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정신의 무도(武道) 찾아 평화를 얻다

문화 현장 - 인터뷰 이탈리아 유일 태권도장 운영 로렌초 드렉슬러 씨

  • 입력 2018.09.06 00:00
  • 기자명 김윤곤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5월 이탈리아 우디네 시의 중심 ‘자유의 광장’ 리오넬로 오픈홀(Loggia del Lionello)에서 한국의 날 행사가 열렸다. 한복 패션쇼, 북춤 공연, 다도 시연과 함께 열린 태권도 시범에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무대 한 가운데 선 태권도 지도 사범은 한국인이 아니었다. 그는 우디네 시에서 태권도 전도사로 알려진 로렌초 드렉슬러(48, Lorenzo Drexler) 씨.

그의 돌려차기는 송판을 쪼갰고 손날은 주먹돌을 갈랐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의 삶을 아는 사람은 그 힘이 파괴력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갱생력이라는 것을 안다. 태권도에 입문하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탈리아 유일의 태권도 전용도장의 관장이자 운영자인 그를 만나 삶과 태권도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여는 말>*인터뷰 동시 통역은 이탈리아 교민 정하지(베네치아 호텔·관광 사업가) 씨가 맡았다.

✿우디네가 고향인가?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 토스카니 출신 아버지와 오스트리아 출신 어머니 사이 1녀2남의 막내다. 누나가 맏이다.”

✿우디네를 소개한다면.
“이탈리아 북부 국경 부근의 조용하고 품격 있는 도시다. 프리울리(Friuli, 아래 참조)의 중심 도시답게 사람들은 열정적이고 자유와 신뢰를 중요하게 여긴다. 여기에 살게 된 것은 이전에 살았던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와 가까워서 저의 태권도 스승인 손종호 사부가 직접 와서 지도해 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사부는 저에게 멀리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프리울리는 이탈리아 북동부 지역을 가리킨다. 압제에 저항해온 이 지역의 독특한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국에 와 본 적 있나?
“15년 전 사부와 함께 태권도 시범단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태권도를 접하게 된 계기는?
“열한 살 때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아래 참조)로 이주했다. 아버지와 헤어진 어머니를 따라갔다. 누나와 형도 함께 갔다. 중학 1학년 때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클라겐푸르트는 낯설었다. 우리 집이 우리 집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친구들과도 성격이 잘 맞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소외감 같은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불편했다. 힘든 중학 시절을 보냈다. 

스포츠에 관심이 있었지만 축구나 농구 같은 것은 별로 내키지 않았다. 태권도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 1학년, 열다섯 살 때였다. 마땅한 운동을 찾지 못한 내가 딱해 보였던지 친구가 전단지 하나를 가져다주며 가보라고 했다. 태권도장 개장 알림 전단지였다. 호기심이 일었고 마음이 끌려 다음날 찾아갔다. 물론 바로 등록했다.”

*클라겐푸르트는 오스트리아 최남부의 도시. 케른텐 주의 주도로 관광도시다. 슬로베니아 북부 국경 부근이어서 이탈리아 북부 국경과도 가깝다. 매년 여름 유럽 최대의 목재 박람회가 열린다.

✿‘모든 것이 불편했다’는 말이 마음 아프다. 불량 청소년이었을 것 같다.
“그렇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규칙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고 간섭받고 싶지 않았다. 가슴 속 뜨거운 무엇이 차가운 얼음에 싸여 있는 것 같았다. 답답했다. 순종적이지 않았고 쉽게 폭력을 휘둘렀다. 내가 나를 다잡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내면은 고요한 무엇을 찾고 있었다.”

✿다른 스포츠에는 마음을 붙이지 못했는데 태권도는 무엇이 그렇게 좋았나?
“나의 심신이 가장 편안한 곳이 도장이다. 태권도장을 처음 찾았을 때도 왠지 모르게 그랬다. 정서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바깥이 불편했듯이 도장 안은 편안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장 안에서는 나 자신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열다섯 살 고교 1학년이 처음 태권도장을 찾은 날 바로 등록할 때 ‘정신수양’을 하고 ‘무도(武道)’를 하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는 내가 더 강해지고 싶었다. 내가 힘이 세지면 편안해질 것 같았다. 그게 유일한 동기였다. 그것은 이전의 나보다 더 강해지는 것이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친구들보다 강해지고 세상보다 강해지는 것이었다.”

✿태권도의 무엇이 당신의 삶을 바꿨나?
“그렇게 도장에 처음 등록했던 내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뀌기 시작했다. 점점 바뀌었고 나중에는 완전히 바뀌었다. 나 스스로 놀란 것은 그것이 내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다는 사실이다. 그런 변화가 좋아서 더욱 태권도에 매진하게 됐다. 

