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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옷솜씨’로 직접 디자인 단 한 사람을 위한 단 하나의 옷

코로나19, 버텨야 이긴다1

  • 입력 2021.09.07 00:00
  • 수정 2021.09.07 10:58
  • 기자명 김향숙 시민기자 / 김윤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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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숱 많은 머리칼이 얼추 반백이다. 이럴 때면 염색을 하거나 모자를 써서 가리기 마련인데 그는 그러지 않는다. 나이에 비해 좀 많다 싶은 흰 머리 그대로 산다. 그의 흰 머리는 그의 30년 옷 고집, 의상 인생의 증표다. 젊고 싱싱한 표정의 주인들이 다 차지한 부티크 주인 자리 하나를 이순을 바라보는 그가 지키고 있다.

그의 인생은 일찍 갈렸다. 여고시절 가정시간, 민소매를 만들었다. 그가 좋아했던 가정 선생님은 그가 만든 민소매를 칭찬했다. 잘 만든 옷에 대한 칭찬만이 아니었다. 그를 칭찬했다. “너는 옷 만드는 솜씨가 좋구나.” 선생님의 그 말에 그의 인생은 정해져버렸다. 자신이 만든 민소매를 입었을 때 스스로 놀랐다. 그 순간이 왜 그렇게 행복했을까. 옷 못 입어 죽은 귀신이라도 씌었는지 자신이 새로 지은 옷을 입으면 몇날 며칠까지 행복했다. 지금까지 그는 그 행복한 민소매를 잠시도 벗지 않은 셈이다.

선생님 칭찬으로 열린 ‘행복한 운명’
선생님의 말은 정확했다. 그는 손재주가 좋았다. 바느질 솜씨만이 아니었다. 그림 솜씨도 뛰어났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그만의 독특한 디자인을 스케치한다. 커다란 집게로 집은, 손때 묻은 두툼한 스케치북은 꼭 옛날 시골장 채소 장수 치부책 같다. 그 속에 그가 거의 매일 그려온 갖가지 스타일의 디자인 스케치는 아무리 봐도 예사롭지 않다.

그는 여고 졸업 후 디자인학원을 다녔고 개인 의상실에 취직했다. 대구서 손가락에 꼽히는 의상실 미스김텔러에 입성했다. 기술직이 아니라 일반직이었다. 손님은 몰렸고 그는 하루 네 차례 단추 구멍 치러 가기에도 바빴다. 바닥에서부터 일을 ‘빡세게’ 배웠다. 단추 구멍 낼 새옷을 한 아름 껴안고 대구백화점에서 지하상가를 거쳐 동아백화점까지 하루 네 번을 왕복하고 나면 지쳤다. 러브엘 의상실로 옮겼다. 옷 만드는 기술자가 됐다. 심야극장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몇 년 전 봤던 드라마 ‘1987’ 그대로였다.

 


옷이 좋아 시작한 옷…손님이 찾아와주니
옷 기술은 미싱 앞에 앉자마자부터 빠르게 늘었다. 그는 한동안 잊었던 행복이라는 단어를 되찾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그러고 얼마 후 IMF 외환 위기가 닥쳤다. 1997년이었다. 남편이 다니던 대기업은 연말까지 별도의 고용 계약 통지가 오지 않으면 해고라고 했다. 그해 12월 31일 자정까지 남편은 통지를 받지 못했다.

그는 오히려 담담했다. 전쟁통 때보다 더하다는 이 시기는 어쨌든 버티고 지나야 했다. 그에게 IMF 터널은 생각만큼 길지 않았다. 드디어 의상실을 차렸다. 죽전네거리다. 이름은 ‘아델(adel)’. 불어로 ‘고귀한’이란 뜻이다. 딸이 지어준 이름이다. 마음에 드는 원단이 너무 많아 원단을 뜨러 가면 큰 짐을 안고 돌아왔다. 신기한 것은 마음에 드는 원단을 보는 순간 그 색상이나 재질에 맞는 디자인 구상이 떠오른다는 사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의상실에 걸린 옷은 모두 그렇게 그가 직접 디자인해서 지은 옷이다.

디자인과 소재, 색상 등에서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는 입소문이 돌았다. 한 번 온 손님은 대부분 단골이 됐다. 내가 좋아 시작한 옷이었고 옷이 좋아 옷을 만들었는데 그걸 손님들이 알아서 찾아와주니 다시금 행복을 꾹꾹 눌러 담았다.

더 넓은 곳이 필요했다. 부산 강서구 명지동 신도시로 가게를 확장 이전했다. 그곳은 부동산으로 뜨거운 곳. 손님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부산에서 터를 잡는구나 생각했다. 부동산 경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규제 조치로 하루아침에 냉탕이 됐다. 다시 대구로 돌아와야 했다. 지인의 소개로 근교 경산으로 왔다. 얼마지 않아 코로나19 사태를 맞았다.

“손님의 패션 취향 디자인에 담아낼 것”
코로나19는 생각할 기회를 준다. 그는 지금까지 손님의 취향보다 자신의 취향으로 디자인했다. 디자인에 손님의 취향을 담아냈다면 어땠을까. 이제 그는 손님의 패션 취향을 꼼꼼히 메모한다. 오늘도 그는 디자인 스케치를 한다. 빼곡히 적어놓은 손님의 취향을 고민한 디자인 스케치이다. 원단부터 디자인, 봉제 공정까지 그는 혼자서 전 과정을 컨트롤한다. 고객의 패션 취향을 알뜰히 파악해서 거기에 맞춘다. 유니클로 방식과 닮았다.

‘그는 다시 한 번 날아오를 것이다.’ 그의 단골들과 주변 친구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사실이다. 그는 의상과 디자인에 관해 드문 30년 경력의 솔루션과 노하우를 가졌다. 숨은 실력은 포스트 코로나, 시간이 갈수록 더욱 빛날 것이다. 지금은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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