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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더 생속이 썩어야‘새로운 희망’ 불꽃은 튈까

한국 언론과 지역 언론, 시민 언론이 설 자리

  • 입력 2021.04.01 00:00
  • 수정 2021.04.01 11:36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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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1>

‘디지털 뉴스 리포트’는 세계 언론 현황 브리핑이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언론 상황을 주제별로 보여준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Reuters Institute for the Study of Journalism)가 2012년부터 해마다 펴내고 있다. 이 보고서는 인터넷으로 이뤄지는 전세계 뉴스 생태계를 개괄 진단한다. 세계 40개국을 조사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방대하고, 해마다 그해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는 점에서 ‘업데이트’하다. 톰슨로이터재단(로이터통신)과 옥스퍼드대학교의 공동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신뢰성과 권위를 인정받는다.
이 프로젝트에는 영국의 ‘BBC 뉴스’와 미국의 ‘구글 뉴스 이니셔티브’ 등 유수의 14개 언론사 또는 관련사가 공식 협력 기관으로 참여한다. 2016년부터 한국언론진흥재단(이하 언론진흥재단)도 여기에 함께한다. 조사 작업은 영국의 설문조사 전문 업체 ‘유고브(YouGov)’가 맡아 이메일을 통해 온라인 설문으로 진행한다. 조사 대상은 2019년 38개국이었고, 2020년 2개국(필리핀, 케냐)이 늘었다.


▲5년 연속 언론 신뢰도 세계 최하위
언론진흥재단은 지난해 2020년 디지털 뉴스 리포트 원문을 번역·분석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0 한국’(이하 리포트 2020)을 펴냈다. 리포트 2020은 원문 내용을 한국 중심의 열 가지 주제로 나눠 분석·정리하고 있다. 이 중에서 한국 언론 상황의 심각성을 지적한 것으로 크게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 언론 신뢰도 추락, ▲ 뉴스 이용의 편향성, ▲ 지역 뉴스 외면, ▲ 인터넷 허위정보다. 이 중에서 상대적으로 최근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인터넷 허위정보’를 제외한 세 가지 항목의 내용을 정리하되 지역 언론의 입장에서 ‘지역 뉴스 외면’ 항목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본다.
첫째, 언론 신뢰도. 국내에서 디지털 뉴스 리포트가 특히 주목 받은 이유는 조사에 참여한 첫해 2016년 한국의 언론 신뢰도가 조사 대상국 중 최하위(〈표1〉 참조)라는 결과 때문이었다. 첫해부터 5년 연속 언론 신뢰도는 조사 대상국 중 최하위를 면치 못했다. 리포트 2020의 서두에서 김영주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장은 “(언론 신뢰도에서) 만년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러한 결과는 한국 언론에도 참담한 결과지만, (…) 재단의 입장에서도 자괴감을 금할 수 없는 결과”라고 밝혔다.
양승목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논평을 통해 “언론의 신뢰도 추락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지만 거시적으로 언론의 품질 문제와 정치적 편향 심화, 미시적 차원에서는 언론사의 자사이기주의와 선정주의 등”을 지적했다. 언론의 신뢰도 추락은 상당 부분 언론의 자업자득이라는 진단이다. “스마트폰과 디지털·소셜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면서 생존 위기에 몰린 언론은 클릭이 돈이 되자 클릭 유도를 위해 ‘찌라시’ 정보, 낚시성·광고성·어뷰징 기사, SNS 등을 사실 확인이나 추가 취재 없이 그대로 베꼈고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도 사양하지 않았다.” 양승목 교수는 앞서의 논평에 이어 언론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조건으로 ▲ 기사의 철저한 사실 확인, ▲ 정파성 아닌 독립성 유지와 감시자 기능, ▲ 취재 윤리 등 투명성 확보, ▲ 심층 보도 등 기사의 전문성과 고품질화, ▲ 허위·조작 정보에 대한 적극적인 사실 검증 등을 꼽았다.

