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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태 가리는 조사 아닌 드러내고 해결 돕는 조사 돼야

  • 입력 2021.11.08 00:00
  • 수정 2021.11.26 10:51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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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평생교육진흥원・전국학부모지원센터가 발간한 ‘학교폭력 예방과 지혜로운 대처방법’ 가이드북 표지


교육부는 지난 9월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의 초4∼고3 재학생 387만여 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을 통해 실시한 조사에서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1.1%로, 2019년 1차 1.6%보다 0.5%p 줄었으나 지난해 0.9%보다는 0.2%p늘었다. 유형별로는 언어폭력 41.7%, 집단따돌림 14.5%, 신체폭력 12.4%, 사이버폭력 9.8% 순이었다.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이란 전체 응답자 중 학교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의 비율이다. 이번 조사는 2020년 2학기부터 지난 4월 30일까지 학교폭력 목격·피해·가해 경험에 대해 설문했다. (<표1, 2, 3> 참조)

학교급별로는 초등 2.5%, 중학 0.4%, 고등 0.2%로 나타나 2020년에 비해 초등학교는 0.7%p 늘고, 중학교 0.1%p, 고등학교 0.06%p 각각 줄었다. 학생 1,000명당 피해유형별 응답 건수는 지난해에 비해 언어폭력, 신체폭력은 증가(각 2.5명, 1.0명)했고, 집단따돌림, 사이버폭력은 감소(각 1.2명, 0.1명)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1차 조사와 비교하면 신체폭력(0.2명 증가)을 제외하고 모든 피해유형에서 응답건수가 감소했다.

피해·가해 응답률 작년보다 늘어
가해 응답률은 0.4%(1.2만 명)로 지난해 대비 0.1%p(0.3만 명) 증가했으나, 2019년 1차 대비 0.2%p(1만 명) 감소했다. 학교급별 가해 응답비율은 초등 0.85%, 중학 0.16%, 고등 0.04%로 지난해에 비해 초등학교는 0.19%p 늘었으나, 중학교는 같고 고등학교는 0.01%p 줄었다.

한편 목격 응답률은 2.3%로 지난해보다 0.02%p 증가했고, 2019년 1차보다 1.7%p 감소했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가 국회 교육위원회에 제출한 ‘전국 시도교육청 2021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후속조치 결과’를 살펴보면, 설문에 참여한 초중고생 344만 명 중 ‘학교폭력을 목격한 경험이 있느냐’는 서술형 문항에 응답한 건수는 52,336건으로, 이 중 96%인 50,472건이 부정확한 정보로 분류돼 후속조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후속조치를 한 경우는 3.6%인 1,864건에 불과했다. 지역별 후속조치 비율은 인천이 20.6%로 가장 높고 충북 15.9%, 대구 15.6% 순이었다.

교육부가 배포한 ‘학교폭력 실태조사 후속업무 처리사항 안내’에 따르면 후속조치 대상은 설문조사 서술형 신고 문항을 작성한 학생 중 가해자와 피해자 정보가 모두 명확하고 학교폭력 피해, 가해, 목격 경험 내용(장소, 일자, 시간, 피해 내용)이 구체적으로 작성된 경우에만 해당된다.

한효정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지표연구실 실장은 “피해·가해·목격 응답률이 2019년 1차 조사에 비해 감소했으나 지난해보다 증가한 것은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으로 바뀌었다가 지난해 9월부터 등교수업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부정확한 답변 양산 ‘구조적 문제’
교육부는 “언어폭력 비중이 늘어나고 중·고생에 비해 초등학생의 피해 응답률이 높은 부분에 대해서는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면서 “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학생 1,000명당 피해 응답 건수에서 집단따돌림(2019년 1차 5.3명, 2020년 3.8명, 2021년 1차 2.6명)과 사이버폭력(2019년 1차 2.0명, 2020년 1.8명, 2021년 1차 1.7명)이 점차 감소하고 있어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한 결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실태조사 결과의 신뢰도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의문이 제기돼 왔다. 먼저 앞에서 언급한 학교폭력 목격 응답 중 후속 조치가 취해진 경우가 3.6%인 1,864건에 불과한 이유가 구조적으로 질문 문항이 부정확한 답변을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등용 설문 문항이 중등용과 거의 같아서 초등생이 질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데다 문항 수도 많아서 모든 질문에 정확하게 답변하기 어렵고 ▲익명으로 하는 실태조사여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거나 특정할 수 없어 구제·처벌할 수 없으며 ▲매년 한두 차례 거의 같은 내용의 조사를 하면서 교원 업무 부담이 커지고 학생 참여 피로도가 높아질 뿐 아니라 관성적 답변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부정확한 답변을 양산하는 실태조사가 학교폭력 사건을 인지하고도 해결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 학교폭력 예방이라는 조사 본래의 취지를 퇴색시키고 있다.

