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푸틴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

발행인 칼럼

  • 입력 2022.05.04 09:00
  • 수정 2022.05.09 10:56
  • 기자명 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명상 대표 Caricature_ 강은주
유명상 대표 Caricature_ 강은주

 

푸틴의 정신이 이상하다는 말이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푸틴 대통령은 비이성적”이라고 주장했 고, 마크 루트 네덜란드 총리는 “완전한 편집증 환자”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상황을 보면 ‘정상이 아닌 게 정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푸틴은 너무 오랫동안 최고의 권력을 행사했다. 1999년 12 월에 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한 이래 지금까지 권력을 쥐고 있고, 얼마 전에 개헌을 통해 2036년까지 집권이 가능하 도록 해놨다. 이렇게 장기간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의 정신이 온전하기가 오히려 힘들 것이다.

권력은 호르몬도 변화시킨다. 권력을 쥐면 남의 눈치를 볼 일이 줄어들고, 그러다 보면 서서히 체내 호르몬이 양이 바뀐다. 이 를테면, 공격성을 부추기는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증가하고,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코르티솔 수치가 낮아진다. 타인의 말을 경청 하는 습관과 공감능력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모든 게 내 뜻대로!’ 통제 환상의 폐해

외곬으로 변한 정신 상태를 설명하는 용어가 많다. ‘통제 환상’이라는 말이 있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자 앨런 랭어(Ellen Langer)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자신의 뜻대로 외부 환경을 제어할 수 있다고 믿는 심리’를 의미한다. 일종의 착각이다. 이들은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고 위기 신호를 과소평가하거나 부정한다. 

이를테면, 병자호란 직전의 조선 지도층이 그랬다. 이분들은 국경 너머에 사람들을 오랑캐라고 경멸했다. 역사적으로 심리적 으로 늘 과소평가를 했다. 문제는 후금이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한 뒤에도 그 편견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 지배층은 ‘그 래봐야 오랑캐다’ ‘얼마 안 가 쇠락할 것’이라고 봤다.

후금은 결코 약하거나 얼마 안 가 사라질 세력이 아니었다.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한 후금은 조선을 굴복시켜서 명이 쇠락했 다는 것을 증명할 시범케이스로 만들길 원했다. 그래서 조선에 시장을 열고 해마다 공물을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조선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현실이었으나, 이후의 태도를 보면 ‘어쩔 수 있을 것’처럼 행세했다. 약속한 만큼 공물을 보내주지 않거 나 후금 사신을 푸대접하거나 하는 식이었다. 후금이 이에 항의하자 인조는 “방자하다”고 화를 내면서 단교 의사를 밝히기도 했 다. 요컨대, 아무런 대책 없이 자신감만 넘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아무도 “NO”라고 하지 않는 집단의 최후

푸틴의 무리들과 관련해 ‘집단 사고’도 의심된다. 얼마 전 푸틴 대통령 밑에서 6년간 부총리를 지냈던 러시아 최고위직 인사 가 옷을 벗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반전’ 목소리를 낸 것이 이유였다. 결국 푸틴의 집단 안에서는 아무 도 “NO”라는 말을 못 한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다른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으면, 사고가 점점 극단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 집단 사고는 전제주의적 사고방식이다. 집단 사고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리더의 의견에 모두 긍정적이다. 반대하 지 않는다. 전원 찬성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구성원 모두가 ‘깊이 생각하지 않기’를 실천하면 된다. 리더가 뭐라고 하면 일단 긍정하고,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한 가지 생각으로 똘똘 뭉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대화를 나눈다 해도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한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고의 독재’인 셈이다.

2차대전 전범 재판 때 도고 시게노리 외상이라는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재판부는 그에게 “왜 전쟁(태평양 전쟁)에 반대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개인적으로는 반대였다. 다만 추세가 그래서 따랐다.” 

푸틴 무리는 결국 전쟁을 일으켰고 또 터무니없는 상황에서도 긴 시간 전쟁을 지속했다. 반대 의견을 내면 바로 내치면서 밀 어붙였다. ‘집단 극화’라는 용어도 이런 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집단 극화는 집단이 한 가지 생각에 쏠리면 개인이 반응할 때보다 훨씬 더 극단적으로 가게 된다는 설명이다. 푸틴이 점점 더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타당성이 있다. 자신들만의 생각에 매몰된 집단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트럭과 다름없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가 너무도 많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작은 ‘푸틴’들

그런데 사고가 극단으로 치닫는 현상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일상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푸틴 나쁜 놈”하고 넘어 갈 일이 아니다. 말하자면 나이나 지위, 권력의 정도가 심화되면 누구나 저런 모습을 드러낸다. 권력이 커질수록 혹은 오래 이 어질수록 그런 경향이 짙어진다.

맹자는 나이나 지위, 권력으로 사람을 사귀려들지 말라고 했다. 나이와 지위, 권력은 무리를 집단 사고에 빠트릴 수 있는 요 인이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내 나이가 다소 너희들보다 많다고 나를 너무 어렵게 여기지 마라.” 그런 후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공자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선생님 말씀은 무조건 옳아’ 하면서 생각 없이 앉아있을까봐 두려 워했던 게 아닐까. 나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일 것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지혜로운 리더라고 해도, 고압적이거나 남을 업신여기기 시작하면 결국 고립이 되고 만다. 나이나 권력은 내 가 싫다고 해서 빼거나 덜어낼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더더욱 유연하고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 푸틴은 다소 극단적인 예이지만, 그 를 통해서 우리 자신, 혹은 우리 사회를 둘러보아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대구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