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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 한 마을에 슈퍼맨들이 살고 있다

“슈퍼맨 배출은 단연코 더 이상 NO”
김천시 남면 초곡리 배수로 사고,
불행 중 다행은 ‘샤인 머스캣’ 덕분?

  • 입력 2022.05.20 09:00
  • 수정 2022.05.24 14:39
  • 기자명 박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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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옹과 이영규씨
김성기옹과 이영규씨

 

경북 김천시민들 가운데는 “남면 초곡리에는 슈퍼맨들이 살고 있다”고 고개를 절 레절레 흔들며 얘기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60~90대의 어르신들이 각기 다른 농기계 를 몰고 가다 4.5m 높이의 배수로 아래로 떨어졌음에도 중상에서 비켜갔기 때문이다.

사고가 잇달아 난 현장은 젊은이라도 생명을 잃거나 치명상을 당할 수 있는 곳. 그 럼에도 불행 중 다행의 결과가 된 것은 “이들 어르신들이 슈퍼맨처럼 공중을 날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유머러스하게 해석들을 하는 것이다. 사고가 연이어 난 곳은 동 김천 IC 인근 포도 하우스 서쪽 측면 차량 1대가 겨우 지나 갈수 있는 농로에서 발생했 다. 이 농로는 폭 2m, 높이 2.5m에서 5m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배수로를 끼고 있다.

비교적 유동인구가 많은 인근 큰 길 주변 배수로에는 가드 레일이 설치되어있으나, 사고 주변 직선거리 150m 구간에는 가드 레일이 없다. 가드 레일이 없는 이곳에서 사고가 난 것이었다.

마을 첫 번째 슈퍼맨은 약 2년 전 출연했다. 70대 할머니 한분이 자전거를 타고 가 다 배수로 위를 ‘날았다’. 사고를 목격한 이들은 큰일 났다고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할 머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냥 툴툴 털고 걸어 나오셨다. 그리고는 걸어 나와 가 던 길 계속 갔다고 한다.

지난해 7월에는 같은 장소에서 마을 두 번째 슈퍼맨 김성기(90) 할아버지가 경운기 를 타고 가다 4.5m 높이의 배수로로 떨어졌다. 경운기가 수직으로 꼽히는 대형 사고 였다. 수확한 감자를 경운기에 한가득 싣고 내리막을 내려오면서 속도를 줄이지 않은 데다 클러치를 반대로 잡은 것이 화근이었다.

김 할아버지는 경운기에 깔리지도 부딪치지도 않았다. 운 좋게도 튕겨져 나와 화 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머리를 심하게 다쳐 출혈이 심했다. 그럼에도 혼자 배수로 를 빠져나와 구급 요청을 했다. 지금 돌이켜 보아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침착하게 대 처를 한 셈이었다.

동네 주민 이 모씨는 사고 몇 시간 후 경운기를 인양하러 온 대형견인 차량을 보 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어르신의 명복을 빌며 마을 장례식을 준비해야겠다고 마 음먹었다, 하지만 얼마 후 논에서 일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지금도 김성기 할아버지는 과수원과 논농사를 병행한다. 손수 1.5톤 트럭과 경운기, 트랙터를 몰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다만 10년 전 다친 허리가 최근 도져 지팡이 를 짚고는 있지만, 일을 하는 데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김성기 할아버지는 새벽 4 시에 일어나 해질 때까지 일하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가끔 찾아오는 손자 손녀들을 보는 즐거움이 마음의 건강을 선물하고 이것이 육체 적 건강으로 연결된다고. 특히 손자는 이번에 서울 모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더 욱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고 자랑한다.

가장 최근 ‘슈퍼맨’에 등극한 이는 지역 주민 이영규(68)씨. 지난 3월24일 미니 포 크레인으로 하우스 작업하던 중 포크레인에 탄 상태로 배수구 아래로 떨어졌다. 이 씨 는 사고 직후 인근 김천 제일 병원과 타 병원에서 2주간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지금은 퇴원 후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경북 김천시 남면 초곡리는 겉으로 보기에 여느 시골 마을과 별반 다를 것 없어 평 화롭기만 하다. 그러나 2년 전부터 예사롭지 않은 일들이 연이어 발생, 세간의 이목 을 끌었다. 그나마 더 큰 불행으로 연결되지 않아 주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주민들은 자칫 큰 불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사고가 그나마 그 정도 선에서 그칠 수 있었던 것은 마을 주작물인 포도 덕분이라고들 말한다.

김천은 포도 재배지로 유명하다. 대표 작물 ‘샤인 머스켓’은 그 맛과 품질이 이미 국 내를 넘어 세계인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있다.

김성기옹과 이영규씨는 “인근 주민들이 우리들을 슈퍼맨이라고들 하는데 이는 그 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면서 “주민들 사이에는 샤인 머스켓을 먹으면 액운이 피해간 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헛된 말은 아닌 것 같다”고 크게 웃었다.

김천 남면 위성충(60) 면장은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지역 주민들이 안전을 위해 추경에 가드레일 설치비용 반영을 마쳤다. 더 이상 지역에서 슈퍼맨이 출몰한다는 소 리가 나오지 않도록 가드레일 설치를 4월 중으로 마무리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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