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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꿈 하나

배고픈 사람 와서 편안히 먹고 쉬어도 가는 식당

  • 입력 2021.06.01 00:00
  • 수정 2021.06.03 16:44
  • 기자명 박승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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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쿡방’이 대세가 된 지 한참이다. 저녁 무렵은 물론이고 시간대 가림 없이 먹방 쿡방을 방영하지 않는 날이 드물다. 음식과 요리, 그리고 이를 만들거나 먹는 모습이 미디어와 결합할 때 그 힘은 실제보다 세다. 덕분에 미식과 탐식, 폭식의 문화가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미디어 영상은 실제를 은폐한다. 밥 한 끼를 해결하지 못해 굶는 사람들의 존재를 지우고 잊게 한다.
어릴 때 배를 곯은 기억은 평생 간다고 한다. 너무 일찍 이마에 진 주름살처럼 지우기 힘들어서다. 평생을 이끌어가는 동기가 되지만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하고 몸의 성장을 방해하면서 마음에 채우기 어려운 결핍을 만들기도 한다. 배곯는 노인, 노인 빈곤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인간으로서 품격이 꺼진 뱃가죽처럼 앙상할 때 그의 삶을 위로할 말은 없다.


우리나라 아동 빈곤율과 노인 빈곤율
우리나라 아동 빈곤율(전체 아동 중 중위소득 50% 미만의 빈곤 아동 비율)은 2015년 6.9%로 2006년 10.1%에서 지속적인 감소 추세였다. 13% 수준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 가까울 만큼 낮은 수치였다. 그러던 아동 빈곤율이 2016년 15.2%로 220%나 급증했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1년 만에 아동 빈곤율이 치솟은 것은 통계 조사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소득 분배 지표의 공식 통계 작성 자료가 2016년 가계동향조사에서 가계금융복지조사로 바뀌어 아동 빈곤율의 시계열적 단절이 발생한 것이다. 가계동향조사를 활용한 이러한 결과는 소득 및 소비를 기초로 한 화폐적 방식(Monetary approach)의 전통적 빈곤율측정의 정확성을 높인 것이다.

2016년 가계금융복지조사는 행정 자료로, 소득과 공적 이전 지출 항목을 보완해 정확성을 높였다. 즉 아예 응답이 없거나 극히 일부만 말해주는 소득 등 민감한 항목에 대한 응답을 국세청, 보건복지부 등의 소득 관련 행정 자료를 결합함으로써 대체·보완했고, 이로써 조사 소득 대비 평균 소득이 상승했고 이에 따라 중위소득 50% 또는 60%에서 설정되는 상대적 빈곤선(poverty threshold)이 높아지면서 아동의 상대적 빈곤율이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들 중 최고 수준이다. 2018년 노인 빈곤율은 중위소득 50%를 기준으로 할 때 46.1%였다. 이는 한국 다음으로 노인 빈곤율이 높은 호주에 비해 13.5% 포인트 더 높은 수준이다. 이는 근로연령 빈곤율과 아동 빈곤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과 대조적인 현상으로 생애주기 간, 세대 간, 계층 간 재분배 수준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주요 OECD 국가들에서 노인 인구 비율이 14%에 도달한 시점에 GDP의 6% 중반대를 노인에 대한 공적 이전으로 지출한 데 비해, 우리나라는 2013년 기준으로 2.23%만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배고픈 사람들과 버려지는 음식

개인적으로 10여 년째 모 재단에서 후원과 급식 봉사를 하고 있다. 매번 밥차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 아직도 지역에 한 끼를 해결하기 어려운 분들이 많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안타깝다. 이렇게 나와서 한 끼를 해결하는 분들이 많다면, 적지 않은 분들은 이렇게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냥 배를 곯는 것은 아닐까 더욱 안타깝다. 이제 머지않아 강산이 두 번 바뀔 두어 군데 급식 봉사 경험을 통해 아직도 지역에 굶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늘 되새긴다.

지역별 급식소나 사회봉사단체에서 후원과 일손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시작한 일이었다. 미력하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처음엔 의무적인 사회 환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지만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상에 굶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걸 알고는 놀랐고 한쪽 가슴이 멍해졌다.
먹으려고 만든 음식의 약 30%가 버려진다는 뉴스를 들었다. 이번 주에도 달성공원 앞과 대구역 앞 등에는 밥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절대적 잉여와 절대적 결핍은 인류 역사가 시작할 때부터 공존했겠지만 이 둘을 최소화하는 것이 문명국이요 선진국이다. 다 먹지 못해 버려지는 음식이 지천인 세상에 굶고 허기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딴 세상인 이 둘 사이가 이어질 수는 없을까 다시 답답하다.
한참 전 얘기지만 굶는 아이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큰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다. 선생님으로부터 점심을 굶는 아이 2~3명을 아무도 몰래 돕는 후원자가 돼달라는 말씀을 듣고 바로 후원을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세상의 가려진 반쪽의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본 느낌이었다. 그 후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이 아이들과 부모 생각이 늘 바닥에 깔려 있었다.
전자회사와 유통업을 거쳐 마침 시작한 사업이 ‘먹는 장사’였다. 현재의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한 지 20여년이 됐다. 밀리는 주문에 바쁠 때에도 이 주문 전화 한 통을 할 수 없어 이것을 먹지 못하는 아이와 어르신들이 자주 생각났다. 사업이 자리를 잡은 해부터 매년 1,000~1,500마리의 닭을 모 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먹고 살기에도 바쁘지만 답답하고 무언가 빚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어 좋다. 무슨 착한 일을 하려고 이러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배곯는 사람은 없는 세상을
남아서 버리는 음식을 주자는 말이 아니다. 남아서 음식 30%를 다시 돈 들여 버리는 세상과 배고픈 사람들이 긴 줄을 서는 세상이 동시대라는 것은 아무래도 아이러니가 아닌가. 조금만 나눌 수 있다면, 내가 먹는 것의 30%만 나눌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굶지는 않을 텐데 하는, 당연한 생각을 해본다. 조금 많이 가진 사람이 조금 적게 가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면 다 같이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모이면 우리 사회를 조금 더 행복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나의 소망은 작은 식당을 하나 하는 것이다. 배고픈 사람들이 편안히 와서 먹고 쉴 수 있는 쉼터 같은 식당. 조인성과 차태현이 강원 화천에서 잠시 빌려 차린 라면집 겸 슈퍼 같은 식당. 이런 식당들이 하나, 둘 곳곳에 생긴다면 적어도 배곯는 사람이 없어지지는 않더라도 많이 줄어들지는 않을까. 배곯는 사람 없이 모두가 한 끼 식사쯤은 작은 호사를 부리듯 편하게 할 수 있는 세상을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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