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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출발 이듬해 여름까지 대간길 785km 걷고 펑펑 울다

[삶은 걷기다] 백두대간 종주

  • 입력 2020.07.07 00:00
  • 기자명 문여남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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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은 우리 국토의 뼈대다. 1정간, 13정맥으로 나뉘어 뻗고 솟는다. 총길이 14,000~16,000km. 북녘 땅에는 2,000m급 고봉이 많다. 남한 땅은 1대간 9정맥으로 나뉜다. 1대간은 지리산 웅석봉에서 설악산 진부령까지 45개 구간 785km.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 등을 지난다. 한 구간의 길이는 12~32km다. 백두대간 종주는 이 45개 구간을 답파하는 것이다.

가끔씩 팔공산을 오르는 초보 주제에 겁도 없이 백두대간 종주에 도전했다. 먼저 백두대간을 완주한 남편의 권유에 이끌린 것. 둘째아이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자 마음에 여유가 생긴 터였다. 종주 산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산악회에 가입했다. 월 2회 산행에 1년 6개월 코스였다.

초보 산행꾼의 겁 없는 도전

2013년 4월 7일. 출정이었다. 첫 구간은 남편이 동행했다. 1구간 지리산 웅석봉에 올랐을 때 눈이 흩뿌렸다. 지리산 꼭대기에는 4월도 한겨울이었다. 너무 춥고 손이 시렸다. 남편이 준비해온 1회용 비닐장갑이 없었다면 점심 도시락도 먹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을 따라 비닐장갑을 먼저 끼고 등산용 장갑을 착용했다. 답답하기는 했지만 한결 보온이 됐다.

정상에 서는 순간은 짧았지만 강렬했다. 겹겹이 둘러쳐진 주능선과 봉우리, 병풍처럼 둘러쳐진 협곡의 수려함…. 압도적인 풍광들이 숨을 쉴 수조차 없어 헉헉거리던 오르막길을 모두 잊게 했다. 첫 산행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출정을 앞두고 기초체력을 다진 덕분이었다. 그동안 주말에는 팔공산 수태골을 올랐고 저녁에 짬이 날 때는 가까운 학교 운동장을 돌며 체력을 키웠다. 

산행은 오르내림이 있는 우리의 삶을 많이 닮았다. 또 너무 힘든 구간을 걸을 때는 묵묵히 수행하는 마음으로 나 자신과 대화하게 됐다. 그러다보면 일상의 고민들이 뜻밖의 해답을 얻기도 했다.

4월에 시작한 산행은 5월로 이어졌다. 지리산의 운해와 통천문을 통과하고 고목과 어우러진 풍광을 지났다. 9월에는 전북 무주·장수, 경남 거창·함양에 걸쳐 있는 덕유산 정상을 밟았다.

지금도 선명한 기억. 13구간은 삿갓대피소-무룡산-동엽령-지봉-대봉-뼈재로 이어지는 실거리 22km의 난코스였다. 산행시간은 무려 14시간. 시작 때부터 내리던 보슬비는 하산할 때까지 내렸다. 코스마다 악천후이거나 체력적인 문제가 생길 경우 중간에 하산하는 탈출로 구간이 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그냥 지나쳤는데 이번 코스에서는 탈출로 하산 대원이 10명이 넘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중탈하면 완주가 아니라는 생각에 나 자신을 붙잡았다. 진행 팀에 합류했다. 옷과 신발은 다 젖었고 젖은 옷이 허벅지에 달라붙어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비와 안개로 시야는 흐릿하고 체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맨 후미였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체력이 바닥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런데도 걸었다. 나의 어디에 그런 힘이 있었는지.

내 사전에 중간 탈출은 없다

코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저 앞에 선두 대원들이 보였다. 버스 타는 곳, 하산 지점이었다. 완주한 것이다.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쳐 주었다. 여성의 몸으로 완주코스를 선택한 용기에 대한 축하였다. 이 날 나는 비로소 완벽한 산악대원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가슴 쫄깃했던 36구간. 2014년 7월 19~20일 무박산행 실거리 20km에 10시간 코스다. 카르스트 지형이라 곳곳이 움푹 들어간 데다 상습안개지역이다. 바위로 병풍을 둘렀다는 석병산(1053m)이 가까워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렸다. 악명 높은 석병산 정상석. 한걸음만 잘못 떼어도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아 숨이 턱턱 막혔다. 그런데도 멋진 사진 한 컷을 남기려고 한껏 포즈를 잡던 대원들. 석병산에 서 우리에게 조망을 열어준 하늘이 고마웠다.

2014년 8월 대관령 선자령 구간에 이르렀다. 집에 있었으면 단잠에 빠져있을 시각. 랜턴불빛에 의지해서 걷기 시작했다. 밤길이라 조심조심 걸어야한다. 시작부터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운무로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관령 초지를 지날 때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여기를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소와 양들의 냄새일까? 초원의 냄새가 좋았다. 낮에 보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상상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여름 장마를 만나도 산행은 멈추지 않았다. 우의를 단단히 입었지만 종일 내린 비로 등산화와 양말 속은 물로 가득하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는 듯 걸음이 무겁다. 여대원들은 어린 시절 비 오는 골목을 흠뻑 젖어 뛰어다닐 때 처럼 철벅거리며 깔깔거렸다. 물 고인 웅덩이를 만나면 물장구를 치고서는 물 먹은 양말을 벗어서 비틀어 짰다. 그렇게 대원들끼리 친밀감과 동료애에 흠뻑 젖었다.

겨울이 시작할 무렵 속리산 형제봉에 이르렀다. 눈속 산행의 연속이었다. 무릎뒤쪽의 십자근육에 무리가 가서 힘든 산행을 이어가기도 했다. 가끔 티비에 우리가 밟았던 구간이 소개될 때면 너무 반갑다. 그 아름다움을 상상하면서 더욱 산을 좋아하게 된다.

내가 나를 이긴 완주…정상에 서다

2014년 10월19일. 설악산 대청봉의 절경을 지나 진부령 코스. 가슴 두근거리는 완주의 순간이 왔다. 대원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운다고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기쁨, 아니 아무 이유 없는 눈물이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중간에 그만둘까 갈등도 있었 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잠깐의 좌절과 고민은 나 자신을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결단력 있는 사람은 멈춰 세울 수 없으며, 우유부단한 사람은 출발조차 하지 못한다고 한다. 첫발 내디디기가 어렵다. 하지만 첫발만 내디딘다면 두 번째 발은 더 쉽다. 그 힘이 성공까지 내디딜 수 있게 한다. 내가 그랬으니까.

2019년 5월 5일, 두 번째 백두대간 종주에 도전했다. 현재 4구간을 진행 중이다. 첫 번째 완주 후, 육체적인 조건이 허락되면 대간길의 아름다움을 꼭 다시 밟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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