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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웃을 수 있다면

이진숙 ‘클럽리의 문화마당’

  • 입력 2020.05.12 00:00
  • 기자명 이진숙 전 ‘클럽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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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친구 스텔라와 시골마을 말보로(Marborough)에 갔다. 1912년에 오픈한 티룸(tea room)이 아기자기하다. 나지막한 천정을 받치고 있는 다듬지 않은 두꺼운 통나무가 역사를 말해준다. 좁은 실내에 작은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사람들이 가득한데도 소란스럽지 않다. 작은 조명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불빛과 선반을 장식한 색색의 찻잔들이 사랑스럽다. 하얀 식탁보와 작은 꽃병이 맞이하는 손님 대접은 깍듯해서 간단한 점심이 황홀하기까지 했다.

책가게가 최선을 다해 꾸민 듯 예뻐서 탄복하게 된다. 크고 작은 책들이 붉고 탐스러운 수국 옆에 동그랗게 모여 있고, 수많은 종류의 카드들이 우아한 램프 곁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명화가 그려진 고풍스러운 카드와 디자인이 독특한 카드를 보면서, 이런 것에 이렇게나 정성을 들이는 사람들에 놀란다. 과연 세계에서 카드를 제일 많이 쓰는 나라답다.

가게에 들어온 손님이 스텔라에게 “머리카락에 스티커가 붙어 있네요”라며 스티커를 떼어줬다. ‘5파운드 99센트’라 적힌 가격표를 보고 살짝 당황한 스텔라가 “제가 이보다는 더 값어치가 있으면 좋겠네요”라며 웃어넘긴다. “그럼요. 그보다는 훨씬 더 값어치가 있죠”와 “남편이 그걸 알면 다행이라니까요”를 주고받는다. 처음 본 여인들이 금세 동지라도 된 듯 합심해 깔깔깔 웃는다.

카드 구경은 다른 친구 미셸과도 한다. 내가 온갖 예쁜 물건에 한눈을 파는 동안, 그는 유머러스한 카드 진열대 앞에 오래 머문다. 카드에 적힌 글을 읽고 웃다가 나를 불러 보여주고, 내가 깔깔 웃고 나면 지나가는 여인에게도 보여준다. “하하하”하는 여인의 큰 웃음소리가 마치 “맞다, 맞아!”하는 맞장구 같다. 부끄러움이 많고 비사교적인영국인들이 유머를 나누는 일에는 낯가림이 없다.

카드에는 “I don’t need google, my wife knows everything!(구글 검색은 필요없어. 아내가 다 알고 있는 걸!)”이라고 쓰여 있고, 한 남자가 램프와 와인 잔이 놓인 책상 앞에 컴퓨터를 펼쳐놓고 앉아 있다. 몸을 뒤로 젖히고, 다리를 꼬고, 두 팔을 머리 뒤로 젖혀 올려 태평하게 웃는 그림이다. 보자마자 저절로 “맞아. 남자들은 뭐든 아내에게 물어보면 되는데, 혼자 마음대로 해서 사고를 친다니까. 엉뚱한 데 물어 일을 복잡하게 만들기나 하고”하게 한다. 남자들은 이 유머를 다르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영국인의 삶 구석구석에는 유머가 스며들어 있다. 시시때때로 인사와 이야기에 농담을 곁들인다. 아예 이야기를 꾸며내 그저 웃자고 하면서, “늘 진지할 필요는 없잖아?”하는 거다. 핑계가 있을 때마다 유머가 적힌 카드를 주고받기도 한다. 자신을 바보로 만들어 키득거리게 하는 문장으로, 인생을 야유하고 희롱해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글로, 미묘하게 비틀고 절제된 지혜의 언어로 웃음을 전염시킨다.

“혼자 산다고 해도 하루에 여덟 번은 웃어야 한다. 우리는 미소 짓게 만드는 웃기는 말이 생각날 때마다 즉흥적으로 벽에 적곤 한다.”- 덴마크 예술가 덴카 가멜로그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 크고 대단한 게 아닐 지도 모른다. 그저 지금보다 ‘조금만 더’행복 하고 싶은 게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행복에 대한 개념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You can’t win at everything but you can LAUGH at everything(모든 것에 이길 수는 없지만, 모든 것에 웃을 수는 있다)” 나의 행복에 이런 ‘소신’만 가질 수 있다면, 내가 바라는 행복은 가깝고도 단단한 거다.

마지막으로 미소를 짓거나 큰소리로 웃은 적은 언제였는가? 웃는 것이야말로 현재를 사는 거다. 웃음보가 터지는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때그때의 삶을 만끽해야 한다. 모든 게 뒤죽박죽일 때도 호탕하게 껄껄 웃어넘길 수 있고, 불안과 걱정으로 앞이 캄캄할 때도 바보처럼 희죽 웃을 수 있다. 웃음으로 승화된 인생이 성공이 아니라면, 무엇이 성공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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