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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하는 심정으로 통합신공항 유치에 여생 쏟을 것”

박병우 통합신공항 시민추진단 수석부위원장

  • 입력 2019.08.13 00:00
  • 기자명 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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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공항 이용객은 올해 500만 명으로 예상됩니다. 포화상태죠. 더 심각한 것은 항공물류입니다. 지역 기업이 유럽, 미주에 제품을 수출하려면 4시간 거리의 인천 영종도로 가야 합니다. 유럽 바이어들이 대구를 외면하는 이유이자 우리 지역의 경제가 침체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박병우(59) 통합신공항 시민추진단 수석부위원장은 14년 전부터 K2공항 이전을 제안했다. 대구·경북 시 · 도민의 열망이었던 밀양신공항 추진이 무산되면서 3년 전 ‘통합신공항 시민추진단’을 결성하며 수석부위원장 직을 맡았다. 통합신공항 시민추진단은 2008년 8월에 K2공군기지 이전을 위해 시민들이 모여 구성한 ‘K2 이전 대구시민추진단’이 모체로, K2공항 이전을 위한 활동을 꾸준히 전개해 왔으며, 광화문 1번가에서 K2·대구공항 조기 통합이전을 촉구하는 정책제안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박 부위원장은 대구상공회의소 상공의원(19~21대)으로도 활동하면서 공항이전특위위원 간사를 맡아 밀양·가덕도, 의성·군위 현장을 돌며 통합신공항 이전과 물류공항 필요성을 강조하고 홍보했다.

“K2만 이전하는 건 근시안적 사고”

박 부위원장과 공항의 인연은 각별하다. 그는 K2에서 군 생활을 했다. 활주로에서 잠을 잤다. 누구보다 공항 안팎의 정황을 잘 안다. 어떤 이들은 ‘K2만 가고 민간공항은 남기라’고 하는데, 그는 “근시안적 사고”라고 말한다.

“공항 인근 지역에 3년간 3천억 원의 소음피해보상을 했습니다. 계속 국고를 낭비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K2만 받아줄 곳이 없습니다. 경북이 대구의 식민지입니까?”

규모도 문제다. 대구공항 활주로는 2,750m로 소형기밖에 못뜬다. 동남아 지역을 넘어갈 수 없다. 결국 대구공항은 계류장에 불과하다는 결론이다. 박 부위원장은 “활주로를 연장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산이 있어 힘들다”고 못박았다.

“도시가 팽창되면서 동·북구는 비행기 소음으로 삶의 질이 떨어지는 낙후지역으로 전락했습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도 공항을 옮겨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구신공항이 물류공항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대구신공항을 통해 물류가 세계로 수출되면 대구뿐 아니라 영남권의 미래도 보장될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는 대구·경북 전체가 소멸위기입니다.”

공항 주변 개발 시 생산유발 효과 30조

박 부위원장이 K2 통합이전을 주장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북구 전체의 경제 상황 때문이다. K2부지는 남향에다 사업하기 좋은 자리다. 개발 가능성이 대구의 그 어느 지역보다 높다는 뜻이다. 마침 대구시에서 내년에 4차 순환도로를 완공한다고 발표했다. 공항주변의 13,223,140.5㎡(400만 평) 부지를 개발하면 생산유발 효과가 30조 원에 이른다는 관측이다. 박 부위원장은 “과거에도 이렇게 큰 공사는 없었다”면서 “대구시가 후적지에 대구의 미래를 책임질 신성장동력 거점인 휴노믹 시티(Humanic City·자연친화적 미래복합도시) 개발로 마이스(MICE) 산업과 첨단산업을 유치하면 검단공단과 유통단지는 상생발전의 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에 내건 ‘검단들 공약’ 결국 지켰다

