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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발행인 칼럼 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

  • 입력 2020.05.25 00:00
  • 수정 2020.11.17 15:13
  • 기자명 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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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준전시상황입니다. 사태가 끝나더라도 코로나19로 폭격을 맞은 경제를 일으켜야 하는 만큼 나라별로 크고 작은 진통을 겪을 것입니다. 특히 미국을 비롯해 주요 국가들은 중국에 정착한 자국 기업을 본국으로 데려가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경제 지형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19 치료제가 나오면 경제를 제외한 사태는 일단락될 것입니다. 그러나 끝은 아닙니다. 코로나19도 신종 바이러스입니다. 또 다른 신종과 맞닥뜨리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잠시 잊고 살았지만 인류는 수천년 동안 치료제도 없이 세균, 바이러스와 싸웠습니다. 세균을 발견한 것도 1674년, 이 작고 미세한 것들이 인간의 생명까지 위협한다는 것을 알게된 건 200여년이 흐른 뒤였습니다.

수천년 전 방역규칙에 ‘마스크’가...

인류는 적의 정체도 모른 체 체험적 지식으로 싸우면서 나름의 노하우를 체득했습니다. 이탈리아 작가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1351)은 전염병을 피해 교외의 별장에은둔한 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격리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터득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왕족이라도 역병에 걸리면 도성 밖으로 나가서 생활해야 했고, 죽음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시신은 화장했습니다.

아기를 낳으면 대문에 금줄을 치기도 했습니다. 새끼줄입니다. 금줄이 쳐지면 그 집의 식구 외에 다른 사람은 출입이 금지되었습니다. 출가해서 다른 가정을 이룬 가족구성원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집에 살고 있는 가족 외의 다른 사람이 들락거리면 삼신[産神]이 노해서 아이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었습니다.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삼신의 분노란 세균 전파일 것입니다.

전염병과 관련된 여러 조치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유대인들의 율법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율법을 따라 손을 자주 씻는 등의 위생 규칙을 잘 지킨 덕분에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 때도 피해를 가장 적게 입었습니다. 유럽인들은 흑사병에도 멀쩡한 유대인들을 보고 ‘병을 퍼트린 주범’이라고 오해하고 폭행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전염병과 관련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다섯 가지입니다. 병의 유무를 판단하는 검진, 환자 격리, 환자가 입던 옷이나 잠자리, 만진 물건을 씻는 것과 함께 세균에 의한 감염이 의심되는 건물을 헐어서 건축 자재까지 성 밖으로 버리는 방역, 흐르는 물에 손 씻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 두기입니다.

물론 ‘마스크’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스크를 연상시키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전염병이 걸린 사람은 머리와 윗입술을 가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회적 거리 두기의 방법도 아주 구체적입니다. 전염병에 걸린 사람은 “나는 불결하다”하고 외치도록 했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하라고 하면 인권의 문제가 있겠지만, 거리 두기의 효과는 최고였을 것입니다.

산후조리원으로 방역훈련을 해온 한국인들

또한 율법에는 ‘산후조리원’을 연상시키는 구절이 나옵니다. 아들을 낳으면 일주일, 딸을 낳으면 이주일을 격리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격리시설에 산모를 두는 건 산후조리원과 유사한 개념입니다.

 

 

격리시설에는 의료진 외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율법 속의 산모 격리와 산후조리원에는 동일한 법칙이 적용됩니다. 축하 인사한답시고 선물을 들고 산후조리원을 찾았다가는 문전박대를 당합니다. “산후조리원은 방문하지 마라”는 지침이 널리 퍼진지 오랩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평소에도 방역 훈련을 열심히 했다는 뜻입니다. 출산율이 높았다면 산후조리원을 통한 방역 훈련이 예비군 훈련보다 더 자주 찾아오는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위생과 방역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음’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산후조리원’처럼 방역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문화를 가진 우리나라 사람들이었기에 이번 코로나19에서 뛰어난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구는 메디시티로 대변되는 의료 시스템과 전국에서 몰려온 의료 의병(醫兵), 그리고 금모으기운동 등에서 드러난바 있는 뛰어난 시민의식으로 코로나19의 대공습을 이겨냈습니다. 지역민들은 대한민국 어느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공포를 체감했고 이를 훌륭하게 극복했습니다. ‘산후조리원’의 나라 대한민국, 그리고 그중에서유일하게 시민의식과 의료시스템을 증명할 기회를 잡은 대구, 코로나19의 여파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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