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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리더가 빠지기 쉬운 함정

발행인 칼럼

  • 입력 2021.12.05 00:00
  • 수정 2021.12.14 13:57
  • 기자명 유명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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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ricature_ 강은주


 정치는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데, 간혹 정치 따로 나라일 따로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소위 ‘내 사람 챙기기’ 문 제가 불거질 때다. 국민들은 적재적소에 가장 능력있는 인재를 배치해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 내 사람 챙기기’로 흘러가는 일이 다반사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인재 영입 전쟁이 치열하다. 최종 후보 선발이 끝난 후 여야 할 것 없이 뒤로 밀려난 사람들이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비록 최종 후보로 선택받지는 못했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정말 괜찮은 후보들이 많았다. 한 국 정치를 더 풍성하고 발전적으로 이끌 인재라는 생각이 드는 이도 적지 않았다. 비록 패했지만 그들의 역량마저 폐기하는 건 어쩌면 만용일지도 모른다. 


최악의 황제, 최고의 황제
 자기 마음에 꼭 들어차는 사람들만 데리고 정치를 했던 왕들 중에 성공한 경우는 없다. 아무리 뛰어난 군주도 신하 를 품지 못하면 결국 실패했다. 중국사 최악의 왕으로 통하는 수양제(604-618)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중국사 최악 의 황제였다. 무식하고 포악하기만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뜻밖에도 뛰어난 인물이었다.
 수나라가 무너진 뒤 당태종이 등장했다. 그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황제로 평가받는 인물. 한번은 당태종이 수양제 의 책을 읽으면서 내내 감탄하다가 신하들에게 물었다.
 “이런 훌륭한 현인이 어떻게 그런 학정의 군주가 되었단 말인가?” 그러자 한 신하가 이렇게 대답했다. 
 “한 인간의 머리로 천하의 정무를 처리해 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수양제는 전체 재위 기간 14년 중 전반부 7년은 ‘문물의 번성함은 근세에 비할 바가 없었다’는 칭찬을 받았다. 문 제가 뭐였을까? 그는 너무 유능했다. 정사를 논하는 자리에서 신하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일이 잦았다. 신하들 은 점점 입을 다물었고, 결국 ‘네 맘대로 하세요’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버렸다.
 독불장군처럼 혼자 잘난 척하다 망했다는 이야기다. 나라를 세우고, 나라를 구하는 일 모두 인재에 달려 있다.

 

세종의 인재 관리 비법
 세종대왕은 인재들을 데리고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특히 사람을 쓰는 것과 관련해 좋은 모범을 남겼다. 태종이 살 아있을 때 영의정이었던 유정현(1355~1426)은 세종의 장인인 심온(1375~1419)의 옥사를 주도해서 그의 죽음에 결 정적 역할을 했고, 세종의 부인 심씨를 폐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태종 임금이 죽고 두려움에 떨었지만, 세 종대왕은 그를 계속 영의정 자리에 두었다. 보복도 하지 않았다. 보복에 나섰다면 몇몇은 죽었을 것이고 조정 분위 기는 뒤숭숭해졌을 것이다. 세종은 나라를 안정시키는 쪽을 택한 것이다. 이 일로 유정현이나 심온의 반대편에 섰던 이들 모두 세종대왕에게 충성을 다했다.  
 또 세종은 수많은 인재들을 발탁해서 공부시키고 성장시켜서 많은 성과를 냈다. 덕분에 과학, 음악, 문화,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인재가 쏟아졌다. 세종이 인재를 얼마나 아꼈느냐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임금은) 무릇 수많은 신하들의 성명, 내력 등을 비록 미세한 것이라도 한 번 들으시면 잊지 않으셨으며, 한번 그 얼굴을 보시면 비록 여러 해를 보시지 못했더라도 다시 보실 때에 반드시 이름을 부르셨다.’ 
 인재는 평화시에는 문화와 과락, 경제를 일으키고 위기에는 나라를 구한다. 조선을 통틀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 에 재상을 지낸 서애 류성룡의 인재관에 주목할 만한다. 그는 어느 상소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관중은 제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에 도적 2인을 천거하였으며, 안영은 좋은 말을 한마디 듣고 자기의 말 모는 자를 천거하여 대부(大夫)로 삼았습니다... 문벌을 따지지 마시고 오직 현능한 인재를 구해야 할 따름입니다.’ 
 선생의 천거로 고속승진한 인재가 바로 이순신과 권율이다. 이 두 사람은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 2개의 대첩을 이끌었다. 


인재가 없으면 정치도 빛을 잃는다
 마지막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수양대군이 왕좌를 차지한 즈음이다. 많은 충신이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 되어 목숨을 잃었다. 사육신 중에는 성삼문도 있었다. 대부분 죽음이 예고되어 있었기 때문에 입바른 소리를 하거 나 가담한 정도가 미미한 사람은 잘 몰랐다고 발뺌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성삼문은 정말 특별한 말을 했다. 세조 가 성삼문에게 강희안이 역모에 가담했는지 묻자 성삼문은 “실상 알지 못 합니다”고 대꾸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나으리가 이름 있는 선비를 모조리 죽였으니, 이 사람은 살려두고 쓰시오. 그는 실로 어진 선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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