면담 조사 결과와는 55배 차이
2018년 교육부는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학교폭력이 지속적으로 감소(2012년 12.3%, 2013년 2.2%. 2015년 1.0%, 2017년 0.8%)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경북 경주지역 86개 초중고교 중 20여 개교에서는 학교폭력이 0건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지역 학교폭력 예방활동 시민단체가 교육부 실태조사와 같은 질문지로 같은 지역 초4~중3 학생 160명을 직접 면담 조사했더니 결과는 딴판이었다.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는 답변이 44.5%(초등 61%, 중학 24%)로 교육부 발표(8%)보다 55배나 높았다.

또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학교폭력이 심각하다(‘매우 심각’ 32명, ‘심각’ 51명)고 답해 상당수 학생들에게 학교폭력 체감도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유형 중 심부름이나 사이버 괴롭힘, 놀림 등은 학교폭력이 아니라고 답변한 경우가 많아 학교폭력에 대한 지역 학생들의 인식 수준은 낮은 편이었고 이런 유형의 학교폭력이 일상화했을 가능성도 유추해볼 수 있다. 학교폭력에 대한 직접 면담 조사 결과는 실태조사 결과와는 사뭇 다르다. 일방적 온라인 방식에 대한 보완 없이 이뤄진 실태조사로는 학교 현장의 실태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신뢰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실태조사 결과를 단지 조사 대상이 초중고 재학생 전원이라는 점을 내세워 학교폭력 문제가 개선됐다고 낙관하는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학교폭력은 더욱 잘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지능화·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 0건?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가 부실하다는 지적은 이뿐만이 아니다. 실태조사는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학교폭력·집단 괴롭힘의 가장 안타까운 결과인 자살의 실태나 현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더욱이 극단적 선택에 대한 교육부의 통계 자체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올해 국회 교육위원회에 제출한 ‘연도별 학생·청소년 자살 현황’을 살펴보면, 교육부의 통계 수치는 통계청 연령별 자살통계 수치의 절반 이하다.(교육부 통계수치:통계청 통계수치 - 2013년 123명:308명, 2014년 118명:274명, 2015년 93명:245명, 2016년 108명:273명, 2017년 114명:254명, 2018년 144명:300명, 2019년 140명:298명) (<표4> 참조) 또한 교육부는 학교폭력·집단 따돌림으로 인한 극단 선택 건수를 2016~2020년 5년 연속 0건으로 집계했다.(<표5> 참조) 원인 미상도 235건으로 전체(654건)의 35.9%을 차지했다.