▲ <표2>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만 보는 사람들
둘째, 뉴스 이용의 편향성. 보고 싶은 뉴스만 보고 듣고 싶은 뉴스만 듣는다는 얘기다. 조사 결과 한국은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를 선호하는 비중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높았다. 한국은 44%의 응답자가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40개국 평균 응답률 28%보다 16%p 높았다. 40개국 중 터키(55%)와 멕시코(48%), 필리핀(46%)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표2〉 참조)
‘나와 반대되는 관점의 뉴스’를 선호한다는 응답 비율은 한국 4%로 체코(3%), 헝가리(3%), 대만(3%), 폴란드(3%)에 이어 낮은 수준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온라인 매체들이 이용자 확보와 영향력 증대를 위해 특정 관점 혹은 의견에 초점을 맞춘 뉴스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뉴스의 정파성 또한 증가하고 있다.
조사 결과 독일, 일본, 영국, 덴마크 등의 다수 국민이 ‘특정 관점이 없는 객관적 뉴스’를 ‘나와 관점이 같거나 반대되는 뉴스’보다 더욱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립적이고 강력한 공영 방송사가 존재하는 나라들이다. 스페인과 프랑스, 이탈리아는 ‘나와 관점이 같거나 반대인 뉴스’를 선호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양극화된 다원주의(polarised pluralist) 국가들이다.
이나연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뉴스 이용의 편향성에 대해 “한국인은 조사국 중 뉴스를 가장 정파적으로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파성이 강할수록 뉴스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다. 한국인은 유튜브나 검색엔진을 통해 뉴스를 자주 이용하는데 유튜브 상의 오정보에 많이 노출되면서 뉴스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 <표3>
▲ <표4>

▲지역 뉴스, 있어도 안 보고 없어져도 그만
셋째, 지역 신문의 입장에서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지역 뉴스’ 항목이다. “응답자들에게 지역뉴스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5점 척도(‘전혀 관심 없음-별로 관심 없음-어느 정도 관심 있음-많이 관심 있음-매우 많이 관심 있음’)로 물어보고 ‘매우 많이 관심이 있다’ 또는 ‘많이 관심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을 집계한 결과, 한국은 응답률이 12%로 조사대상 40개국 중에서 지역 뉴스에 대한 관심이 가장 낮은 국가로 나타났다(〈표3〉 참조). (…) 지역뉴스에 대한 관심이 낮은 5개국은 한국(12%), 대만(18%), 일본(30%), 슬로바키아(31%), 영국(31%) 순이었다. 한국은 ‘전혀 관심이 없다’와 ‘별로 관심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 또한 40%로 40개국 중에서 가장 높았다.”
지역뉴스에 대한 관심은 성, 연령, 가구소득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지역뉴스에 관심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남성 44%였고 여성은 이보다 적은 38%였다. 연령대별로는 60대 이상의 18%가 지역뉴스에 대한 관심이 매우 많거나 많은 데 비해, 40대는 8%로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다. 지역뉴스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거나 별로 없다고 답한 비율은 20대가 51%로, 5개 연령 집단 중 가장 높았다. 가구 소득별로는 소득이 낮을수록 지역뉴스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표4〉 참조)

