이 들죠. 힘을 길러야 합니다. 덤비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어야 싸움이 안 일어납니다. 싸움을 막으려면 싸울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지자체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6.25 참전자들은 명예수당을 10만원씩 올려줬는데 월남전은 그대로다”면서 “모두 나라를 위해 싸웠던 만큼 명예에 차등을 두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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