변화란 모든 일과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전혀 불편하지 않게 됐다. 청소년 시절 불량 학생, 문제아였던 것은 나의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그것을 감추려고 내가 더 강해지고 싶었던 것이다.

콤플렉스의 근원은 어릴 적 폭력적인 가정환경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편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가정에 무관심했고, 어머니는 자주 매질을 했다. 여덟 살이던 ‘성탄절 전야’의 전날이었다. 기대하고 기대했던 선물 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포장지에 쌓인 선물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했다. 몰
래 뜯어봤다. 성탄절 전야에 뜯어본다는 불문율을 어긴 것이다. 그 죄가 그렇게 큰 줄 몰랐다. 어머니로부터 심하게 매를 맞았다. 기쁜 성탄절 전야에. 이런 일들이 반복됐다. 견디기 어려웠다. 아홉 살에 가출을 했다. 며칠 못 가 배가 고파서 돌아왔지만…. 어머니보다 더 강해지고 싶다는 콤플렉스는 그때 생겼을 것이다.

그런 내가 태권도를 통해 완전히 바뀔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손종호 사부 덕분이다. 사부는 ‘태권도는 곧 틀(형, 품새)’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나의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 나를 가다듬고 나를 바꾸는 것이다. 나를 제대로 가다듬고 나면 굳이 상대를 제압할 필요가 없어진다. ‘상대보다 강해지는 
것’보다 ‘나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나를 변하게 한 태권도의 가르침은 이것이다.”

✿손종호 사부의 태권도 지도 원칙이나 철학이 궁금하다.
“세계 태권도계는 오랫동안 남한 측 세계태권도연맹(WTF)의 주도권에 북한 측 국제태권도연맹(ITF)이 맞서는 형국이었다. 남한 태권도가 스포츠 위주였다면 북한 태권도는 무도 위주였다. 동시에 남한 태권도가 비교적 개방적이었다면, 북한 태권도는 흔히 권력의 선전 도구로 이용됐다. 

사부의 태권도는 남한 쪽도 북한 쪽도 아닌 전통 태권도였다. 무도 중심이었지만 권력화를 배격했고,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하되 스포츠로만 흐르는 것 역시 배제했다. 태극형, 단군형, 원효형 등이 기본형인 사부의 태권도는 무도의 정신성을 강조했다. 도장 입구를 연꽃 핀 연못이 있는 한국식 정원으로 꾸민 것도 사부가 강조한 무도의 정신성, 명상성을 북돋우려는 것이다.”

✿27년 동안 이탈리아 유일의 태권도장을 운영해왔다. 태권도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평화다. 태권도는 틀(형, 품새)의 반복이다. 반복이 쌓이면 안정되고 명상적이 된다.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태권도는 바깥세상의 스트레스를 걸러주는 일종의 필터와 같다. 격렬한 동작 속에서도 정화되고 도를 닦는 느낌이다. 다도나 풍물의 모든 동작이 원형을 이루는 것처럼 태권도의 기본 동작도 원형을 이루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우디네 시에서 태권도가 관심과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지.
“태권도는 육체적인 운동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운동이다. 절도 있고 예의 바르며 상대를 배려한다. 특히 태권도의 모든 틀(품새)은 방어에서 시작한다. 공격에 앞서 방어한다. 이 정신적인 부분이 우디네 사람들에게는 매우 교육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자녀에게 태권도를 배우도록 하는 것 같다.” 

✿이번 우디네시 ‘한국의 날’ 행사에서 장은영 영사는 당신을 ‘한국 문화 대사’와 같은 분이라고 소개했다. 어떤 활동을 했는지 소개해 달라. 
“우디네 시의 여러 행사에 적극 참여해서 태권도를 알리려는 저와 캬라 씨 부부를 비롯한 단원들의 열정을 시민들이 인정해 준 것이다. 많은 발품을 팔았다. 더 많은 행사에서 태권도 시연을 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 영사관에서 연락이 왔고 2년 전부터 여러 차례 행사를 함께 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태권도뿐만 아니라 태권도와 관련한 한국 문화까지 이탈리아에 널리 알려야 태권도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만남, 더 많은 이벤트를 통해 태권도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국 사람을 만나면 사부 생각이 많이 난다. 고향에 돌아가는 느낌이다. 한국을 꼭 다시 방문하고 싶다. 자서전 Quel sasso nel sacco di riso(쌀가마 속 돌 하나)의 한국어 번역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이다. ‘열정이여, 한 걸음 더 내딛자.’”

 

김윤곤 기자 seoum@hankookilbo.com

 

 

저작권자 © 대구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