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생명체는 모두 하늘의 귀한 씨앗 성의와 정심 다해 아이들 키워야”

라온·바론 스토리❷

  • 입력 2020.10.25 00:00
  • 수정 2020.11.13 17:37
  • 기자명 심지훈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통 글밥] 아이를 보는 일과 죽음에 관하여

둘째아들 바론이가 하도 더워 ‘까마귀 대가리도 벗겨진다’는 처서(處暑·양력 8월 23일) 아침 건강하게 태어났다. 바론이 태어날 징후를 보인 그 전 이틀 동안 참 고맙고 감사하게도 고모가 아픈 몸을 이끌고 와 라온이를 돌봐줬다. 아내를 입원실로 옮 기고 서둘러 집으로 오자 고모는 얼굴이 누렇게 떠 녹초가 돼 있었다. 너무 미안했고 마음이 아팠다. 고모는 비몽사몽간 다시 직장이 있는 청주로 돌아갔다. 혈육의 위대함을 느낀 이틀이었다. 고모의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적절하게 갚는 건 이제 우리들 몫이겠다.

라온이는 온전히 아빠 차지가 됐다. 헌데 새벽 2시에 병원으로 가 그날 아침 7시에 바론이가 태어나고 아내가 입원실로 이동해 점심 먹는 것까지 지켜보고 나오니 오후 1시였고, 이때쯤 긴장이 풀려 온몸이 노곤해왔다. 병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고모에게 카톡으로 “곧 집에 도착한다”고 알리자 ‘기적 같은 소식’이 전해왔다. “응. 라온이는 방금 잠들었어.” 36개월 된 라온이도 눈치가 빤했던지 동생이 태어나던 날 아침엔 새벽 6시에 일어났다. 고모와 내내 놀다가 막 잠이 들었단다. 나는 라온이 옆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라온이와 함께한 지 오늘이 꼭 10일째다. 아빠가 라온이를 돌보는 게 아니라 라온이가 아빠를 잘 봐주는 복된 날들이었다. 여느 때와 달리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공원 한 바퀴 도는 여유와 함께 아침도 든든하게 먹고, 때맞춰 가방을 메고 어린이집을 가고, 하원하고 돌아오는 길엔 뭐뭐하고 놀았다고 재잘대고, 집에 와서는 맛있게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과일을 먹고, 놀이터 혹은 홈플러스를 가서 놀고 와서는 목욕하고, 유튜브 조금 보면서 할머니들과 전화하고, 자기 전에 이 닦고, 엄마와 바론이와 영상 통화로 인사를 나누고 코 잠에 드는 일상은 아빠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라온이 스스로 하는 일들이었다.

그런데 어린이집에서 만난 라온이 반 엄마들이나 선생님들은 내게 바론이 탄생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아이 혼자 보느라 힘드시죠”라고 인사를 건넨다. 내 지인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힘드시죠” “파이팅입니다”와 같은 응원과 격려의 말을 무시로 듣 다보니 ‘아, 이거 문제가 많다’고 생각됐다. ‘내 아이 내가 보는데 무슨 힘이 그렇게 든다는 것인지, 파이팅을 왜 해야 하는 것인지’ 선뜻 이해가 안 갔다. 나는 라온이를 열 흘 간 보면서 그리고 앞으로 이틀간 더, 아니 어쩌면 더 오랫동안 ‘전담’을 해야할지 모를 것을 예상하면서 죽음을 생각했다.

탄생은 죽음과 한 짝이다. 태어난 생명체들은 언제고 한 번은 모두 죽는다. 탄생은 경이와 기적을 먼저 난 생명체들에게 귀신처럼 안긴다. 먼저 난 생명체는 생각 없이 그저 기뻐할 수도 있지만, 부모 된 입장에서 자식은 하나 일 때와 둘 일 때 그 의미 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하나를 더 짊어져야 한다는 책임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그 피도 안 마른 새 생명을 보면서 다름 아닌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중 한 분이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면 그건 또 다른 큰 의미로 다가온다.

