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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만 가지고 될까?

발행인 칼럼

  • 입력 2021.11.08 00:00
  • 수정 2021.11.26 11:08
  • 기자명 유명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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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큰 뉴스를 꼽자면 ‘오징어 게임’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놀라운 흥행 기록을 썼지만 아쉬운 대목이 있다. “재주는 한국인들이 부렸는데, 부수입은 중국인들이, 목돈은 넷플릭스에서 가져갔다”는 이야기다. “넷플릭스에서 200억 투자해서 28조 벌어갔다”는 말도 회자되고 있다.

브랜드와 유통의 중요성
물류와 제조의 관계를 생각나게 한다. 드라마 제작이 제조라면 콘텐츠를 유통하는 것은 물류일 것이다. ‘제조 강국’이라는 말이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사실 이번 경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유통이 가져가는 몫이 적지 않다. 오히려 더 크게 보는 전문가도 있다.
2016년에 유한양행이 중국 제약사와 기술수출 계약을 했다. 1,450억원 규모였는데 이듬해에 이런저런 이유로 파기됐다. 그런데 이 기술이 유럽 다국적 제약사에 1조4,000억원에 팔렸다. 이와 관련해 “중국과 잘 안 된 것이 오히려 득이었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운 구석이 있다. 아예 기술수출 안 하고 우리가 직접 약을 만들어 팔면 어땠을까. 기술수출보다 훨씬 더 큰 이문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왜 기술수출에 만족했을까. 이유는 브랜드와 유통이다. 다국적 제약사는 두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제약사는 아직 중소기업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외국에서 허가를 받거나 마케팅 능력을 확보하는 데 장벽을 느낀 기업들이 기술수출을 택한다”고 분석했다. 아쉽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 ‘오징어 게임’에서 느끼는 아쉬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애덤 스미스 “역대 영국 정부가 펼친 가장 현명한 정책은...”
유통망 구축은 여러모로 힘들다. 중국의 일대일로만 봐도 그렇다. 파열음이 끊이지 않는다. 역사를 보면 물류를 쥐었던 한자동맹이나 동인도회사는 군대까지 운영했다. 유통을 장악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군대를 포함해 국력 자체가 강해야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과거를 보면 아시아는 물건은 비교적 잘 만들었지만, 유통에는 무심했다. 유럽에서 아시아로 오려면 희망봉을 넘어야 했다. 유럽의 배들은 무수히 희망봉을 넘었으나 같은 시기 아시아의 배 중에는 한 척도 이 희망봉을 넘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양이나 질이 더 나았을 때도 유통은 유럽이 쥐고 있었다. 유럽과 아시아의 차이가 벌어진 계기가 산업혁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이전에도 차이가 많이 벌어졌다.
굳이 순서를 잡아서 정리하자면 유통장악, 산업혁명, 그리고 아시아 점령이었다. 영국의 유통과 관련해서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항해법은 역대 영국 정부가 펼친 가장 현명한 정책이었다.”
이 법은 1651년에 만들어졌다. 핵심은 ‘영국이 수입하는 물품은 반드시 영국 선박에 싣도록 하는 것’이었다. (수출품은 이미 무조건 영국 선박에 싣고 있었다.) 항해법 덕분에 네덜란드를 제압했다. 19세기 영국의 제국주의가 성공한 데 이 항해법이 공헌한 바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대영제국이라는 타이틀이 물류 혁명으로 가능했다는 이야기도 가능하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나?
물류혁명은 산업혁명으로 이어진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능했던 이유를 몇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어느 나라보다 먼저 왕이 군림하지 않는 국가가 됐고(1688년 명예혁명), 종교의 자유 덕분에 신교도나 유대인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자본과 기술이 유입된 것이 첫 단계였다. 이후 해상 패권을 잡으면서 금과 은이 대량으로 들어왔고, 이에 따라 물가와 임금이 오르면서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노동을 대체할 기계를 생산할 필요가 생겼다. 정치적 발전과 자유로운 분위기, 해상 패권 장악과 자본 구축 이후에 산업혁명이라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대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한국인으로서는 속상하도록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밝은 면도 있다. 주변 나라를 둘러보면 지금까지 ‘오징어 게임’ 같은 히트작을 만들어 낸 나라가 없다. 중국은 아예 세계적 유통망을 끊고 자신들만의 망을 만들었다. 그 결과 내수용이 주로 나온다. 일본은 감각 자체가 떨어진다.
또 하나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오징어 게임’이 일련의 성장 과정에서 나온 성과물이라는 점이다. 어느 외신에서 분석한 대로 한류가 시작된 것은 수십 년 전부터다. 서서히 올라오고 중인 것이다. 앞으로 우리 대중문화가 어느 만큼 힘과 영향력을 지니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현재 아쉬운 부분들을 하나 하나 메워나갈 잠재적 저력이 충분하다.

인도보다 셰익스피어
‘오징어 게임’이 촉발시키는 다양한 현상도 간과해서도 안 된다. 한국 자체가 세계와 만나고, 또 세계가 한국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런 부분도 분명히 크다. 일례로 ‘오징어 게임’이 공개된 이후 갑자기 외국인들이 제주도를 집중적으로 검색했다는 분석이 있다. ‘오징어 게임’ 자체로는 넷플릭스가 가장 큰 수익을 얻지만 파급 효과까지 넷플릭스가 다 가져가는 것은 아니다. 한국어가 과거에 비해 그다지 낯설지 않은 언어로 자리 잡았다는 것도 중요한 성과일 것이다. 한국이 그만큼 세계와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하나 더, 물류의 나라 영국에서 다소 생뚱맞은 말이 나온 적이 있다. 토라스 칼라일이라는 역사학자가 이렇게 말했다.
“인도는 포기할 수 있으나 셰익스피어는 포기할 수 없다.”
이 말은 세계인들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말로 이해했다. 셰익스피어라는 존재 자체는 거대한 극장을 세운 자본력과 대중문화를 즐길만한 시민들의 여력이 만들어낸 ‘문화상품’이다. 인도는 유통의 결과이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이를테면 ‘제조’의 결과물인 셈인데 유통보다 제조에 더 힘을 실은 격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제조가 물류에 영향을 끼칠 수도
크게 보면 영국은 산업혁명과 셰익스피어의 나라로 기억된다. 물류가 큰 역할을 했음에도 물류보다는 제조와 문화상품에서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뜻이다. 물류로 제조가 성장하지만, 반대로 제조가 물류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도 그렇게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 세계와 교류하고, 자본을 비롯해 힘을 축적해나가다 보면 제조와 유통이라는 두 부분 모두에서 큰 힘을 가지는 날이 올 것이다. 안방에 머무르지 않고 부지런히 세계로 나가 배우고 경쟁하면서 실력을 키워야 한다. 지금까지는 잘하고 있다.
BTS와 ‘기생충’, ‘오징어 게임’의 공통점은 기대 이상의 성과라는 것이다. 이런 성과들이 계속 나오면 지금 우리가 아쉬워하는 부분들도 언젠가는 너끈하게 메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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