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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이 시어머니라도 다 좋을 순 없죠”

  • 입력 2021.12.01 00:00
  • 수정 2021.12.13 15:27
  • 기자명 김채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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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45년 만에 시아버지를 뵀어요.”
  조영선(70)씨에게 2021년과 2022년은 ‘결실의 해’다. 한평생 정성을 들인 일들이 거짓말처럼 성과로 돌아온 까닭이다. 우선 6.25전쟁 때 강원도 철원 화살고지에서 전 사한 시아버지의 유해를 찾았다. 시어머니에겐 67년만의 상봉이었다. 아흔을 훌쩍 넘 긴 시어머니는 요 몇 해 사이에 부쩍 “유해라도 찾아서 함께 묻히고 싶다”는 말을 자 주했는데, 그 간절한 소망이 하늘에 닿은 셈이었다. 
  얼마 안 있어 집안에 또 한번 경사가 났다. 조씨와 시어머니의 이야기가 67년만의 귀환이라는 테마로 여러 방송에서 다루어지는 사이 조씨가 45년간 시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알려지면서 연거푸 큰 상을 받았다. 가까이 있 는 분들과 친인척들이 한 사람처럼 조씨를 칭찬하니 방송국에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 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5월 어버이날을 맞이해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0월에는 ‘13 회 대한민국 손순자 효부상’ 대상을 수상했다.


“같은 여자로서 시어머니가 존경스러웠어요”
  “결혼하면 우리 어머니에게 잘해주시오. 신혼 3년 만에 남편을 잃고 고생고생 살 아오신 분이라오.”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 조씨의 남편이 했던 당부의 말이다. 조씨는 오히려 남편의 그런 효자 같은 면모가 따뜻하게 느껴져 좋았다.  
  “시어머니가 아니라 같은 여자로서 시어머니가 존경스러웠어요. 함께 살면서 배울 점도 많겠다고 생각했지요.”
  자신도 있었다. 5남매 중 막내인 조씨는 올케들이 부모님을 모시는 것을 보면서 자 랐다. 성격이 살갑고 무던해서 집안 어른들에게도 예쁨을 많이 받았다. “어떤 집에 시집을 가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고, 고부갈등에 대한 걱정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자 주 들었다. 그런 자신감이 어두운 면을 모두 지우고 남편의 좋은 면만 보게 만들었다.

  혼사가 오가는 과정에서 드러난 시어머니의 인품도 결정적이었다. 결혼 전 시어머 니가 조씨의 어머니와 언니를 집에 초대했다. 차를 대접받고 돌아온 어머니는 조씨 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 시어머니 될 사람을 만나 보니까 속이 깊고 좋은 사람이더라. 저런 분 만나 기 쉽지 않다.”


“‘49:51’ 법칙을 마음에 새기면서 살았죠”
  친정에서 가사 일을 거의 못 배운 조씨는 시어머니께 살림을 배웠다. 시집온 후 잔 소리를 들은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싫은 소리를 반복해서 하지 않는 성격이셨다. 살 면서 시어머니의 연륜과 지혜에 도움을 받을 때가 많았다. 시어머니는 잘 모셔야 하는 사람인 동시에 든든한 보호자였다. 
  “주변에서는 오랜 세월 시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 수 있던 비결을 물어봐요. 그럴 때마다 49:51의 법칙을 들려줍니다. 좋은 점과 힘든 점이 거의 비슷하다는 거죠. 때로 는 좋은 점이 더 많았고, 때로는 힘든 점이 더 많았어요. 다 좋기만을 바라고 살면 신 사임당이 시어머니라도 같이 못 살죠.”
  올해 효부상 대상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이 났다. 지난 세월 좋았던 일과 힘들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저희 시어머니가 올해 93살이신데 제가 이렇게 사회로부터 칭찬을 받으라고 오래 살아계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어머니는 최근 경증치매 증상이 왔다.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함께 살아 온 세월이 있기에 눈빛과 행동만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제가 시어머니를 공경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처럼, 어머니도 저를 신뢰하고 의지했 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어머니께 늘 감사한 마음이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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