 탄생은 기쁨을 주지만 죽음은 각성(覺醒)을 일으킨다. 나는 7년 전 아버지가 황망히 저 세상 소풍을 떠나셨을 때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생각했었다.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어떤 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꼈었다. 결혼을 하고 라온이를 가졌을 때 나는 또 아버지를 떠올렸었다. 엄마줄을 타고 무사히 내려와 고고의 울음을 내던 바론이와 첫 대면했을 때도 나는 아버지를 떠올렸었다. 두 아들들을 아버지의 환신 (幻身)처럼 나는 느꼈었다. 열과 성을 다해 고이 잘 키우고 지켜내야 할 내 아들들이 자 아버지의 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나는 믿는다. 바론이가 태어나기 전 보였던 라온이의 이적(異蹟)과 그리고 지난 10 일간 보였던 놀랍도록 성숙된 모습은 라온이 스스로 부지불식간에 삶과 죽음을 인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명체는 그 어떤 것이든지 하늘에서 내려와 하늘로 되돌아간다. 아빠엄마 마음속에 하늘의 씨앗이 있듯이 아이들 마음속에도 하늘의 씨앗이 들어앉았다. 아빠와 엄마와 아들은 하늘의 씨앗을 박고 선 동격(同格)이다. 모든 생명체는 그렇게 귀하디귀하다. 아이를 잘 돌본다는 건 아이의 템포를 잘 맞춘다는 거 다. 아이를 잘 못 본다는 건 내 템포에 억지로 맞춘다는 거다. 아이를 볼 땐 눈높이를 양껏 낮추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자기 자식을 돌보면서 ‘힘들다’ ‘우울하다’고 징징대는 건 이 기본을 못 배우고 못 갖 추고 못 깨친 어른들이 많다는 뜻이다. 생명체의 탄생과 죽음을, 제 아비와 어미의 헌 신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한 어른들이 많다는 뜻이다. 생명체는 모두 하늘의 씨앗이라 는 진리를 각성하지 못한 어른들이 태반이란 뜻이다. 어른에겐 아이가 선생이고 성인 이다. 아이에게서 아이의 호흡으로 배운다는 자세로 아이를 대하라. 그래야 아비노릇 어미노릇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래야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다. 제 새끼 보면서 힘들다 는 말을 함부로 뱉지 마라. 하늘의 씨앗은 각자가 감당할 고통만큼만 준다. 부모에게 는 혈구지도(絜矩之道)와 반구저신(反求諸身)의 자세가 필수다. 두 정신은 인간생 활의 근본이다. 이 정신만 잘 심어줘도 아이는 장차 동량(棟梁)이 된다. /심보통 2020.9.2.

[보통 글밥] 바론이 집에 오는 날에

 오늘은 생후 13일된 둘째아들 바론이가 생애 최초의 집으로 들어오는 날이다. 아빠 는 너무너무 반갑고 기뻐 형 라온이를 재우고 신새벽에 이 글을 쓴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로 조리원 면회가 일절 금지됐기로 태어나던 날 한 번, 엄마가 조리원으로 옮겨가던 날 한 번, 이렇게 잠깐 두 번 본 것이 전부였다. 참 요상한 세상이다. 심히 유감이다.

바론이를 만나러 병원에 가던 처서(處暑) 새벽 1시 55분쯤 아빠는 엄마를 데리고 집을 나서기 전 경면주사로 쓴 반야심경(般若心經) 액자와 불심(佛心) 두 글자 액자 에 간절한 마음으로 등불을 밝혔단다.

첫째는 네 엄마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둘째는 바론이가 건강하게 태어 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빠는 불심에 등을 밝히고 이어 반야심경에 등을 밝혔단다. 궁하면 통한댔는데 아마도 그 간절함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엄마한테 이번에는 제 때 제대로 무통주사가 들어갔다. 네 형을 낳 을 때는 장장 21시간 진통하면서 무통주사 를 세 번이나 시도했지만 체질상 듣지 않 는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어야만 했다. 지금 에야 하는 말이지만 정말이지 앞이 캄캄했었다.

엄마도 바론이를 낳기 전 그것이 제일 두려웠다고 했다. 천우신조였다. 간호사가 마 취과 당직의사가 지난번과 다른 분이고 게다가 실력이 뛰어난 분이라고 귀띔해줬다. 의사 선생님은 어려울 수 있다고 했지만 명의답게 한 번에 성공시켰다.

엄마는 새벽 2시부터 5시까지는 신세계를 경험하며 룰루랄라 휴대폰도 만지작대는 여유를 부렸었다. 허나 엄마도 아빠도 몰랐던 게 있었다. 아이를 낳 을 땐 어쨌든 극심한 고통이 수반된다 는 사실이었다.

때가 돼 양수가 터지자 그때부터 엄마는 신음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 시간 사투 끝에 바론이는 엄마 표현대 로라면 “뿅하고 나왔다.” 아빠는 경험 상 네가 그렇게 일찍 나올 것이라고 생각지 못하다 울음소리를 듣고 네 탄 생을 알았다.