박 부위원장은 검단산단과 유통단지를 비롯해 인근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검단산단 역사의 산증인이라 불린다. 2005년 최연소(45세)로 검단공단 초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당시 그는 검단들 개발과 K2공항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업체관리권 민간이양 문제를 검단공단의 300개 업체로부터 한 달 만에 90% 이상의 동의를 얻어내며 검단 관리공단 창립을 주도했다. 단시간에 사단법인 설립 동의를 받아낸 이 사례는 대구시 조직구성 발전의 모범사례로 남아있다. 검단공단 이사회는 컨테이너 박스 하나로 조촐하게 시작했다. 그는 이사장직을 네 차례 연임하며 12년 동안 월급 한 푼 안 받았다. 그는 검단공단과 유통단지를 지역 경제를 일으킬 양 날개라 믿었다. 그는 “검단공단과 유통단지는 한 집안”이라 “검단공단에서 제품을 만들고 유통단지에서 판다”고 말했다.

“2006년에 검단공단, 유통단지, 3공단 임직원과 북구청, 시청 직원들 과 함께 서울 구로공단을 견학했습니다. 선진화된 구로공단의 모습을 보 고 검단공단도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검단들은 현재 70~80% 보상이 이루어졌고 올 연말 금호워터폴리스 사업의 첫 삽을 뜬다.

이제 남은 건은 대구공항 이전이다. K2까지 이전하면 활주로 끝인 검단공단은 넓은 대지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검단들 개발로 검단공단과 유통단지 대구 동구와 북구의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대구시가 지상철 연장 계획을 고려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가족에게 유언을 남기고 산으로 들어간 그

그가 공항을 비롯해 검단들 개발에 이토록 애정을 쏟는 데는 개인적인 사정도 한몫했다. 지난 해 감내하기 힘든 사업부진과 병고가 찾아들어 큰 고초를 겪었다. 내우외환을 겪으며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사업을 정리하고 산으로 들어갔다. 컨테이너 속에서 자고 산나물로 끼니를 해결하며 남은 생을 정리했다. 부친이 물려준 시골 논밭도 팔았다. 일 년이 흘렀다. 평소 자주 산에 오르며 몸을 단단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 버팀목이 되었다. 그는 “그동안 가지를 치고 이제 몸통만 남은 상황에서 다시 삶의 터전으로 돌아온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학사, 석사를 공부했다. 30대에 JC에 가입해 수성JC회장도 맡았다. 외국을 다니면서 넓은 세상을 보며 견문을 넓혔다. 그때 얻은 신선한 충격들이 현재까지도 구상의 원천이라고 한다. 그는 얼마 전 영남대 총동창회 부회장으로서 관습에 젖은 직제를 개편하고 회칙정비로 조직의 변화와 혁신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모든 동문이 총동창회에 참여토록 문호를 개방하고 조직을 투명하게 오픈시킨 견인차 역할을 했다.

손자들에게 “이걸 내가 해냈다” 자랑하고파

이제 당장 눈앞의 불똥부터 해결해야 한다. 2021년 대구엑스코에서 ‘세계에너지총회’가 열린다. 예상 내방객은 수천 명이 넘을 것이다. 2박 3일 일정 중 대구에서 낮 행사를 마치면 대부분 경주나 부산으로 간다. 이유는 엑스코 근처에 먹고 마시고 잠잘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큰 그림은 큰 그림대로 두고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갈 생각입니다. 도미노처럼 하나씩 풀다보면 언젠가는 큰 그림이 완성되겠죠. 차근차근 그러나 끈질기게 나아가겠습니다. 경제 주체들이 각 자의 자리에서 다 같이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육중한 비행기가 하늘로 솟구치듯 검 단들과 유통단지, 나아가 우리 대구·경북이 힘차게 도약할 날이 올 거라고 확신하며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는 요즘 틈틈이 10년 후의 검단들과 K-2를 상상하며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들의 손을 잡고 “내가 이걸 해냈다”고 말하는 순간을 그려본다고 한다.

“두 번째 인생을 맞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첫 번째 인생에서 배운 것들과 익힌 노하우를 아낌없이 쏟아 부을 생각입니다. 멋지게 후회 없이 살다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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