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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 5일의 대만 여행 끝에 발견한 ‘우리나라’

발행인 칼럼 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

  • 입력 2019.03.19 00:00
  • 기자명 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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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의 재래시장 한켠에서 발견한 엔카 CD가게.화면에 기모노를 입은 가수들이 엔카를 열창하고있다.

3박5일 일정으로 직원들과 대만을 다녀왔습니다. 대만이라고 하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1895년~1945년)는 사실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특이하게도 대만인들은 우리와 ‘전혀’ 다르게 일본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타이베이 시내에 있는 고찰인 룽산사(龍 山寺) 인근의 재래시장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엔카 CD만 파는 작은 가게를 발견했습니다. 우리나라 고속도로마다 자리 잡고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음반 가게와 형태나 규모가 유사했습니다. 대형 화면에 기모노를 입은 일본 가수들의 모습이 비치고 그 앞에는 CD가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일본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민지 상황이라는 것도 나라마다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우리나라는 식민지를 강렬하게 거부했습니다. 대만도 5개월 남짓 저항 세력이 일본과 싸웠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대만은 특수한 환경이었습니다. 서구에서 아시아로 오는 길목에 있어서 워낙 여러 나라가 드나들었습니다. 중국인을 비롯해 섬의 주인이 수차례 바뀌었습니다.

현지에서 오래 산 사람의 이야기로는 일본이 식민지배를 시작할 때도 저항이 있긴 했지만 일반인들은 식민지 상황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경제와 산업이 일어나자 오히려 일본인들에게 호감을 느낀 것입니다. 

하지만 대만에도 소위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식민지의 고통이 분명 존재했습니다.

통합을 반대하는 이유는 경제

지금 대만과 관련해 가장 관심이 높은 이슈는 중국과의 갈등입니다. 중국은 대만을 허리춤에 꽁꽁 묶으려 하고 대만은 싫어하는 분위기죠. 찬성파도 있지만 반대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반대의 이유는 아주 실제적입니다. 거기서 사는 분 이야기를 들어보니, 논란의 핵심은 경제였습니다. 중국 경제가 성장했다곤 하지만 의료 등의 복지에서 차이가 많습니다. 지금 누리는 혜택이 사라질까봐 두려운 거라고 했습니다. 

대만과 중국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는 아일랜드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우선 두 나라 모두 식민지 시기를 겪었습니다.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식민지 내내 반항을 했겠지만 영국을 사무치도록 싫어하게 된 계기는 1845년에 발생한 대기근이었습니다.

이 기근은 1845년에 발생해 6년 동안 지속됐습니다. 그동안 800만 인구가 600만 으로 줄었습니다. 100만은 굶주림과 병으로 죽었고, 100만은 이민을 떠났습니다. 당시 영국은 지구의 1/4을 차지하고 있던 부국이었지만 아일랜드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아일랜드인은 이 비극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1994년에 대기근 150주년을 기념해서 ‘대기근 박물관’을 세웠을 정도입니다. 

반면에 북부 지역은 지금도 영국 연방에 소속돼 있습니다. 산업의 차이 때문입니다. 북부는 영국과 가까워서 19세기에 일어난 산업혁명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았습니다. 대기근의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반면 다른 지역, 즉 아일랜드 남부는 대부분 농업과 목축업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다른 상황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년 동안 냉탕과 온탕을 오간 아일랜드... 미래는?

두 나라 모두 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아일랜드는 한때 유럽 의 최빈국이었습니다. ‘유럽의 지진아’, ‘거지의 나라’, ‘하얀 깜둥이의 나라’로 불리다 가 1990년대 이후 10년 동안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2007년에는 1인당 국민 소득이 5만 달러를 찍기도 했습니다.

‘노조 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노조가 셌는데, 이를 개선하면서 경제가 성장했습니 다. 외국기업과 자본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한때는 외국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아일랜 드인 비율이 50%를 넘고, 수출이 70%가 외국 기업이 생산한 물품이었습니다. 의존도 가 높다 보니 외풍에 곧장 노출된 적이 많았습니다. 9.11테러 이후에 임금이 높아지면 서 기업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갔습니다. 그때 외국에서 “자기 산업도 없이 외자 유치에 만 주력하더니 저렇게 됐다”는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2008년에도 정부가 파산 위기 에 몰리는 바람에 2010년에 IMF에서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습니다. 20년 동안 말 그 대로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고 봐야 합니다.

대만 역시 일본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입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고유 언어를 포기한 아일랜드

또 하나의 공통점은 자신만의 언어와 문자가 없다는 점입니다. 대만은 중국어를 씁 니다. 중국의 영향이 시시각각으로 스며들 수밖에 없습니다. 

아일랜드는 더 슬픈 역사가 있습니다. 이들은 원래 게일어를 썼습니다. 자세히 말하면 ‘아일랜드계 켈트어’였습니다. 식민지 시대의 영어는 특권을 보장하는 기술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부자들이나 귀족들이 유창한 영어 덕에 부와 권력을 유지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기에도 아일랜드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버리지 않았 습니다. 그러다 대기근 때 고유한 언어를 버렸습니다. 지금은 영어를 씁니다. 700년 가까이 저항하던 언어 독립을 포기한 셈입니다.

자기들만의 언어가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언어는 곧 자부심이자 자존심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세계 어디를 가도 로고를 볼 수 있는 대기업이 존재합니다. 저는 이것이 언어의 독립,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자부심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많은 기업들이 일본 기업의 주문을 받아 공장을 돌렸습니다. 하청받아 연명하던 시절에도 자존심은 세서 언젠가는 일본을 추월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기업인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굵직한 기업들이 탄생한 배경이 아닐까 요? 영화 ‘말모이’를 보면 우리 조상님들이 말과 글을 지켜려고 정말 노력하셨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말은 곧 정체성이자 자부심입니다.

저는 우리의 경제적 자존심과 자존감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우리 말에 대한 자부심이고 말에 담긴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세계적인 기업과 영토의 크기와 인구에 비해 강렬하지 그지없는 문화력의 핵심이 말과 글에 있다 는 생각입니다. 

대구 공항에 내렸을 때, 가장 반가웠던 것은 한글 간판과 표지판들이었습니다. 새삼 조상님들이 고맙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가장 훌륭한 문자 덕이 우리가 누리는 자부 심과 미래에 대한 든든한 자신감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우리나라’를 발견한 소중한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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