그런데 네 형이 태어났을 때처럼 네 이목구비를 잘 살피지는 못했다. 엄마 가 3년 전 네 형이 태어났을 때 동영상 을 남기지 않고 뭐했냐고 타박을 주어 이번에는 동영상만 생각하다 정작 네 몸 하나 하나를 살피지를 못했다. 그저 아빠가 본 것이라고는 형처럼 큰 두 손과 흡사 형의 꼴 과 닮았다는 것뿐이었다.

아무튼 넌 순산했다! 축하축하. 순산은 엄마가 아이를 무사히 잘 낳았다는 의미다 만, 이 ‘잘 낳았다’는 의미는 또 아이가 머리부터 순리대로 태어났다는 뜻이란다. 발부터 나오는 걸 역산이라고 하고, 손부터 나오는 걸 횡산이라고 옛사람들은 말했단다. 역산이나 횡산은 엄마의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순산이라 하면 엄마와 아기 모두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란다. 다시 한 번 축하축하.

지난주부터 아빠는 바론이 맞을 준비를 했단다. 바론이가 태어난 이튿날 거실에 깔 아놓은 매트를 퐁퐁으로 2시간에 걸쳐 뽀득뽀득 닦아 찌든 때를 싹 지웠단다. 엄마가 와서 보면 깜짝 놀랄 거다. 또 한 가지 엄마가 보면 놀랄 것이 있는데, 전기레인지에 검 게 밴 찌든 때도 아빠가 철수세미로 말끔히 닦아 새것처럼 만들어놓았단다. 

3일 전엔 원래 매주 월요일 집안 청소하던 것을 이번에는 화요일에 청소를 했단 다. 조금이라도 쾌적한 환경에서 널 맞기 위한 아빠의 마음이란다. 수요일과 목요일 에 태풍 소식이 있어 늦추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긴 하다만 대신 수시로 닦아 청결을 유지했단다.

그 다음날은 바론이와 엄마를 데리고 올 자동차 실내청소를 아빠가 2시간에 걸쳐 뽀득뽀득 잘 해두었단다. 실내외 세차비가 12만원이라는데 가만 생각하니 실내청소는 아빠가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어 땀은 조금 흘렸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깨끗이 청소했단다.

그리고 어제는 거실에 새 놀이기구도 설치했단다. 조립하는 데만 장장 4시간이 걸렸단다. 이건 명목상 곧 생일을 맞는 네 형을 위한 것이지만, 아마도 실질적인 수혜자 는 바론이 너이지 싶다. 복도 많은 녀석! 네가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전 12일 동 안 아빠와 너무나도 잘 지내준 형이 대견해 엄마아빠가 거금 50만원을 들여 지아지 조짐 정글짐를 준비했단다. 너 노는 모습도 카메라에 담아 둘 터이니 훗날 라온이 형 에게 고마움을 꼭 전하도록 해라.

또 형도 마땅히 그리 할 테지만 너도 형을 따라 엄마에게 효도(孝道)해라. 아빠한 테는 좀 못해도 괜찮다. 네 엄마한테는 꼭 잘하거라. 출산의 고통은 최악의 고통이 10 이라고 봤을 때 7정도라고 알려졌다. 남자들이 한생을 살면서 ‘죽을 만큼의 고통’이 라고 말하는 병은 폭음에 기름진 음식이나 잔뜩 먹다 걸리는 통풍이라는 것인데 겨우 5정도라고 한다.

엄마한테 효도해야 할 이유가 또 필요할까 싶다만, 너 세이레(생후 21일째) 되는 날 아빠가 너희 형제에게 삶의 지침서를 내리도록 하겠다. 네 형이 태어난 지 302일째 (2018.7.7.) 된 날, 아빠가 감격해 하며 ‘네 삶을 네 것인 채로 즐겨라’라고 편지를 써 주었다. 그건 총론이다. 때가 되면 각론을 전할 생각이었다. 바론이 세이레 되는 날이 그 때라고 아빠는 생각한다.

거듭 아빠엄마의 자식으로 내려와 줘서 고맙다. 네 이름은 아빠가 ‘바른’의 순우리 말 ‘바론’에서, 네 형 이름은 ‘즐거운’의 순우리말 ‘라온’에서 각각 길어 올렸다. 우리 네 식구 즐겁고 바르게 잘 살아보자. 우리집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하늘의 씨앗을 잘들 가꿔보자꾸나.

/심보통 2020.9.4.


*아빠는 청송심씨(靑松沈氏)고, 엄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다. 아빠 본적은 경북 김천시 봉산면 덕천리이고, 엄마 본적은 경 북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이다. 아빠의 직업은 스토리텔링 작가이자 언론인이고, 엄마의 직업은 공무원이다.

저작권자 © 대구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