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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마수걸이 못 했어요”… 위기의 약령시

  • 입력 2019.11.03 00:00
  • 수정 2019.11.05 08:52
  • 기자명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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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폐위기 대구약령시] <상> 텅 빈 거리… 361년 역사 끊기나
전국에 하나뿐인 한약재도매시장은 올 연말 영업 중단 예정

※2011년 8월 대구약령시는 약전골목이 생긴 후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바로 옆에 현대백화점이 문을 연 것이다. 상권이 백화점 중심으로 재편됐다. 커피숍 미용업소 레스토랑이 기존 한방 업소를 대체했다. 비싼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업소들이 탈출 행렬에 동참했다. 새로운 상업지구가 형성되면서 기존 거주자들이 쫒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전형이었다. 10년 만에 한방 업소 50여 곳이 떠난 대구약령시의 현주소를 2회에 걸쳐 짚어본다.

이철로 대구시한약도매시장 이사장이 지난달 30일 대구 중구 약전골목 내 약령시한의약박물관 1층에 위치한 대구시한약재도매시장에서 도매시장 운영방법과 출품 한약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지난달 30일 오후2시 대구 중구 약전골목.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이 거리가 텅 비어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지난달 30일 오후 2시 대구 중구 약령시 약전골목. 이름에 걸맞게 약업사, 한약방, 한의원, 인삼사, 의료기 등 각종 한방 관련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지만, 사람의 발길이 거의 없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인근 카페에 들어가기 위해 오가는 행인만 몇 있을 뿐 적막했다.

47년간 약령시에서 한약방을 운영했다는 한 상인은 “옛날에는 약재 판다고 정신없었는데, 요즘은 거리에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을 정도라 마수걸이도 못하는 가게들이 상당수”라며 “뚜렷한 대안이 없어 갈수록 상황은 악화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361년 전통의 대구 약령시에 빨간 불이 켜졌다. 효종 9년(1658)년부터 이어져 온 전국 3대 한약재 전문시장 가운데 한 곳인 이 약령시는 국내는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까지 한약재를 공급하는 등 한약재 유통의 거점이었지만 급격한 매출 감소와 이미지 약화 등으로 쇠퇴 위기에 직면했다.

현재 약전골목에서 운영 중인 한방관련 업소는 183곳. 10년 전인 2009년 이후 약전골목 내 약업사 6곳과 한약방ㆍ한약국 6곳, 한의원 2곳, 제탕ㆍ제환소 36곳 등 50여 곳이 문을 닫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반음식점과 휴게음식점 등의 수는 대폭 늘었다. 2017년 12월 대구 중구청과 계명대 산학협력단의 조사에 따르면 2010년~2017년 사이 580개 업체가 약령시에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2대 째 약업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한 상인은 “2011년 8월 인근 현대백화점 입점과 함께 주변 임대료가 3배 가까이 올라 그 값을 감당하지 못해 떠난 가게들도 많고 떠나려고 준비하는 가게들도 많다”며 “한방 관련 가게보다 다른 업종이 더 많이 생기니 약전골목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고 토로했다.

대구시한약재도매시장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유통구조 개선과 거래질서 확립, 가격안정 등을 위해 대구시가 개설하여 지정도매법인을 설립한 한약재 도매시장으로, 전통 5일장과 한약재 경매 방식을 결합한 전국 유일의 한약재 공판장이다. 1982년 7월1일 대구 중구 태평로 3가에 첫 개장 했고, 이후 1992년 12월 현 위치인 약전골목 내 약령시한의약박물관 1층으로 옮겨와 매월 1, 6, 11, 16, 21, 26일 오전 11시30분 경매를 진행해 오고 있다.

대구시가 도매시장 운영법인을 5년 단위로 지정하고 있는데, 올해 말 현 법인의 허가 기간이 만료된다. 도매시장 운영법인은 수입 한약재 증가, 2015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한약재 판매 규격화(GMP)로 인한 일반 약재상 폐업 등으로 인한 매출 감소와 만성 적자를 이유로 37년간 이어오던 도매시장 운영 중단 및 폐지를 추진키로 했다.

대구시한약재도매시장 영업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35억400만원, 2009년 33억7,500만원, 2010년 42억7,500만원이던 거래금액이 2017년 20억7,800만원, 2018년 17억8,100만원으로 절반수준으로 떨어졌다. 연도별 거래물량도 2008년 409톤, 2009년 389톤, 2010년 399톤에서 2017년 139톤, 2018년 114톤으로 급감했다. 법인 측은 올해 말 운영을 종료하고, 내년 2월 열리는 정기총회에서 폐업을 확정할 계획이다.

이철로 대구시한약재도매시장 이사장은 “위탁 한약재의 판매 수수료 3%만이 도매시장의 유일한 매출이라 대구시에 수수료 지원 등을 요청했지만 잘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폐지 수순을 진행 중인 안타까운 상황이다”며 “판매량을 증가할 수 있도록 지난주 대구시에 도소매점은 물론, 일반 판매도 가능한 도매인 제도 전환을 요청하는 등 역사 깊은 대구시한약재도매시장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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