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앞에 가면 도둑놈 ‘도독놈은 아마 일본인일 것’

쉬어갑니다

  • 입력 2021.07.08 00:00
  • 기자명 김광원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죄수야... 도둑질한 사람. 다 조선인이야.”
소녀는 식민지에서 나고 자란 일본인이었다. 1927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1945년까지 한국에서 살았다. 소학교 시절, 소녀는 작업장으로 가
고 있는 죄수들을 마주쳤다. 함께 걷던 학우가 그들이 모두 도둑에 조선인
이라고 말한다. 조선인은 죄수, 혹은 죄를 지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다. 소녀는 후일 일본에 귀국한 후 조선에서 자주 들었
던 민요 하나를 떠올렸다.
‘앞에 가면 도둑놈
그 다음은 양반
뒤에 가면 상놈’
소녀는 ‘앞에 가는 도둑놈 이미지는 일본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선 쌀 하나를 보더라도, 그것은 내지로 반출되거나 매점하여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상놈은 싸라기를 먹었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는 제사공장에서의 경험이 소녀에게 저런 생각
을 심어주었을지도 모른다. 겉만 봐서는 알 수 없는 공장이었다. ‘담쟁이가
휘감긴 건물은 밖에서 보면 나무숲처럼 고요하다.’ 친구들과 함께 일본인들
의 안내를 받으며 제사공장을 견학하다가 뜻밖의 풍경을 마주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조선인 소녀를 마주쳤다.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계 앞에 걸터앉아
손을 놀리며 나를 힐끔 쳐다본 그 아이는 나보다 어려 보였다. 그 눈은 애
처로웠다.’
방에는 열 두세 살 정도의 아이와 아가씨, 아주머니가 일하고 있었는데,
입구에 앉은 아이는 그보다 더 어렸다. 이 일본인 소녀는 견학 내내 불편해
서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는 ‘그 후에도 종종 가타쿠라제사 앞을 지나갔
지만, 두 번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고 썼다.
학교에 도쿄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전학을 왔다. 말투가 비슷해 다른 아
이들과 금세 친해졌다. 그는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대구로 온 것이었다. 소
녀는 전학생에게 물었다.
“왜 내지에서 왔어?”
그러나 그 아이는 “몰라” 하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소녀는 생각했다.
‘뭘 하러 조선에 찾아오는 걸까? 여기엔 조선인 어른들이 얼마든지 있는
데. 나에게는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소위 내지인들이 식민지에서 얼마 만 한 혜택을 받았는지 소녀는 아직 잘
몰랐을 것이다. 내지에서 조금의 도전 정신이 있으면 식민지로 와서 부자
가 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소녀의 궁금증이 후일 거대한 실체로 다가
왔을까? 알 수 없다.
참고> 모리사키 가즈에,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 박승주, 마쓰리 리에 옮
김, 글항아리, 2021년

저작권자 © 대구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