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최전방 전투 30:2로 싸워도 아군은 판판이 졌죠”

“우리 세대의 이야기가 후대에 전해지길 바랍니다”

  • 입력 2022.06.02 09:00
  • 수정 2022.06.27 15:55
  • 기자명 김광원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67년 여름이었습니다. 헬리콥터가 공중에서 허연 가루를 뿌렸 는데, 열흘쯤 지나니까 나무며 풀이 벌겋게 변하더군요.”

고엽제였다. 베트남 전장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다. 김만환(77) 칠곡 군보훈단체협의회 회장에 따르면 본인이 근무한 최전방 방책선 인근 에도 고엽제가 살포됐다. 이듬해에는 병사들이 직접 고엽제를 뿌렸 다. 고엽제를 퍼담을 바가지가 없어서 철모에 고엽제 가루를 담아서 방책선 인근에 뿌렸다. 숲이 벌겋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 하 얀 가루가 어떤 폐해를 끼칠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김 회장의 말 마따나 “아직 한창 젊었으니까.” 제대 후 농협에서 농산물 경매사로 일하다가 외환위기 이후 국궁 선수로 활동했을 만큼 건강 하나는 자신 있었던 그였지만 2010년 즈음 심장 혈관에 스텐트 시술을 받았고, 2019년에 전립선암으로 다시 수술대에 누웠다. 다행히 국가에서 고엽제 후유증을 인 정해줘 수술비 등을 지원받았다.

김만환 칠곡군보훈단체협의회 회장
김만환 칠곡군보훈단체협의회 회장

 

대북 방송이 대남 방송에 철저하게 밀린 이유

김 회장이 기억하는 방책선 인근은 전쟁의 긴장이 팽팽하게 감도는 곳이었다. 방책 선 안으로 들어가 수색과 매복 작전을 진행하다가 실제로 교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가 하사관으로 방책선 경계근무를 서던 그 시절, 1년에 2명 정도의 사망자가 나왔다. 간혹 무기를 내려놓고 담배를 교환할 때도 있었다. 아군은 아리랑, 파고다, 북측은 모란봉을 들고 나왔다. 담뱃갑을 주고받는 교환이 아니었다. 담배에 불을 붙여 몇 모 금 빠는 모습을 보여준 뒤 건넸다. 혹시나 담배에 독극물을 묻히지나 않았을까,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우호적으로 인사하고 담배를 건네다가 심사가 틀어져 육박전이 벌 어지는 일도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지 채 20년도 흐르지 않은 즈음, 남북의 병사가 함 께 관리하는 비무장지대는 늘 긴장이 흘렀다.

“월남요? 최전방 요원들은 지원도 못 하게 했습니다. 후방에 있는 병사들이 월남에 갔다왔죠. 휴전선의 긴장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월남은 ‘나’를 지키는 게 우선이었다면, 국가의 안위와 직결되는 휴전선은 ‘나’보다 ‘나라’가 우선이었죠.” 당시는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을 앞서던 때였다. 소위 방송전에서 경제력을 실감했 다. 3킬로와트 발전기를 돌려 서른 개 남짓한 스피커를 통해 이미자의 히트곡을 틀어 주면 북쪽에서는 즉각 대응에 나왔다. 스피커의 숫자는 단 두 개였다. 그러나 서른 몇 개의 스피커 소리가 죽어버릴 만큼 덩치가 큰 놈들이었다. 소리 전쟁이었고, 남쪽의 완패였다. 전력과 장비에서 북이 월등히 앞선 시절이었고, 이는 곧 병사들이 방책선 앞에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됐다. 

 

연못에 붕어를 키운 이유

내무실로 쓰던 지하 벙커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밤에 촛불을 켜놓고 부모님 께 편지를 썼다. 물도 없어서 산 밑으로 내려가 식수를 떠왔다. 우물에 도착하면 붕어 부터 살폈다. 한가하게 물고기 구경을 하는 게 아니었다. 혹시나 북한 병사가 몰래 와 서 독극물을 풀지는 않았나 확인하는 절차였다. 독극물이 들어간 식수로 밥을 지었다 간 1개 소대가 전멸할 것이었다. 일상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1968년, 긴장이 극에 달했다. 소위 ‘김신조 침투 사건’이 터졌다. 제대 명령을 받고 산밑으로 내려간 한 기수 선배들이 다시 부대로 귀환했다. 제대는 중단되었고, 장교 들로부터 전쟁 발발시 행동 요령 등을 지시받았다. 군장을 꾸리고 전투화를 신은 채 잠을 청했다. 싸이렌이 울리면 곧장 출동이었다. 매시간이 칼끝에 올라선 기분이었 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태로 여섯 달이나 군복을 입고 하루하루 긴장 속에 서 보냈다. 언제고 적들이 밀고 내려올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의 연속이었다. 

