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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클럽리의 문화마당’

  • 입력 2022.04.08 18:31
  • 기자명 이진숙 전 ‘클럽 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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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전 ‘클럽 리’ 대표
이진숙 전 ‘클럽 리’ 대표

지금의 모습이 아닌 앞으로 될 수 있는 모습


글쓰기라는 조용한 행위 속에는 많은 움직임이 들어있다. 잠든 정신을 깨우고, 무딘 감각을 스트레칭 시킨다. 주변을 탐사하게 하고, 가만히 멈추어 응시하게 한다. 주의를 기울 이게 하고, 가볍고 미미한 순간까지도 지나치지 않게 한다. 보이는 것만 보지 않고, 더 많이 보게 하며, 눈여겨보게 한다. 

무엇보다도 사색하게 한다.  

글은 내 마음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일상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나의 얼굴 이기도 하고, 나조차도 미처 깨닫지 못한 나의 내면이기도 하다. 쓰기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밀어내고 내 생각으로 채우는 일이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쫒지 않고 내 목 소리를 내는 일이다. 여태 살아오면서 얻은 나의 세계를 누군가와 나누는 일이기도 하다. 

글을 쓰면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든다. 생각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 안도감을 주 고, 어떤 생각인가 알아가는 것이 흥미롭기도 하다. 그 생각이 뜬구름 같아도 괜찮고, 아무하고도 비슷하지 않아도 괜찮다. 써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을 손에 넣으면 만족스럽 고, 나 자신이 시시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면 충분해진다. 

가치 있는 모든 것이 그렇듯, 글쓰기는 힘이 든다.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몰라 늘 암 담하다.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내 감각을 건드리는 것, 나를 끌어당기는 것 모두를 활자로 옮긴다. 방해하는 것들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나 자신을 꼭 붙들고, 멈추기와 속도 줄이기를 반복하면서, 오래도록 옅은 몰입을 이어간다. 집요하게 붙들고 있어야 만 끝에 도달할 수 있다.  

글쓰기는 자기 탐구다. 글을 쓰면 나 자신과 맞닥뜨리게 되고, 나 자신을 더 명확하 게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매일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게 되고, 어디쯤왔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확인하게 된다. 진짜 나를 만나게 되고, 나 스스로를 이해하 게 된다. 드디어 나와 내 삶을 사랑하게 된다.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에서 림태주는 “자주 생각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기울인 대상을 닮은 모습으로 삶은 물들게 마련이다”라고 했다. 글을 쓰니 이상한 일 이 벌어진다.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줄이 나를 어딘가로 끌고 가는 듯하다. 나를 ‘더욱 풍성한 세상’으로 데려가는 듯 느껴진다. 어느새 내가 글처럼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 고, 내가 전에 쓴 글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글이 내 삶을 안내하는 듯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내 삶이 생긴 듯하고, 내가 설계한 방식으로 내 삶을 살게 된 듯하다. 글쓰기에 암시 효과가 있나보다. 언젠 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모습을 글로 쓰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살아도 좋을 미래 에 대한 예언을 글로 쓰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이 될지는 어쩌면 내가 쓰는 글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글이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줄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평화로운 기운이 폴폴 나고, 마음이 해낙낙한 사람. ‘지금 내 앞의 행복’ 에 깡충깡충 기뻐하며, 타박타박 글 쓰는 사람. ‘좋은 사람들’과 오순도순 함께, ‘좋은 일’ 수북수북 쌓고, 이상과 아름다움과 열정을 아낌없이 나누며, 종국에는 ‘바라던 곳’ 에 도착하는 사람 말이다. 상상할 수 있어서 멋지고, 글로 쓸 수 있어서 멋지지 않은가.  나는 ‘지금의 모습이 아닌 앞으로 될 수 있는 모습’을 위해 글을 쓴다. 글쓰기가 내 삶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내 생각이 커지고, 넓어지고, 다져지 기를 바란다. 내가 달라지기를 바란다. 변화야말로 ‘내가 가져갈 결실’이다. 나는 이렇 게 생각하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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