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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현직 경찰 6명 “명절 때 모이면 집이 파출소죠”

  • 입력 2022.05.12 09:00
  • 수정 2022.05.12 09:45
  • 기자명 박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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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경찰가족
3대 경찰가족

 

6월 퇴임을 앞두고 있는 서재준(60)대구북부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은 젊은 시 절에 경찰이 되고 싶은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의경으로 복무하면서 워낙 업무에 시달렸던 탓이다. 교통단속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스티커 하나 똑바로 못 떼냐”는 꾸중을 듣기 일쑤였다.

“교통 딱지를 떼려고 차를 정차시키면 각자의 사정에 얼마나 마음이 가던지. 그렇 게 한 대, 두 대 계도활동만 하다 보니 함께 나온 경찰들이 안 좋아하더라고요. 그렇게 의경생활을 하면서 경찰만큼은 안하겠다고 마음먹었죠.”

그에게 경찰의 길을 권한 사람은 작은아버지였다. 공무원이 됐으면 하는 부모님의 바람을 뒤로 한 채 회사생활을 이어가던 그에게 경찰시험을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호기심이 생겼다. 작은아버지가 이토록 권유 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다 싶었다. 시험이라도 한번 쳐보자는 마음으로 경찰에 도전 했고 단번에 붙었다. 

“작은아버지는 늘 제가 한 고민들을 진지하게 들어주시는 분이었어요. 그렇다 보니 그분의 설득에 마음이 움직이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진로문제도 제가 너무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성급히 판단을 내렸던 게 아닌가 싶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을 치러 간 그였지만 경찰이 된 후로는 한 번도 마음을 가볍게 먹은 적이 없었다. 같은 조직에 작은아버지가 계신 것이 심적으로는 큰 도움이 됐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실수가 자칫 작은아버지에게 피해가 될까 봐 늘 조심했다. 


부담감은 경찰가족의 장점이자 단점

서 팀장이 경찰생활을 시작할 즈음 친인척들도 하나 둘 경찰에 입문했다. 서 경감 보다 6개월 일찍 경찰이 된 서용석 경감(대구시경찰청 과학수사팀장)을 비롯해 서창 욱 경위(경북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와 부부인 서정은 경위(대구북부경찰서 112지령 실)·김영훈 경정(대구동부경찰서 수사과장)이 모두 그와 사촌지간이다. 이처럼 사촌 들이 줄지어 경찰이 된 것은 역시나 작은아버지 역할이 컸다. 베테랑 정보형사로 이름 을 날리며 모범적이었던 그의 경찰생활을 보고 경찰을 꿈꿨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아버지와 달리 서 팀장을 포함한 2세대들은 대부분 수사 분야에서 일 을 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의 근무로 인해 명절에도 다 같이 모이기가 쉽지 않지만 인 근 경찰서에서 비슷한 분야에서 업무를 하는 만큼 평소에도 왕래가 잦다. 그 덕에 가 족 간의 갈등이 있을 새도 없다. 서로가 각자 처한 어려움들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다. 하지만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서 팀장과 그의 작은아버지가 그랬듯 다른 이들도 각자의 무게감을 안고 살아간다. 

“평소에도 업무로 인해 서로 전화를 자주 합니다. 특히 같은 수사계열에 있다 보니 조언해 줄 것도 많고요. 저로서는 동생들이 있어 든든합니다. 하지만 작은아버지가 제 게 그랬듯 저도 그 친구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해서 ‘늘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살았습니다. 괜히 제 잘못이 가족들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사명감으로 이어지는 경찰정신

작은아버지가 서 팀장에게 경찰을 권유했던 것처럼 서 팀장 역시 조카인 서수진 경 위에게 경찰을 권했다. 당시 서 경위는 검찰직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어 차피 공부한 게 있으니 경찰 시험을 한번 쳐봐라. 생각보다 참 괜찮은 직업이란다.” 작은아버지가 서 팀장에게 했던 이야기는 어느덧 세대를 넘어 서 경위에게 이어진 것이다. 지난 2000년 12월에 임관해 22년차 경찰이 된 서 경위 덕에 3대에 걸쳐 경 찰을 배출한 집안이 됐다. 가족 중에 가장 막내 격인 서 경위는 그동안 나름의 부담 도 컸다고 한다. 

“집안에 워낙 경찰이 많다 보니 제가 합격을 하고 나서도 가족들은 당연하게 여기 는 분위기였어요. 경찰에 가족이 많은 것도 부담스러웠죠. ‘누구누구의 조카’라는 말 이 꼬리표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누가 먼저 묻지 않으면 굳 이 가족관계를 얘기 안 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가족이 있기에 든든한 적이 더 많았다. 서 경위가 강북경찰서 여 성청소년수사팀으로 활동하며 새벽에 현행범을 체포해 북부경찰서 유치장으로 갔던 날, 마침 작은아버지인 서 팀장이 당직을 서고 있었다. 입감 결제를 한 서 팀장은 이 내 유치장 직원들에게 조카를 소개했다. 그 덕에 서 경위가 추후에 유치장에 방문할 때는 업무가 훨씬 수월해졌다. 

서 팀장과 서 경위는 한목소리로 경찰로서의 기본자세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사 명감’을 꼽았다. 서 팀장은 “세대가 아무리 흘러도 ‘경찰의 사명감’이라는 절대 가치 는 변하지 않는다”며 “앞으로도 우리 집안에 경찰이 또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일선 에서 뛰고 있는 사촌동생들과 조카도 ‘사명감’을 잊지 않고 남은 생활을 잘 마무리하 길 바란다”며 당부했다. 

이제 서 팀장은 퇴직을 앞두고 경찰 가족에서 음악 가족으로 탈바꿈을 준비하고 있 다. 국악을 전공한 두 아들에 이어 그도 트로트 가수로 제2의 인생을 계획 중이기 때 문이다. 

“경찰생활을 하면서 법으로는 명확하게 나눌 수 없는 숱한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지친 제 마음을 달래주던 건 트로트였죠. 남들은 퇴직이 걱정이라고 하지만 저는 벌써부터 가수로 활동할 두 번째 인생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이제는 트로트가 수로 전국을 누비며 고단한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경찰 관련 기관은 개런티 없이도 공연 가능합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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