 

균등한 명예수당 필요

상이군경회에 가입하면서 보훈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칠곡군보훈단체협의회 회장 을 맡은 것은 올해 1월부터였다. 그동안 가장 애를 쓴 부분 중의 하나는 명예수당이다. 김 회장은 “부상을 당한 공간이 베트남이든 한국 땅이든 모두 나라를 위해 애쓰다가 몸을 상한 것인데 명예수당에서 차이를 두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칠곡군 베트남 참전용사의 명예수당은 15만원, 국내 군복무 부상자는 10만원이다. 김 회장은 “고작 5만원이지만 자존심의 문제”라고 말했다. 

“상주 등 대부분의 지역은 명예수당이 같습니다. 지자체장의 의지가 관건입니다. 새로운 군수님이 들어오면 이 부분에 대해 보훈단체의 목소리를 경청해주셨으면 하 는 바람입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동상을 다복동에 가져오는 일도 보훈 단체가 큰 숙제로 여기고 있는 사업이다. 백승엽 장군의 동상과 함께 세우자는 의견을 냈지만 아직 진전이 더딘 상황이다. 김 회장은 “우리 보훈단체들은 세 분의 동상을 함 께 세우는 일에 적극 찬성하고 있다”면서 “칠곡이 호국보훈의 도시를 천명하고 있는 만큼 언젠가는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우리는 몸에 역사를 새긴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세상 진리를, 진실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피와 땀으로 겪어낸 우리 세대의 목소리가 반드시 후대에 전해져야 한 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역사를 세운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만큼 지자 체와 국민 여러분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묻는 것이 예다

공자가 태묘 사당에 들어가 매 제사 절차마다 물었다. 누 군가 그것을 보고 말하기를 “ 누가 시골뜨기 추 땅 출신의 아이를 예를 안다고 했는가? 태묘에 들어와서 매 절차를 저리 묻는고?”

공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알지만 묻는 것) 이것이 예이다.”

- ‘논어’, 팔일 편

묻는 것이 예다
묻는 것이 예다

 

공자는 예에 밝다는 소문이 있었고, 제사를 지내는 성전에 들어가 의례 에 합류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공자는 비록 예에 대하여 높은 수준에 이르 렀지만 태묘 제사에 참가하여 모든 절차를 매번 물었던 것은 그 예를 몰라 서가 아니라 혹시라도 태묘 제사 절차만의 특수성이 있을까 해서입니다. 나 아가 그곳에서 예를 집행하는 사람을 존중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습니다. 그 런데 오로지 지식으로만 예를 알고 있었던 태묘의 관리들은 공자의 뜻을 알 지 못하고 시골뜨기 추 땅에서 온 공자를 예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난했 던 것입니다. 알지만 그래도 묻는 것, 이것이 예라는 공자의 말 속에 겸손 의 정신이 느껴집니다.

“남의 집 제사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지 말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집집 마다 특수한 제사 절차가 있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제사 지식만 갖고 이래 라저래라 한다면 정말 예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알지만 물어보는 것, 이것 이 진정 아름다운 예의 정신입니다. 아는 사람은 늘 물어봅니다. 모르는 사 람은 잘 묻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의 그물에 걸려 잇 기 때문입니다. Stay foolish! 난 아직도 어리석다! 난 아직도 물을 것이 많 다! 정말 똑똑한 사람은 매사에 묻고 또 묻는 사람입니다. 

- 박재희, <1일 1강 논어강독>, 김영사, 2020년

 

군자의 정의와 용기

자로가 말했다. “군자는 용맹을 숭상하는 사람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정 의를 더욱 우선으로 삼는다. 군자가 용기 만 있고 정의가 없다면 혼란을 일으킬 것이 고, 소인이 용기만 있고 정의가 없다면 도 둑질할 것이다.”

군자의 정의와 용기
군자의 정의와 용기

 

공자와 자로의 군자에 대한 토론입니다. 자로가 군자는 용기를 숭상하는 사람이냐 고 질문했습니다. 무사 출신 자로다운 질문 입니다. 자신이 용맹하다고 생각하여 군자 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냐고 물은 것입니다. 

공자는 용기만 갖고는 군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옳음을 기반으로 한 용기가 아니면 만용이라는 것입니다. 

건달들이 의롭지 못한 용기를 뽐내며 남을 괴롭힌다면 사람을 해치는 용 기입니다. 지도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용기를 펼친다면 사회를 혼란시키 는 용기입니다. 용기는 의에 기반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용기가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의 집 담을 넘는 용기, 사회를 혼라에 빠트리 는 용기는 정의롭지 못합니다.

- 박재희, <1일 1강 논어강독>, 김영사, 2020년

저작권자 © 대구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