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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배 구제역 '과수화상병' 남하... 농장, 지역경제 초토화 조짐

  • 입력 2021.06.11 00:00
  • 기자명 정광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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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경기 안성서 국내 첫 발병한 뒤
충주 제천 초토화… 소백산맥 넘어 남하
추가확산 못 막으면 생산 기반 붕괴 우려

영주시 관계자가 8일 안정면 영주시농업기술센터 과수시험장 앞에서 과수화상병 확산을 막기 위한 소독제로 생석회를 뿌리고 있다. 영주시 제공

한번 걸리면 폐농할 수밖에 없는 과수화상병이 무섭게 확산하고 있다. 2015년 국내서는 경기 안성에서 처음 확인된 뒤 충청, 강원으로 확산한 데 이어 올해 처음으로 경북에서도 확인됐다. 경북은 지난해 국내 사과 생산량(42만 톤)의 3분 2를 생산한 사과 주산지다.

10일 경북도농업기술원에 따르면 과수화상병이 경북 안동시 길안면 한 귀농인의 사과밭에서 4일 발병 사실이 확인된 후 전날까지 도내 12개 과수원이 잇따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전체 피해 면적은 6.5㏊로 크진 않지만, 농민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병'으로 인식하고 있다.

 

화상병 세균의 상륙에 비상이 걸린 경북도는 긴급 합동예찰에 나섰다. 대상은 발생농장 반경 5㎞ 이내의 593농가다. 또 15개 시·군 사과주산지 지자체에 공문을 보내 사전방역에 나서 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청송군은 과수화상병 세균 유입 차단을 위해 전지나 꽃솎기, 열매솎기 시 외지 인력의 관내 유입을 막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과수화상병 발생 지역

 

'과수 구제역'으로도 불리는 과수화상병은 전 세계적으로 치료제가 없다. 당국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응책으로는 과수를 베어내 매몰처리하는 방법이 현재로선 유일하다. 경북농협 관계자는 "당장 올 가을 과일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확산을 막지 못하면 사과 최대 주산지 명성이 흔들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몰처리 후에도 3년간 과수를 심을 수 없어 농민들은 재기불능 상태에 빠진다.

과수화상병은 매년 전국으로 확산 중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지난 5월까지 4개 도 179농가(91.6㏊)에서 발생했다. 작년 동기(87농가, 49.5㏊) 대비 두 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올해 6월 첫 1주일 동안 114농가(49.0㏊)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올해 누적 피해 규모는 293농가 140.6㏊이다.

사과, 배, 자두, 매실 등 장미과 수목이 주로 걸리는 세균성 질병인 과수화상병이 한번 덮치면 해당 지역 과수원은 초토화된다. 충북 충주시 산척면에서 3만3,000㎡의 사과를 재배하는 서용석(62)씨는 "농장 두 곳 중 지난해, 올해 차례로 습격당해 자식 같던 사과나무를 모두 뽑아 땅에 묻었다"며 "30년 사과농사를 접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씨처럼 산척면에서 과수화상병 피해를 본 사과재배 농가는 110여 가구 중 100여 가구에 달한다. 화를 피한 10여 가구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연간 90억~100억 원에 달하던 사과 생산이 중단되면서 지역경제도 초토화의 위기에 있다.

시각물_연도별 과수화상병 발생 현황

특히 충주는 사태가 심각하다. 지금까지 산척면, 소태면 등을 중심으로 123개 농가(48.4ha)가 확진 판정을 받아 47.1ha의 과수원에서 매몰처리했다. 지난해 전국 발생 건수의 절반에 달하는 357건의 과수화상병이 이곳에서 발생, 192ha의 사과나무가 매몰처리됐다. 산척면은 지난해 전체 사과재배면적의 80%, 소태면은 43%를 땅에 묻었다. 피해 면적이 확대되자 충북도는 긴급 예찰구역을 발생 과수원 반경 2km에서 5km로 확대하고 134명의 긴급 방역팀을 투입했다.

과수화상병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지만, 피해 면적이 전체 재배면적의 1% 남짓한 수준이어서 당장 올해 가을 출하 가격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발병 6년 만에 5개 도로 확산한 만큼 조기 차단에 실패할 경우 머지않아 국산 사과를 구경하기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없지 않다. 농협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보다 강화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지난 겨울 유난히 따뜻했던 탓에 월동 세균이 늘었고, 4월 말부터 이어진 잦은 비로 습도가 높아 강하게 확산한 것으로 보인다”며 "30도 이상 기온이 올라가는 한여름이 되면 사태가 잦아들 것이다"고 전망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6일 안동시 길안면 과수화상병 발병 농가를 찾아 사태의 심각성을 확인하고 있다. 경북도 제공

 

충북지역 한 과수화상병 피해농장에서 방역당국 직원들이 중장비를 이용해 사과나무를 다 뽑아 땅에 묻고 있다.

 

충주=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대구= 정광진 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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