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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노래만 불렀더니 일이 술술 풀리더군요”

내 인생의 히트곡 장성필 매니아 대표

  • 입력 2018.10.05 00:00
  • 수정 2020.11.18 13:11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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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 나비’

한창 잘 나갈 때였다. 대기업에 유니폼을 납품했다. 고향 청도에서 혼자 부산으로 올라와 지난한 견습 시절을 끝낸 뒤 처음으로 맞이한 ‘꽃피는 시절’이었다.

그때 ‘하얀나비’를 즐겨 불렀다. 김정호의 노래가 다 그렇지만, 유난히 구슬펐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쳤다.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사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 바람에 동생들이 고아원으로 갈 뻔한 적도 있었다. 가난의 설움을 톡톡히 겪었다.

어느 순간, 김정호에서 나훈아로 갈아탔다. 슬픈 노래가 비극을 부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계기가 있었다. 거래하던 대기업이 하루아침에 망했다. 내가 유니폼을 대던 기업은 국제화학. 보통 국제그룹으로 알려진 회사다. 지금도 사람들이 ‘갑자기 망한 회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기업이다. 
부산에서 살 수 없어서 대구로 이사했다. 작은 양복점에 취직해서 2년 정도 월급쟁이 생활을 했다. 중소기업 사장 부럽지 않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쪽박을 찬 거나 다름없었다. 

그 시절 내 마음에 찾아온 노래가 ‘울긴 왜 울어’였다. 가사가 마음에 착착, 감겼다.

“울지 마, 울긴 왜 울어. 고까짓 것 사랑 때문에!”

맞다. 아무리 큰일도 지나고 보면 ‘고까짓 것’이다. 82년 다시 내 가게를 차리고 90년에 지금의 매니아 간판을 달았다. 잘 나가던 시절의 위상을 회복하는데 정확하게 20년 정도 걸렸다. 

굴곡진 세월을 완전히 빠져나왔지만 아직도 슬픈 노래가 겁이 난다. 나훈아 골수팬을 자처하면서도 슬픈 곡은 피한다. ‘홍시’가 그렇다. 평생 고생만 하신 부모님 생각이 나고 마음이 처연해지는 것 같아 듣지 않는다. 나훈아의 곡들 중에서도 신나는 노래가 더 좋다. ‘울긴 왜 울어’부터 ‘건배’, ‘사내’ 같은 에너지가 넘치는 곡들을 즐겨 부른다. 

사족을 달자면, 쫄딱 망하고 10여년이 흐른 뒤 내 인생의 먹구름을 불러온 장본인을 만났다. 그에게 국제그룹이 무너진 뒤에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는 하소연을 하면서 “그 큰 기업을 하루아침에 해
체시키는 경우가 어딨느냐”고 했더니 “내가 그런 거 아니야”고 했다. 그리고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양복을 주문했다. 오랫동안 단골이 되었다. 

소망이 있다면 나훈아의 양복을 한번 맞춰보는 것이다. 그의 노래 덕에 이만큼 일어섰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빚을 갚고 싶은 마음이다. 앞으로 신나고 힘찬 노래를 더 많이 불러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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