지난 9월 기독교사 단체 연합인 ‘좋은교사운동’은 ‘교육부 청소년 자살 예방 통계 부정확성 비판’ 성명서를 냈다. 성명서는 ▲지난 6년 동안 폭력·집단 괴롭힘에 의한 학생 자살 0명 통계는 거짓이고 ▲자살 학생의 통계도 통계청 통계와 비교하면 숫자가 적으며 ▲교육부가 자살 학생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명서는 “통계청의 학령기(10~19세) 자살 통계와 비교하면 교육부 통계 수치는 통계청 통계 수치의 2분의 1 이하다. 통계청 통계(국가통계포털)는 읍·면·동사무소와 시·구청에 제출한 사망신고서를 기준으로 집계하기 때문에 교육부 통계보다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교육부 통계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교육부-통계청 자살 원인 통계 달라
경찰청 변사사건 처리규칙(훈령 제996호) ‘별지 제1호 서식’에 따르면, 청소년 자살의 경우 담당 경찰이 변사 현장 점검 목록표에 자살이나 집단·아동 학대 의심 사건 등 사회적 관심 사안으로 분류할 때 ‘중점관리사건’으로 보고하게 된다. 성명서는 교육부가 경찰청으로부터 이 청소년 관련 변사사건 통계자료만 받아도 실제에 부합하는 ‘폭력·집단 괴롭힘 자살’ 사건 통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명서는 “폭력·집단 괴롭힘에 의한 학생 극단 선택은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할 수 있을 뿐 교육부 통계에서는 한 건도 없다. 전체 사망 원인의 35.9%를 차지한다는 ‘원인 미상’ 건도 폭력·집단 괴롭힘으로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자살 원인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면서 교육부에 대해 ▲학생 자살이 ‘원인 미상’으로 보고된 경우에도 경찰과 협조해 원인 파악 절차를 마련할 것 ▲교육부 통계가 통계청 자료와 차이가 나는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마련할 것 ▲매년 ‘원인별 학생 자살 현황’을 공개하고 관련 대책을 수립·발표·시행할 것을 요구했다.

사이버 공간서 ‘지능화’하는 학폭
[떼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피해자를 초대한 후 단체로 욕설과 비난을 하는 행위.
[방폭] 카톡 단체 채팅방에 피해자를 초대한 후 한꺼번에 나가버려 피해자만 남겨놓는 행위.
[카톡 감옥] 욕설을 참지 못한 학생이 단체 채팅방을 나가면 끊임없이 초대하여 괴롭히는 행위.
사이버불링(Cyber Bullying) 은어들이다. 사이버불링은 가상 공간을 뜻하는 사이버(cyber)와 집단 따돌림을 뜻하는 불링(bullying)을 합친 신조어. 이메일, SNS, 휴대폰 등 디지털 기기를 사용해 사이버 상에서 욕설, 험담, 허위 사실 유포, 따돌림 등으로 상대방을 괴롭히는 행위를 말한다.

학교폭력이 사이버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변이하듯 학교폭력도 현실의 변화 속도를 앞지르며 변이한다. 학교폭력 실태조사 피해유형별 응답률 중 사이버 폭력은 2019년 4.8%, 2020년 24.9%, 2021년 1차 9.8%로, 2017년부터 언어 폭력, 집단 따돌림에 이어 세 번째 순위로 올라섰다. 신체적 접촉보다는 비신체적 접촉으로, 외부에 더욱 노출되지 않는 음습한 방식으로 사이버 폭력은 ‘진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의 사이버 폭력 예방·대응 교육은 초보 수준이다. 그만큼 아이들은 사이버 폭력에 쉽게 노출된다. 각급 학교에서 학교폭력 문제를 담당하는 생활부장은 교사들 사이에서 가장 회피하는 보직이 됐고 이를 맡은 교사들은 내가 맡고 있는 동안 터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폭탄 돌리기’에 비유하고 있다.

휴대폰 사용 자제 ‘사회적 명상’ 필요
이보미 대구교사노동조합 위원장은 “청소년이 휴대폰을 무제한으로 사용하는 한 사이버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휴대폰을 사용하는 연령이 낮아지는 만큼 가정에서 유아기, 아동기부터 정해진 시간이나 꼭 필요할 때만 휴대폰을 사용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온라인에서도 배려와 존중의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인성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병교 아양초등 교사는 “휴대폰은 가장 편리한 이기이지만 흉기도 될 수 있다. 즐겁고 재미있는 것에만 몰두할 때 휴대폰 사용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교육이 반드시 즐겁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육은 힘든 것을 참고 견디는 것이기도 하다. 아이는 물론 어른까지 휴대폰 사용을 자제하는 ‘사회적 명상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실태조사와 관련해 학교 현장의 문제점과 미비점을 파악·개선해야 할 교육부가 사실상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가운데 실태조사의 한계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 와중에 학교폭력은 사이버 공간으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현장과 실태를 덮거나 가리는 실태조사가 아니라 이를 제대로 드러내고 해결책으로 이어지는 실태조사가 급하고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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