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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진 특별법 첫 문턱 넘었지만…피해 주민들은 ‘실망’

  • 입력 2019.11.23 00:00
  • 기자명 김정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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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보상 아닌 지원으로 수정돼 소송 불가피, 도시재건도 빠져

경북 포항지진으로 파손돼 재건축을 위해 철거된 포항시 북구 환여동 대동빌라 아파트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북 포항지진 특별법안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하 산자위)를 어렵게 통과했지만, 환영의 입장을 나타낸 정치인들과 달리 피해 주민들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주민들은 법안 용어가 ‘보상’이 아닌 ‘지원’으로 바뀌는 등 특별법으로 손해 배상을 받기 어렵게 됐다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포항지진특별법은 지난 2017년 11월 포항지진이 발생한 뒤 피해를 본 주민들을 위해 올 4월 발의된 법이다. 여야 간 이견으로 오랜 진통 끝에 21일 국회 산자위 법안소위를 통과했고 22일 산자위 전체회의에서 가결돼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

산자위 소속으로 지진 피해가 큰 포항 북구지역 자유한국당 김정재 국회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발의 후 8개월 간 정부는 물론 관계 기관과 깊은 논의 끝에 도출된 합의안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오중기 더불어민주당 포항북구지역위원장도 “늦었지만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하지만 피해 주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주민들은 포항지진이 정부 연구개발사업인 지열발전사업 때문에 일어났는데도 특별법이 보상이 아닌 지원으로 수정, 부서진 건물 등을 복구하는데 드는 비용을 제대로 받기 어렵게 됐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지난 4월 2일 경북 포항시 북구 중앙상가 실개천거리에서 열린 '포항 지진 특별법 제정 촉구 범시민 결의대회'에 시민 등 1만여명의 인파가 몰려 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부는 지열발전소를 ㈜넥스지오란 업체가 운영했고 일부 주민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만큼 지원이란 용어를 써야 한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은 포항지진을 촉발한 지열발전소가 정부 지원을 받은 사업인 만큼 보상 차원에서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맞섰지만 결국 물러섰다.

정부가 포항시의 도시재건을 위해 특별지원방안을 시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삭제된 것도 말썽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국토교통부에서 ‘도시재건’이라는 문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하게 반대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국토부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과 ‘도시재생특별법’에서 도시정비와 재생 절차 등을 규정하고 있어 특별법을 통해 동일한 사업을 새로 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포항 환여동 대동빌라 한 주민은 “지진으로 부서진 집을 다시 짓는데 가구마다 1억원 넘게 드는데 지원으로 용어가 바뀌고 도시재건까지 빠진 상황에 100% 건축비용이 나오겠냐”며 “이런 특별법을 바라고 새벽부터 서울까지 가 집회를 한 게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북 포항시민들이 지난달 3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 도로에서 포항지진 특별법 제정 촉구 집회를 연 뒤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펼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포항 11ㆍ15촉발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 제공

포항지역 한 변호사는 “포항지진 특별법 제34조 2항에는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으로 보상금을 받게 되면 그 금액만큼 지원금을 받을 수 없도록 돼 있다”며 “지원금이 얼마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주민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할 수 밖에 없고, 이미 소송을 낸 주민도 법적다툼을 계속 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도 22일 입장문을 내고 “특별법은 기존 민법과 국가배상법에 비해 보상 규모가 미흡해 그동안 이 법 하나면 다 해결된다고 주장해 왔던 포항시 등에 책임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며 “포항지진 특별법안은 명칭부터 피해구제 특별법이 아닌 피해배상 특별법으로 수정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포항지진 특별법안은 오는 27일 국회 법사위 심의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다.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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