▲ <표5>

▲중앙집권화한 사회 구조와 ‘SNS의 역습’
이번에는 ‘지역뉴스 미디어, 특히 지역신문이 사라질 경우 얼마나 아쉬움을 느낄지’에 대해 4점 척도(‘전혀 아쉽지 않을 것-별로 아쉽지 않을 것-약간 아쉬울 것-많이 아쉬울 것’)로 물었다. ‘모름’ 응답을 제외하고 ‘많이 아쉬울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40개국 평균이 35%였다. 한국은 20%. 평균에도 한참 못 미쳤다.(〈표5〉 참조)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지역뉴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낮은 나라들의 경우 ‘중앙 집권화한 (사회) 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디지털과 SNS의 역습’은 또 다른 원인이다. 뉴스에 대한 신뢰도나 지역 신문에 대한 관심도 추락은 특정 국가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와 원인이지만 설득력 있는 해법을 찾기엔 더 긴 암중모색이 필요해 보인다. 아래에 지역 언론, 지역 신문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제안 중에서 눈에 띄는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천현진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전문위원은 “지역신문이 ‘1보’를 써도, 서울에 기반을 둔 포털과 콘텐츠 제휴를 맺은 매체가 뒤따라 쓴 기사가 뉴스 검색 결과를 채우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지적하면서 “지역 언론이 생산한 가치 있고 신뢰할 만한 기사를 해당 지역 주민들이 더 많이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역민들의 위치 정보 서비스를 이용하자”고 제안한다. 지역 이용자의 위치 정보를 이용해 해당 기사를 자동 노출하는 방식이다. 페이스북은 이용자 대부분이 플랫폼 내에서 더 많은 지역 뉴스와 지역사회 정보를 원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지난 2018년부터 신뢰도, 유익성, 지역 공동체 관련 뉴스를 뉴스피드에 우선 노출되도록 하고 있다.


▲이용자 위치 정보 이용한 지역뉴스 노출
박민 참여미디어연구소장은 지역 신문이 지역 주민을 위한 정보 큐레이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다.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보도자료나 베끼는 행태로는 설 자리가 없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정보 중 지역민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그 정보의 이면에 무엇이 존재하는지를 밝혀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역 언론의 존재 가치이자 이유이며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류동협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언론학 박사는 공공 접근 채널을 말한다. 공공 접근 채널(Public Access Channel)은 공동체 구성원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TV 등의 채널이다. 미국에는 3,000~5,000개의 공공 접근 채널이 개설되어 있다. 신문 지면도 가능할 것이다. 시민이나 활동가들이 정부나 공동체의 문제점을 공론화하는 도구로 이 채널을 활용할 수 있다. 비영리 공공기금이나 정부가 나서 채널 개설을 지원해야 한다. 저널리즘은 공공의 이익을 보장하는 공익적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아주 흔한 대안이지만 디지털이다. 지역 신문은 수익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인력 배치나 재원의 배분에서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었지만, 디지털 부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동영상 영역은 기존의 뉴스 콘텐츠라는 제한된 영역을 넘어서 지역신문들의 콘텐츠 경쟁력 향상을 위한 돌파구로 기능할 것이다.


▲담대한 폭발의 뇌관은 겨자씨만한 희망
지역 신문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척박한 한국 언론이라는 외피 속에서, 그리고 지역 뉴스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또 하나의 외부 악조건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지금까지 갖가지 지역 신문(언론) 지원 방안과 혁신안이 나왔지만 지역 신문의 형편이 나아졌다는 소리는 쉬 들어볼 수 없었다. 그 수많은 논의들이 적실성 없거나 모자랐기 때문이고 사실은 누구도 답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유례없는 시민 언론의 창간은 전망 없음과 불확실성이라는 지금의 상황 조건은 하나마나한 지엽말단, 원론적 접근이나 공허한 추상적 나열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매우 역동적이고 담대한 전복적 상상력의 폭발을 요구하고 있다. 현장에서 속이 썩어문드러진 절망과 그러면서도 전혀 새로운 상상력의 결합은 불가능한가. 담대한 폭발의 뇌관은 겨자씨만한 희망의 폭발이다.
시민 언론의 창간은 한국 언론과 지역 언론이라는 2중의 외부 악조건 속에서 시작하고 일으키고 성장할 수밖에 없다. 담대한 폭발이 아니라면 겨자씨만한 폭발을 댕길 수 있는, 작더라도 의미 있는 전복의 상상력을 다져갈 것이다. 올해 안에 세부 계획안을 마칠 계획이다. 미리 밝힐 수 없는 ‘영업 비밀’ 같은 내용도 있을 것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겨자씨만한 희망들을 세상에 내놓을 날이 어서 오기를 시민기자들과 함께 바란다.

 


<편집부>
※자료·그래픽 출처 : 한국언론진흥재단·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0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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