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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사진기 ‘칠실파려안’(漆室坡黎眼)

김숭열 사진이야기

  • 입력 2018.10.23 00:00
  • 수정 2020.11.19 09:29
  • 기자명 김숭열(대구사진영상연구원/대구사진놀이치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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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 화가들은 어두운 방안의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을 이용하여 밑그림을 그리곤 하였는데, 이것이 발전하여 오늘날의 사진이 되었다. 

초창기 사진은 벽에 난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을 이용했다. 빛의 직진성에 의해 반대편 벽에 상이 맺히는 현상을 보고 맺힌 상을 고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여러 연구자들이 다양한 약품이나 도구를 활용하여 벽, 동판, 유리 등에 상을 맺게 하는 결과물들이 오늘날 우리들이 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진의 원리를 사용한 첫 번째 기록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의 문집 ‘여유당전서’에서 발견된다. “이기양이 나의 형 정약전 자택에 ‘칠실파려안’(漆室坡黎眼)을 설치하고 거기에 비친 거꾸로 된 그림자를 따라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는 기록이다. ‘칠실’은 매우 캄캄한 방, ‘파려’는 유리, ‘안’은 본다는 뜻으로 깜깜한 방에서 유리렌즈로 보는 장치라는 뜻이다. 또한 다산은 “어느 맑은 날 방의 창문을 모두 닫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모두 막아 실내를 칠흑과 같이 하고 구멍을 하나만 남기고 애체(볼록렌즈)를 그 구멍에 맞추어 끼우면 거꾸로 투영된 영상은 눈처럼 희고 깨끗한 종이 위에 비친다.”라며 `칠실파려안`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다산은 이 기법을 활용하여 투영된 영상을 초상화로 그렸을 것이다. 

사진작가 고 최인진선생은 다산의 기술을 재현하기 위해 1970년 `여유당전서`에서 `칠실관화설(사진기술 이론)`을 접하고 5년여의 고증작업을 거쳐 현대미술사에 연구 성과를 발표하였다. 이론으로만 실재했던 다산의 기술을 사진으로 재현하는데 힘썼으며 2006년, 11월 전시회 `다산정약용의 사진 세계`를 열어 다산의 기술을 일반인들에게 소개하였다. 사진은 사진작가 고 최인진선생이 제공한 것으로 다산의 기술을 재현하기 위해 경기 남양주에 위치한 정약용의 생가 부근에서 `칠실파려안` 카메라를 이용하여 `칠실관화설`기법으로 촬영한 것이다. 10in×12in 나무목재 카메라에 돋보기 렌즈를 부착하여 촬영하였다. 

기원전 350년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난제들(problemata)’에도 역시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에 대한 아주 상세한 설명이 거론돼있는 걸 보면, 단순히 작은 구멍 너머로 풍경이 역전되어 보이는 현상은 꽤 자주 관찰할 수 있는 것이었던 듯하다. 카메라 옵스큐라가 현대 카메라의 전신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사진기술을 논할 때, 종이에 상을 맺게 하는 과정까지를 이야기할 것인지 상을 맺게 하는 원리를 이야기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해보는 것도 사진의 역사를 바로 아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참고 http://blog.daum.net/multibang/7860093
김숭열(대구사진영상연구원/대구사진놀이치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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