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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그리고 고려의학

한의사 이승렬의 생활동의보감

  • 입력 2018.09.05 00:00
  • 수정 2020.11.17 11:53
  • 기자명 편한세상한의원 대표원장 한의학박사 이승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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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은 백두산 압록강 유역의 화산석인 흑요석을 깨뜨려 만든 「폄석」에서 유래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폄석이 함경북도 웅기에서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음을 앞서 밝힌 바 있다.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한의학의 침의 기원은 만주 요하문명의 고조선의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있는 내용으로 한의사들이 과거 ‘한의학(漢醫學)’을 ‘한의학(韓醫學)’으로 바꾼 것을 두고 지금도 비판을 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한자(漢字)가 중국문자를 의미하듯 한의학(漢醫學)은 중국전통의학일 뿐인데 마치 별개의 의학인 양 억지 부린다는 시각이다. 정말 그럴까? 사실 이는 한자공부를 제대로 못해본 사람들이「한(漢)」이라는 글자의 뜻을 오해한데서 비롯된 일이다. 우리 대구경북은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시조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를 지은 매운당 이조년을 배출한 고장이다. 선생이 만년을 보낸 고령군에서는 ‘다정(多情)도 병(病)인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라는 문학사에 빛나는 이 서정시를 기념하여 매년 추모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다. 여기서 은한(銀漢)은 은하수를 일컫는 말이며 한(漢)의 의미는 한(漢)나라의 한이 아니라 ‘많다, 크다’는 뜻이다. 따라서 예전의 한의학(漢醫學)이라는 용어는 중국의학이라는 뜻이 아니라 큰 의학이라는 의미로 붙여졌던 이름이다. 

일제 침략시기 전에는 ‘의학’하면 당연히 한의학이었고 ‘의사’는 한의사를 지칭했다. 고종이 설립한 왕립한의학교의 이름은 ‘동제의학교’였다. 1909년에 ‘의사총합소’라는 단체가 결성되었는데 바로 지금의 한의사협회를 뜻하는 조직이었다. 최초의 근대식국립병원인 ‘광제원’의 의사들은 대부분 한의사였다. 그러나 일제는 한일합방 후 민족의학인 한의학의 씨를 말리고자 지금의 한의사격인 대한제국 의사들을 의생이란 이름으로 격하시켜 추가배출을 차단하고 자신들이 강제 도입한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에게 ‘의사’란 호칭을 부여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전의 의사들과 구별하여 이들을 양의(洋醫)라고 불렀다.

‘양의사’라는 이름이 이 시기에 보편화된 것은 1931년 염상섭의 소설 ‘삼대’에 ‘한방의는 덕기를 따라 양의들에게 자기의 진단을 개진하고 방문(처방전)을 내보였다’라는 구절만 봐도 알 수 있다. 

광복이 되자 일제에 탄압받던 한의학도 마침내 부활의 나래를 펴게 되어 1951년 ‘큰 의학’이라는 뜻을 담아 ‘한의(漢醫)’라는 명칭으로 전통의학 의권이 회복되었다. 1986년 중의학(中醫學)과 구별되는 우리 전통의학의 자주성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한의(韓醫)’로 그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그러면 북한의 경우는 어떠할까? 북한 역시 해방 후 일제에 의해 폐지된 전통의학 의권을 되살려 중국 중의학과 구별하여 ‘동의(東醫)’라 이름 지었고, 근래에는 우리역사에서 자주성을 회복한 고려시대를 기리는 의미로 ‘고려의학’이라고 개칭하여 현재 한의사를 ‘고려의사’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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